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강릉 칠사당(江陵七事堂).강원 강릉 본문

☆~ 풍경소리/강 원

강릉 칠사당(江陵七事堂).강원 강릉

푸른새벽* 2008. 6. 5. 07:16

 

 

 

 

 

 

 

 

 

 

 

 

 

 

 

 


강릉 칠사당(江陵七事堂)


전국 팔도의 지방 통치자인 관찰사(또는 감사)나 팔도 아래 행정 단위의 통치자인 원이 업무를 보던 곳이
관아이다
흔히 관찰사가 있던 관아를 '감영'이라 하고,원이 있던 관아를 '아사'라 한다


관아 건물은 보편적으로 해당 지방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자리를 잡았으며
관찰사 또는 원이 있는 본전,하급 관리들이 있는 사무청,그 밖에 관리의 생활을 뒷받침해주는 건물,
창고,여러 개의 문,정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강릉 시청 오른쪽에 자리잡고 있는 칠사당은 조선 시대 관공서 건물로서
호적,농사,병무,교육,세금,재판,풍속 등 일곱 가지 정사를 베풀었다 하여
'칠사당(七事堂)'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강릉 시청과 나란히 이웃해 있어 관공서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26칸 집 1채가 남아 있으며,
최초의 건립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인조 10년(1632),영조 2년(1726)에 크게 중수되었고,
고종 3년(1866)에는 진위병의 진영으로 쓰였으며,
이듬해 화재를 당한 것을 강릉 부사 조명하가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 수비대가 사용하였고,
이후 강릉 군수의 관사로 사용되었으며,한국전쟁 당시에는 민사 원조단이,
1958년까지는 강릉 시장이 관사로 이용하였다


예전에 향리들이 지방 행정 업무를 처리하던 곳으로 관가 건물답게 기둥 간격이 넓고 층이 높다
평면 구성은 ㄱ자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나 부분적인 변형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대청마루는 대청과 툇마루가 맞붙은 형식이나 특이하게도 두 마루 사이에 기둥이 없어
경계가 불분명하다
대청마루의 우물천장과 기둥 위에 단풍잎을 등에 진 물고기를 조각 장식해놓았는데
눈여겨볼 만하다


칠사당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관내에 서 있는 큰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는
가을이면 고색창연한 건물 앞의 마당을 온통 노랗게 물들인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칠사당(七事堂)


시도유형문화재 제7호(강릉시)  
강원 강릉시 명주동 38-1 


조선시대에 7가지 공무(호적·농사·병무·교육·세금·재판·풍속)를 보았던 관청건물이다.


처음 세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은 뒤, 영조 2년(1726)에 크게 확장하였다. 고종 3년(1866)에는 진위대의 청사로 쓰였으나, 불에 타 없어지고 부사 조명하가 이듬해에 다시 지었다. 일제시대부터 1958년까지 군수나 시장의 관사로 사용되다가 1980년에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앞면 7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ㄱ자형 구조로 앞면 왼쪽에 본 건물보다 높은 누마루를 연결하였다. 누마루 연결부분에는 다락방을 두었고 본 건물 왼쪽 1칸에는 온돌방을 설치하였다. 가운데 3칸은 대청마루를 두고 온돌방과 툇마루를 좌우에 두어 대청마루와 연결시켰다.


칠사당은 전체적으로 뒤의 산세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건물이다. 
*문화재청자료*

 

(2008년 5월의 칠사당은 안으로 빗장이 걸려 있었다

강릉단오제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 칠사당에서 준비를 하면서 일하기 편하자고

외부인 출입을 금지시키려고 안에서 빗장을 질렀다고 하는데...

강릉엔 매년 그렇게도 크게 열리는 단오제 준비할 공간이 없나부다

강릉시청건물은 무지하게 크고 우람하고 대단하드만~

 

담장 밖에서 겨우 찍은 사진이라 그 고졸한 아름다움을 다 담아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