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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미륵사터 서석탑(彌勒寺址 西石塔).전북 익산 본문

☆~ 풍경소리/전 북

익산 미륵사터 서석탑(彌勒寺址 西石塔).전북 익산

푸른새벽* 2007. 2. 8. 23:53

 

 

 

미륵사터 서석탑(彌勒寺址 西石塔)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인 미륵사터석탑은 목탑에서 기본적인 구조를 본떴다
우선 기단부를 목탑의 기단과 같은 단층기단으로 삼고
1층탑신 네 곳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십자형 공간을 마련하였다
탑신의 기둥은 위쪽은 좁고 아래쪽은 넓게 하여 시각적인 안정감을 주었다
기둥 위에는 창방(昌枋)이라는 목조 건축에서 볼 수 있는 구조물을 가로질렀고
그 위에 3단의 층급으로 지붕을 받들게 했다


미륵사터석탑의 창안자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아마도 이 3단의 층급받침이었을 것이다
미륵사터석탑에서 보이는 3단의 층급받침은 목조 건축의 공포 부분에 해당한다
공포 부분은 목조 건축에서 지붕의 하중을 기둥에 전달하여 기하학적으로 힘을 배분하는
매우 중요한 부분인데 이 부분을 돌로 조성할 경우 사실적인 표현을 얻기란 매우 힘들다
그런데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마치 목조 건축의 공포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훌륭하게 이를 처리하였다
이후 석탑에서 보이는 층급받침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석탑에 응용되었다
미륵사터석탑의 장인은 분명 목조 건축에 능했을 것이다
그는 비례의 원리를 잘 알고 있었고 또 시각적 원리와 미의식에도 능통하였음이 틀림없다


동.서원의 석탑 중 동원의 석탑은 발굴 당시 완전히 무너져 내려
석탑에 이용된 석재들이 주변에 흩어지고 그 중 일부는 외부로 유출되어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서원의 석탑은 비교적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많은 부분이 훼손되어 동북 측면으로만 6층까지 남아 있다
미륵사터석탑은 근래까지 7층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발굴 조사 때 동탑지에서 노반석(露盤石)과 없어졌던 지붕돌이 출토되었는데
이를 서탑과의 비례를 바탕으로 컴퓨터로 계산하여 복원할 결과 9층탑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복원된 높이는 총 24m이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신라 석탑 중 가장 높은 경주 감은사지석탑이 13m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미륵사터석탑은 그 두배에 가까운 규모가 되는 셈이다


현재 남아 있는 기록을 통해 미륵사와 미륵사탑의 변천을 짐작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가 멸망한 이후 "성덕왕 때에 미륵사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불교총보』에 실린 고려시대 초의 스님인 혜거국사(惠居國師) 비문의 내용 중
후백제의 견훤시대인 922년,
미륵사탑의 수리를 계기로 혜거국사가 선운사(禪雲寺)선불장(禪佛場)에 참석하여 설법할 때
하늘에서 꽃이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이때를 즈음하여 미륵사탑이 복원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의 기록으로는 혜거국사 비문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륵사탑의 최대 수난은 일제강점기 초기에 일어났다
우리나라를 강제 침탈한 일제는
원만한 식민지 지배를 위하여 우리 문화의 모든 것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일제는 석조 문화재를 복원한다는 명목 아래 여러 가지 변형을 가했는데
당시 최첨단 소재였던 시멘트가 복원의 주된 소재로 이용되었다
경주의 석굴암도 이때 시멘트로 복원되었다
1915년 일제는 미륵사탑의 붕괴 위험을 지적하면서 미륵사탑의 동쪽 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시멘트로 무자비하게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신라 석탑은 지붕돌이 대체로 두껍게 처리되고 대개 5단의 층급받침을 두어
지붕돌이 둔중한 느낌을 준다
1층 지붕돌은 기단에 비하여 촙다
이에 반해 백제 석탑은 지붕돌의 두께가 매우 얇아 뛰어난 곡선미를 보여주며
기단이 1층지붕돌에 비해 좁아 그만큼 탑신부의 웅장함이 돋보인다
놀랍게도 미륵사탑에서 시작된 이러한 백제탑이 지닌 영향력은 충청과 호남 지방을 중심으로 지속된다
익산의 왕궁리오층석탑,부여의 장하리삼층석탑,무량사오층석탑,서천 비인오층석탑,정읍 은선리삼층석탑 등
많은 탑들이 백제 멸망 이후에도 생명력을 이어간 백제 양식의 탑들이다


미륵사터석탑은 위대하고 훌륭하며 아름답다
그것은 단지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얻게 된 수식어가 아니다
백제시대의 고매한 미륵사상이 표현되어 위대하고
당시 기하학적 이론과 웅장한 건축 기술이 집대성되어 훌륭하며
그 탑을 만든 장인의 미적 감각과 예술성 때문에 아름답다
국보 제 11호이다
*강우방.신용철 지음 '탑'중에서*

 

**2007년 2월 현재 미륵사터 서석탑은 해체.보수 공사중입니다

그러기에 부득이 제일 위의 미륵사터 서석탑 사진은 빌려 온 것입니다

두번째 사진은 서석탑 해체.보수공사  하는 건물의 그림이고

세 번째 사진은 '탑'이라는 책에서 베껴온 것입니다

보수공사가 끝나면 제대로 된 미륵사터 서석탑의 사진을 다시 올릴 수 있을 겁니다**

 

 

 

 

 

 

 

*미륵사탑 해체,복원을 위한 과정

미륵사탑을 통째로 가두어(?)놓은 콘센트건물만 쳐다보고 올 줄 알았는데

2007년 2월에 가 본 미륵사탑의 해체현장은 밝게 열려 있었다

모처럼 시간내서 갔던 관람객이나 답사객들의 발길이 허탈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배려한 마음이 고마웠다

덕분에 미륵사탑의 수술현장(?)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런 열린 마음을 가진

익산 문화재를 관리하시는 분들께 감사의 마음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