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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덕주사 마애불 (德周寺磨崖佛).충북 제천 본문

☆~ 풍경소리/충 북

제천 덕주사 마애불 (德周寺磨崖佛).충북 제천

푸른새벽* 2007. 3. 9. 23:36

 

 

 

 

 

 

 

 

 

 

 

덕주사 마애불 (德周寺磨崖佛)


신라 경순왕의 딸인 덕주공주가 조성했다는 전설을 지닌 마애불이다
전체 높이가 13m에 이르는 거대한 마애여래상이며
보물 제406호이다
마애불은 하덕주사에서 월악산 정상인 영봉 쪽으로 1.6km 떨어진 상덕주사 자리,
해발 560m의 볕바른 남향 암벽에 새겨져 있다


높다란 암벽 가득히 새겨진 불상은 얼굴 부분만 조금 도드라졌을 뿐
어깨 아래는 거의 선으로 간략히 표현되어 있다
신체 표현에서 조형적 균형은 무시되었고
두 어깨에서 흘러내려 발목까지 닿은 법의의 옷주름 표현도 형식적이다
이러한 점들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거대한 마애불에서 흔히 눈에 띄는 특징들이다


덕주사 마애불은 얼굴과 손,발이 특히 크다
소발 머리에 큼직한 육계가 있고,길죽하고 사각형에 가까운 얼굴 가득히 긴 눈과 코,
입이 과장되게 표현되었으며 특은 탄력 없이 늘어져 고려시대 거대불상 특유의 불친절한 표정을 하고 있다
목이 없이 머리와 몸이 그대로 이어져 삼도가 가슴께에 표현되었다


두 손을 가슴까지 들었으며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었고 왼손은 손등을 보인다
법의의 옷주름 표현은 도식화되어 힘없이 죽죽 흘러내리다가 양다리에서 몇 겹의 타원을 그리고 있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 법의 밑으로는 세로선으로 표현된 군의자락이 발목까지 내려왔다
큼지막한 두 발을 옆으로 벌리고 섰는데 발가락이 무척 굵다
발 아래에는 넓은 연화문을 새겨 대좌로 삼았다


광배는 보이지 않으며
어깨 위쪽에 사각형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목조전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마애불은 대략 11세기에 조성되었으리라 추정된다
살진 얼굴과 평면적이고 도식적인 신체와 옷주름 표현 등, 그 규모에 비해 조성수법은 거칠다
그러나 고려 초기의 거불 조성 추세를 반영한 마애석불의 하나로서 불상양식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마애불에서 왼쪽 기슭으로 올라가면 축대와 계단,초석 등 옛 덕주사건물 자리를 볼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덕주공주는 이곳에 마애불을 이루어 마의태자가 세운 미륵대원의 미륵불과 마주보도록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미륵불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덕주사마애불(德周寺磨崖佛)


보물 제406호 
충북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산1-1 덕주사 


마의태자의 누이인 덕주공주가 세운 절이라고 전해지는 월악산 덕주사의 동쪽 암벽에 새겨진 불상이다. 거대한 화강암벽의 남쪽면에 조각한 불상은 전체 높이가 13m나 되는데, 얼굴부분은 도드라지게 튀어나오게 조각하였고 신체는 선으로만 새겼다.


민머리 위에는 반원형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솟아 있으며, 살찐 얼굴에는 눈·코·턱 등이 강조되어 있다. 이와 같이 얼굴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은 고려시대의 거대한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목에 있어야 할 3줄의 삼도(三道)는 가슴 위에 선으로 조각하였다. 선으로 조각한 살찐 신체는 인체의 조형적 특징이 무시된 채 기이함을 보인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축 늘어져 힘이 없으며 선으로 된 옷주름 역시 생동감이 떨어진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었고, 왼손은 손등을 보이고 있다. 좌우로 벌린 발은 지나치게 크고 발가락도 굵고 길게 표현되었으며 양 발 아래에는 연꽃잎을 새겨 대좌(臺座)로 삼았다.


고려 초기의 거대한 불상 조성 추세에 힘입어 만든 것으로, 살찐 얼굴과 하체로 내려갈수록 간략해진 조형수법과 입체감이 거의 없는 평면적인 신체 등이 특징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