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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유수부동헌(江華留守府東軒).강화고려궁지 본문

☆~ 풍경소리/인천광역시

강화유수부동헌(江華留守府東軒).강화고려궁지

푸른새벽* 2008. 12. 11. 07:27

 

 

 

 

 

 

 

 

 

 

 

 

 

 

 

 

 

 

 강화유수부동헌(江華留守府東軒)


고려궁터 안에 있던 조선 시대 관아건물로 오늘날의 군청과 같다
강화부는 조선 인조4년(1626)에 강화유수부로 승격되었다
이 무렵 이방청 등과 함께 지었으나 지금의 동헌이 그때 세운 건물은 아니다
인조16년(1638) 개수를 거쳐 1977년 복원.수리하였다
1769년 영조 때는 현윤관(顯允觀)이란 현판이 잠시 걸려 있었으나
현재는 명위헌(明威軒)이라 되어 있고
글씨는 당시의 명필이며 학자인 백하 윤순(白下 尹淳)이 썼다


건물은 이중의 장대석 기단 위에 네모꼴의 주처석을 놓고 네모로 다듬은 기둥을 세웠다
정면 8칸 측면 3칸이고,겹처마에 단층 팔작지붕이다
바닥 중앙에는 대청마루가 깔려 있는데,그중 동쪽 한 칸은 바닥을 높여 층마루를 형성하였다
전체적으로 특별한 장식이나 구성이 없는 소박한 집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7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강화유수부동헌(江華留守府東軒)


시도유형문화재 제25호(강화군) 
인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 743-1 


조선시대 관아의 하나로 강화지방의 중심업무를 보던 동헌이다.


영조 45년(1769)에 유수 황경원이 현윤관이라 이름을 붙였으며, 여러 차례 보수해서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앞면 8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명위헌(明威軒)’과 ‘이관당(以寬堂)’이라는 현판은 당시의 명필이자 학자인 백하 윤순(1680∼1714)이 썼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