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无量壽殿).경북 영주 본문

☆~ 풍경소리/경 북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无量壽殿).경북 영주

푸른새벽* 2007. 3. 5. 00:12

 

 

 

 *무량수전 현판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에 머무를 때 쓴 글씨라 한다

 

 

 

 

 *무량수전 공포

기둥 위에만 공포가 설치된 주심포 양식이다

무량수전의 주심포는 매우 간결한데 주두에 굽이 있는 모습에서 고식의 전형을 볼 수 있다

 

 *무량수전의 뒷벽

고려시대 건물에 일반적이었던 살창을 다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무량수전 기단에 새겨진 마애명

 

부석사 무량수전(浮石寺 无量壽殿)


'无量壽殿'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의 글씨이다
무량수전은 현재 부석사의 주요 불전으로 아미타여래를 모시고 있다
서방 극락을 주재한다는 아미타여래는 끝없는 지혜와 무한한 생명을 지닌 분이라 하여 다른 말로 '무량수불'이라고도 한다
그러한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니 '무량수전'이 되는 것이다


무량수전은 의젓하면서도 육중하거나 둔하지 않다


무게가 적당히 무거워 보이는 팔작지붕,앞에서 보아 세 칸으로 단정한 격자문이 달린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다
1916년에 해체.수리할 때에 발견한 서북쪽 귀공포의 묵서에 따르면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왜구의 침노로 건물이 불타서 1376년에 중창주인 원응국사가 고쳐지었다고 한다
무량수전은 '중창' 곧 다시 지었다기보다는 '중수' 즉 고쳐 지었다고 보는 것이 건축사학자들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본래 있던 건물이 중수연대보다 대개 100~150년 앞서 지어진 것으로 본다면
1363년에 중수한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 15호)과 나이를 다투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보아도 지나치지 않겠다
이같은 건축사적인 의미나 건축물로서의 아름다움 때문에 무량수전은 국보 제 1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에서 보이는 무량수전은 칸 사이가 비교적 넓은 다섯 칸에다 옆면은 세 칸이지만
기둥 앞쪽으로도 외목도리를 내 11량을 인 우람한 팔작지붕집이다
기둥 위에만 포작이 있는 주심포집으로,이 무량수전의 포작은 간결하면서도 공들여 가구를 짜나간

고려시재 장인정신을 맛 볼 수 있는주심포 방식의 교과서로 손꼽힌다


이것말고도 무량수전에는 눈여겨볼 수법이 많다
기둥의 배흘림과 안쏠림,귀솟음과 평면의 안허리곡 같은 것들이 우리가 미처 모르는 새에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을 빚어내고 있는 수법들이다
배흘림이란 기둥의 아래쪽 3/1쯤이 가장 불룩하게 배가 불러보이게 한 것을 말하고,

귀솟음은 건물 모서리기둥을 중앙보다 좀더 높인 것을 말한다
이는 모두 사람의 착시를 교정하고 시각적인 안정감을 주려는 보정작용들이다
안허리곡은 가운데보다 귀부분의 처마 끝을 더 튀어나오게 하여

위나 옆에서 무량수전을 보았을 때 처마 선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을 그리도록 한 것이다
안쏠림은 그것이 가능하도록 기둥 위쪽을 건물 안쪽으로 경사지게 세우는 것인데
이것은 단순히 기둥과 처마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공포와 벽면도 함께 이루어질 수밖에 없으니 벽면의 가운데가 은근히 휘어져 있다
나무와 흙만으로 지은 집의 이런 교묘한 배려로 인해

우리는 육중하면서도 넓은 무량수전의 지붕이 활짝 펼친 새의 날개처럼 열려 있다고 느끼게 된다
이처럼 눈에 드러나지 않게 한 옛사람들의 배려가 궁극적으로 무량수전의 아름다움으로 조화롭게 피어났던 것이다


무량수전은 옆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앞면의 경우 세 칸에는 분합문과 광창,좀 좁은 매 가장자리 칸은 두 짝 창으로만 되어 있다
창들은 모두 위쪽으로도 올려 고정시킬 수 있는 들어열개 형식으로 되어 있어 큰 재를 올릴 때에는 활짝 열어 개방할 수 있다
그러나 원래는 뒷벽처럼 문틀에 널판문을 달고 옆쪽에는 조사당에서처럼 살창을 두었을것으로 생각되며
고려 말 중수할 때 이러한 형식으로 바뀐 듯하다


전각 안으로 들어서면 맞은편(서쪽)으로 아미타여래가 자리잡고 있다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높게 솟은 배흘림기둥이 엄숙한 분위기를 만들어 절로 숙연해진다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기둥과 보가 엮이고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연등천장을 볼 수 있다
딱딱하지 않은 직선의 부드럽과 아름다운 조화와 함께 다 보여줄 수 있는 당당한 자신감이 드러난다
그 모든 것이 각각 하나의 '디자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그러데 무엇보다도 이러한 결구방식은 '아름답게 보이려고'치장한 것이 아니라
지붕의 무게를 고루 분산시키는 노력의 과정에서 나온 것이기에 '필요미'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된다


바닥에는 본래 녹유를 두껍게 입힌 전돌이 깔려 있었다고 한다
『아미타경』에서 극락세계의 바닥이 유리로 되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고려 때의 것으로 수습된 몇 점이 유물전시각에 진열되어 있는데
그처럼 두꺼운 유리질막의 전돌이 무량수전 바닥 가득히 깔려 있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휘황한 광경이 있을 것이다
녹유전을 걷어내고 마루를 깔게 된 것은 엎드려 절을 하는 풍조가 일반화된 조선 시대의 예배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부석사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


국보 제18호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48 부석사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우리 나라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