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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괘석리 사사자석탑(洪川掛石里四獅子石塔).강원 홍천 본문

☆~ 풍경소리/강 원

홍천 괘석리 사사자석탑(洪川掛石里四獅子石塔).강원 홍천

푸른새벽* 2008. 2. 1. 21:55

 

 

 

 

 

 

 

 

 

 

 

 

 

홍천 괘석리 사사자석탑(洪川掛石里四獅子石塔)


홍천 사사자석탑은
지금 모두 밭이 되버린 두촌면 괘석리 절터에 있던 것을 1969년 12월30일 이곳으로 옮겨와
1971년 7월 보물 제540호로 지정했다
특히 사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삼층석탑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유물 중 하나여서 더욱 눈길을 끈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사사자석탑은 3.5m의 높이로 아담하다
기단은 이중인데 아래층 기단은 지대석.중석.갑석을 하나의 돌로 마련한 보기드문 형식이다
중석의 각 면에는 마모가 심하긴 하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2구씩의 안상을 새겼으며
안상 안에는 꽃문양이 들어 있어 어지간히 솜씨를 부렸음을 알 수 있다


위층 기단은 우주를 세우는 대신 얼굴을 밖으로 내놓은 네 마리의 사자가 키를 곧추세워
팔과 다리를 한데 모으고 앉아 탑신부를 떠받치고 있다
사사자 머리 위로른 부연이 없는 상대 갑석을 놓았으며,
갑석 이면에도 그 위로 놓인 1층 몸돌의 굄대 상단처럼 활짝 핀 연꽃을 조각하여 싱그럽다


그 위로 1층 몸돌을 올렸는데,1층 몸돌은 유난히 크고 2.3층의 몸돌은 아예 없어졌다
1층 지붕돌과 2층 몸돌,2층 지붕돌과 3층 몸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조성된 점도 눈길을 끈다
지붕돌층급받침은 3단으로 줄었으며,상륜부는 하나의 돌로 조성된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고,
상대갑석과 지붕돌이 많이 파손되긴 했지만 탑신을 받치고 있는 사사자는 비교적 온전하다
조각에 힘찬 기운은 줄었으나 탑의 규모는 아담하고,구례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 등
통일신라시대 사사자석탑의 양식을 계승한,고려시대에 드물게 보이는 사사자탑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홍천괘석리사사자삼층석탑(洪川掛石里四獅子三層石塔)


보물 제540호 
강원 홍천군 홍천읍 희망리 151-4 읍사무소 


원래 두촌면 괘석리에 있던 탑으로, 현재의 자리인 홍천 군청 안으로 옮겨 세웠다. 탑이 서 있던 원래의 위치는 일대가 절터였을 것이나, 지금은 밭으로 변하고 주변에는 기와조각들만이 흩어져 있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로, 4마리의 돌사자가 있어 4사자탑(四獅子塔)이라 부르고 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안에 꽃무늬조각이 장식되어 있어, 고려시대의 특징이 잘 담겨져 있다. 위층 기단에는 각 모서리에 돌사자 1마리씩을 두어 넓적한 윗돌을 받치게 하였는데, 이 탑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 사자들이 둘러싸고 있는 중앙의 바닥과 천장에는 연꽃받침대가 놓여 있어, 원래는 이곳에 불상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새겼고, 가파른 경사면 탓인지 얇고 밋밋하다. 네 귀퉁이는 살짝 젖혀져 뾰족하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네모난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만 남아 있다.


전체적으로 곳곳에 파손된 부분이 있고, 닳은 흔적이 보이나 대체로 본 모습을 잘 갖추고 있다. 기단에서 보이는 안상 조각수법과 돌사자, 연꽃받침 및 지붕돌의 3단 받침 등에서 고려시대의 양식을 물씬 풍기고 있다. 각 재료의 구성이 통일신라의 방법을 많이 따르고 있지만 고려시대 중기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