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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모악산 금산사(母岳山 金山寺).전북 김제 본문

☆~ 절집.절터/전 북

김제 모악산 금산사(母岳山 金山寺).전북 김제

푸른새벽* 2007. 2. 12. 00:11

 






 






 

 






 











 






 

 






 






 






 






 






 






 











 

 






 











 

 











 

 











 

 






 






 






 






 











 

 






 






 

모악산 금산사(母岳山 金山寺)

 

전북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39


모악산 금산사는 백제 시대(600년)에 창건한 사찰로 766년에 이 지방 출신의 진표율사(眞表律師)가 크게 중창하여 대 가람이 되었다.920년 경에는 후백제왕 견훤(甄萱.재위 900~935)의 원찰이 되었고 주변에 금성(芩城)을 쌓아 성문의 일부가 지금도 남아 있다.


금산사가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맞은 것은 고려 혜덕왕사(慧德王師.1038~1096)가 금산사 주지로 부임한 1079년이다.개성 귀족의 아들로 법상종(法相宗)의 대종사(大宗師)가 되었던 그는 기존 금산사역을 넓혀 대사구(大寺區)로,인근에 광교원(廣敎院)과 봉천원(奉天院)을 새로 개척해 3원 체재의 종합 대가람으로 발전시켰다.대사구는 현재의 중심 사역이고,광교원은 사역 남쪽에 경전 연구와 교육 시설로,봉천원은 사역 동쪽 산록으로 승방 지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각 원에는 3층 종각 건물들이 세워졌다고 전한다.


정유재란으로 완전히 소실하기 전까지 금산사의 규모는 전각 23동,당료 46동,누각 및 기타 건물 24동과 대형 석물이 17점에 달하는 등 막대한 규모였다.1601년부터 35년에 걸쳐 전후 복원 공사를 시작해 현재 모습의 기틀을 잡았다.3층의 미륵전(彌勒殿)은 재건을 완료하였지만,과거 대웅전과 약사전,극락전을 합하여 통합불전인 대적광전 한 동을 재건하는 데 그쳤다.


모악산과 금산사는 한반도 미륵신앙의 본산지이다.진표율사는 금산사 외에도 금강산 발연사(鉢淵寺),속리산 법주사를 중창하였는데 모두 미륵불을 본존불로 하는 사찰들이다.진표 당시에는 미륵전만이 주불전 이었다가,혜덕의 중창 때 화엄신앙과 정토신앙 등 여러 신앙을 수용할 수 있는 불전들이 건립되었고,17세기 때 대적광전으로 통합된 것으로 보인다.


모악산 줄기가 평지로 내려오는 곳에 '송대(松臺)'라고 부르는 언덕이 있고 그 좌우 평지에 두 개의 주불전인 대적광전과 미륵전이 위치한다.
두 주불전은 수평으로 긴 형상이고,3층 미륵전은 수직으로 솟는 형상이다.이 두 전각의 대조를 가운데 언덕이 통합하고 있다.


언덕 위에는 방등계단(方等戒壇)과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방등계단이란 정사각형의 넓은 석단을 만들고 그 위에 석종(石鐘)모양의 탑을 올린 구조물로 승려들에게 계(戒)를 주는 장소이다.수평으로 펼쳐진 방등계단과 수직으로 솟은 석탑의 대비는 그 아래에서 전개되는 대적광전과 미륵전의 형태적 대비를 반복하는 듯하다.


금산사의 현 건물들은 임진왜란 이후에 겨우 재건된 것들이며 드넓은 마당을 가득 메웠던 수십 동의 전각들은 복원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절 초입의 장대한 당간지주를 비롯해 아직까지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는 노주(露柱)와 거대하고 화려한 석련대(石蓮臺), 그리고 육각다층전탑 등 여기저기 남아 있는 유구(遺構)들은 번성했던 과거의 흔적을 보여준다.
*김봉렬 지음 '불교 건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