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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칠층석탑(春川七層石塔).강원 춘천 본문

☆~ 풍경소리/강 원

춘천칠층석탑(春川七層石塔).강원 춘천

푸른새벽* 2007. 11. 13. 21:11

 

 

 

 

 

 

 

 

 

 

 

 

 

춘천칠층석탑(春川七層石塔)


춘천 시내에서 소양로를 향하다가 소양로 2가에서 만나는게 칠층석탑이다
높이는 5.5m로 우람하나 훼손이 심하고 검게 그은 듯한 탑마저 덩달아 궁색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게
이 탑의 첫인상이다


화강암을 이용한 고려시대 중엽의 전형적인 일반형 석탑인데,
4매로 짜맞춰 구성한 중석은 각 면에 2개의 우주와 가운데에 탱주를 세웠으나 자연석에 가까울 만큼
표면의 마모가 심해 선이 있는 듯 없는 듯 희미하다
그 위에 갑석을 놓고 방형의 연꽃조각 굄대를 놓았는데,
연판의 배치가 모서리에 이를수록 약간 기우는 형이지만 힘이 있어 보이는 게
고려시대 연화문 배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연화문 받침이 유난히 큰 1층 몸돌을 받고 있고,
1층 지붕돌부터는 지붕돌 위 몸돌을 하나의 돌로 다듬어 올렸으나 6층과 7층의 몸돌은 따로 돼 있는 점도
이 탑의 특징으로 꼽을 만하다
문양이 없는 몸돌은 양쪽에 우주가 얕게 새겨져 있고,
몸돌의 두께는 일정하며 2층 부터는 사방의 크기만 급격히 작아지는 체감률을 보이고 있는데다
상륜부를 모두 잃어버려 본래의 모습을 알아 볼 수가 없다
썩 품위 있는 탑은 아니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정연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 이 탑은
한국전쟁을 겪으며 지붕돌의 모서리가 많이 떨어져나가는 등 심하게 훼손되었다
보물 제77호이다


이 탑 부근에는 여러 사찰이 있었다고 전하며
이곳이 고려 충원사(沖圓寺)터 였음이 밝혀진 것은 조선 인조(1623~1649재위)때이다
"충원현감(忠原縣監) 유정립(柳鼎立)이 인조반정으로 파직당하고 낙향하여
석등 부근에 집을 세우려고 터를 닦다가 지층에서 충원사명(沖原寺銘)이 있는 불기(佛器)를 발견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곳이 곧 충현사터였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또 '석등 부근'이란 기록으로 보아 이 탑 주변 어딘가에 석등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으나
지금 이곳엔 석등의 흔적도 찾을 수 없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춘천칠층석탑(春川七層石塔)


보물 제77호 
강원 춘천시 소양로2가 162-2 


춘천 시가지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탑이다.


조선 인조 때 이곳의 현감이었던 유정립이 인조반정으로 파직당하고 낙향하여 이 탑 부근에 집을 세우려고 터를 닦다가 ‘충원사(忠圓寺)’라는 글이 새겨진 그릇을 발견하였는데, 그 후부터 충원사 내에 속하였던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한국전쟁 때 심한 손상을 입어 보존 상태가 좋지 않은 데다 기단의 일부가 지하에 파묻혀 있었는데, 지난 2000년에 시행된 전면적인 보수공사로 기단부의 제 모습을 찾게 되었다. 이 석탑은 아랫부분을 발굴 조사한 결과 2층기단 위에 7층의 탑신이 놓여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윗층 기단도 탑몸돌에 비하여 제법 넓어 안정감이 있으며, 맨윗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긴 널판돌을 놓아 1층 탑몸돌을 괴고 있다. 7층에 이르는 탑신(塔身)은 위로 올라가면서 그 크기가 적당히 줄고 있는데, 기단이 넓은 것에 비해 몸돌이 작아 주목되지만 7층이나 되는 높이가 비례의 불균형을 보충하여 오히려 안정감을 준다. 느린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3층까지가 6단이고 4층 이상은 5단을 이루고 있으며, 네 귀퉁이가 살짝 들려있어 경쾌하다.


전체적인 모습으로 보아 고려 중기 즈음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모두 없어진 상태여서 아쉬움을 주고 있고, 지붕돌의 네 귀퉁이가 거의 파손된 상태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