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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동종(江華銅鍾).인천광역시 강화역사관 본문

☆~ 풍경소리/인천광역시

강화동종(江華銅鍾).인천광역시 강화역사관

푸른새벽* 2008. 12. 13. 16:36

 

 

 

 

 

 

 

 

 

 

 강화동종(江華銅鍾)


고려궁터 안에 있는 성문을 여닫는 시각을 알리던 종이다
숙종 11년(1685) 강화유수인 윤지완이 주조한 것을 후에 강화유수인 민진원이 정족산성에서 다시 주조한 종이라고 한다
같은 종을 두 번씩이나 주조한 까닭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1차 주조에서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높이 186.5cm, 밑지름 141cm, 두께 15cm이며,총중량 3.91kg 인 종이다


고려궁터 진입로인 김상용 선생 순의비 자리에 있었는데
1977년 궁터를 정화하면서 진품은 갑곶리 강화역사관으로 옮기고 모조품은 이곳에 두었다
정상부는 반구형 중앙에 쌍룡이 좌우로 향하게 조각되어 있으나
한국종의 특색인 음통이 없는 것이 기이하게 여겨진다
종몸 가운데로 두 줄의 띠가 비교적 거칠게 가로질러 드러난 것도 고려 시대의 종 주조법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점이다
어깨 부분에는 유곽대가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고,그 안에 연꽃이 새겨져 있다
종 아랫부분에 당좌가 없이 명문만 새겨져 있는 것도 드문 예다
명문은 숙종 37년 신묘년(1711)에 만들었다는 내용이다
종구에는 화문으로 문양대가 설치되어있다


전체적으로 솜씨가 간결하고 꾸밈이 없어 조선 시대의 문화적 특징을 보이고 있으나
주조의 흔적은 다소 거칠고 수준은 평이함에 그치고 있다
고종 3년(1866)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가려다가 실패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물 제11호이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강화동종(江華銅鍾)


보물 제11-8호  
인천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1040 강화역사관내부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사인비구가 숙종 37년(1711)에 제조한 종으로, 높이 198㎝, 입지름 138㎝이다. 종 꼭대기에는 두마리 용이 좌우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종을 매달기 위한 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종 윗면은 반원 모양으로 둥글고, 어깨 부분에는 ㄱ자형의 턱을 만들었다. 이것은 고려시대 꽃잎을 세워 장식하여 어깨부분이 돌출되었던 것의 변형된 모습으로 보인다.


어깨에서 훨씬 떨어진 곳에 사각형 모양의 유곽이 4곳에 있는데, 그 안에는 9개씩의 연꽃으로 된 돌기가 있다. 몸통 중앙에는 굵은 2줄의 횡선을 둘러 상·하로 2등분 하였다. 횡선 아래로는 종 입구 바로 위에 꽃무늬를 새긴 넓은 띠가 있을 뿐, 다른 장식은 하지 않았으며, 만든 시기를 알 수 있는 글이 남아 있다.


이 종은 전통적인 고려 종의 양식이 퇴화하고, 조선 종의 새로운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종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