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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도피안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到彼岸寺鐵造毘盧舍那佛坐像).강원 철원 본문

☆~ 풍경소리/강 원

철원 도피안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到彼岸寺鐵造毘盧舍那佛坐像).강원 철원

푸른새벽* 2007. 11. 11. 06:32

 

 

 

 

 

 

 

도피안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到彼岸寺鐵造毘盧舍那佛坐像)


높이 91cm,국보 제63호인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장흥 보림사 철불(국보 제117호)와 함께
9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철불이다
다만 보림사 철불보다 몸집이 빈약하고 얼굴의 세부 윤곽이 섬약하다
육계의 표현이 분명하지 않은 점,계란형의 단정한 얼굴에 퍼진 은은한 미소는 생동감 대신
수도하는 스님을 대하는 듯 친근감이 있다
가슴.손.다리의 표현에 양감이 부족하고,
양쪽 어깨를 감싼 통견의 법의는 얇게 빚은 듯한 평행의 옷주름이 넓게 파인 가슴으로 흘러내렸는데
이러한 옷주름은 9세기 후반 불상에 나타나는 특징적 형식이다
양손은 지권인(智拳印)을 해 비로자나불상임을 나타내고 있다


철불 뒷면에 "1500명의 향도(香徒)가 결연(結緣)하여 조성했다"는
기록과 함께 새겨진 100여 자의 명문 가운데 '咸通六年己酉正月(함통 6년 기유 정월)'이라는 문구가 있어
865년(경문왕 5)에 이 불상이 탄생했음을 알게 한다
858년에 조성된 보림사 철불과 함께 신라 하대의 새로운 양식을 대표하는 불상이 된 것이다


신라 말기의 철불 조성은 수도 경주를 벗어나 전남 지방을 비롯한 변방으로 확산돼나갔다
도피안사 철불도 북으로 치닫는 강원도 철원지방에서 조성되어 주목을 끈다
더구나 향도 1500명은 멱거사(覓居士)를 비롯한 호족과 일반 농민들까지 포함되는 수였을 것이므로
새롭게 변한 신앙형태를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도피안사 철불은 권위도 위엄도 없이 섬약하고 평이하지만 친근한 민간인의 인상을 풍기면서
당당하고 씩씩하며 약간은 도전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도피안사철조비로자나불좌상(到彼岸寺鐵造毘盧舍那佛坐像)


국보 제63호
강원 철원군 동송읍 관우리 450 도피안사 


강원도 철원군 화개산에 자리잡은 도피안사는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도선대사가 창건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도선대사가 철조비로자나불을 만들어 철원의 안양사(安養寺)에 모시려고 했으나 운반 도중에 불상이 없어져서 찾아보니 도피안사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세우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신라말에서 고려초에는 철로 만든 불상이 크게 유행했는데, 이 작품은 그 대표적인 예로, 불상을 받치고 있는 대좌(臺座)까지도 철로 만든 보기 드문 작품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갸름한 얼굴은 인자하고 온화한 인상이다. 평판적인 신체에는 굴곡의 표현이 없고, 양 어깨를 감싼 옷에는 평행한 옷주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었다.


몸에 비해 가냘픈 손은 가슴 앞에서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양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이 시기에 가장 유행한 형태로, 상대와 하대에는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중대는 8각을 이루고 있다.


불상 뒷면에 신라 경문왕 5년(865)에 만들었다는 내용의 글이 남아 있어서 만든 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하던 철조비로자나불상의 새로운 양식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능숙한 조형수법과 알맞은 신체 비례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