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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도피안사(花開山 到彼岸寺).강원 철원 본문

☆~ 절집.절터/강 원

철원 도피안사(花開山 到彼岸寺).강원 철원

푸른새벽* 2007. 11. 9. 00:15

 

 






 






 






 











 

 






 






 






 






 






 






 






 






 






 






 






 

철원 화개산 도피안사(花開山 到彼岸寺)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450번지


도피안사(到彼岸寺) 속세를 넘어 이상 세계에 도달하는 절집이다.때묻은 예토가 아닌 지혜의 세계라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도피안사는 865년(경덕왕 5) 당대의 고승 도선국사(道詵國師)가 1500여 명의 대중과 함께 철불을 조성하고 삼층석탑을 세워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이다.새로운 조류의 선사상이 유행처럼 번져 전국에 구산선문이 개창되던 무렵이었고 지방호족들과는 매우 우호적인 관계가 성립되던 때였다.'향도(鄕徒)'로 표현된 1500여 명의 참여 대중은 이 고장 민초들이 대부분이었을 터.그들이 절을 세우고 철불을 조성했다는 기록이 당시 선종과 민중의 끈끈했을 관계를 짐작케 한다.


철불은 새시대의 도래를 꿈꾸던 민중의 정성으로 조성되어 영험이 있었을까.당초 철원 안양사(安養寺)에 봉안하려 했던 불상이 운반 도중 없어졌는데 어찌 된 일인지 지금의 도피안사 자리에 안좌하고 있었다.도선국사는 불상의 뜻을 짐작하고 불상이 앉았던 자리에 절을 창건해 철불을 모셨으며 전국의 800여 비보사찰(裨褓寺刹)중 하나로 삼았다.


화개산은 물 위에 떠 있는 연약한 연꽃의 모습이어서 철불과 석탑으로 산세의 허약함을 보충하고 외세의 침략에 대비했다고 한다.그뒤 천년 역사의 도피안사는 어떻게 존재했는지 중창.중건의 내력 조차 단절돼 있다.1898년 봄 큰 화재로 사찰의 모든 건물이 불타버렸다는 『유점사 본말사지』의 기록과 함께,영주산인(靈珠山人) 월운(月運)스님과 강대용(姜大容)이 재창건을 했다고 전한다.


도피안사는 한국전쟁 때 또다시 불타 완전 폐허가 된다.9년이 지난 1959년 어느 날 제15사단장 이명재(李明載)장군은 난데없는 꿈을 꾸었다.
땅속에 묻히 불상이 답답하다는 내용이었다.이튿날 전방 시찰을 나갔던 장군은 갑자기 갈증을 느껴 부근의 한 민가에 들어갔다가 간밤 꿈에서 땅속에 묻힌 불상과 함께 보였던 안주인을 만나고는 깜짝 놀랐다.이명재 장군은 그 여인의 안내를 받아 불타 없어진 도피안사터를 찾아가 뒤지기 시작했고 땅속에 묻혀 있던 철불을 발견했다.꿈에서 본 그 불상이었다.


천년 전 도선국사는 이 지역 신도 1500명의 힘을 모아 철불을 조성했었다.천년 뒤 땅속에 묻혀 있던 철불은 이명재 장군에게 현몽해 몸을 드러냈고 장병들의 손으로 도피안사가 재건되었으니 거기에 뭔가 범상치 않은 인연이 있을 법하다.군에서 맡아 관리해오던 도피안사는 1985년에 민간인 관리로 넘어와 오늘에 이르고 국보 제63호로 지정된 철조비로자나불상은 지금도 영험 있는 불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철불이 모셔진 대적광전 안에는 후불탱화와 지장탱화.신중탱화 등이 있으며 대적광전 앞에는 보물 제223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고,그 옆으로 요사채가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