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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부근리 고인돌(江華 富近里.강화지석묘).인천광역시 강화군 본문

☆~ 풍경소리/인천광역시

강화 부근리 고인돌(江華 富近里.강화지석묘).인천광역시 강화군

푸른새벽* 2008. 12. 13. 16:53

 

 

 

 

 

 

 

 

 

 

 

 

 

 

 

 

 

 

 

 

 

 

 

 

 

 강화 부근리 고인돌(江華 富近里고인돌)


만조된 둑처럼 넘쳐흐를 것 같은 들녘을 지나 하점면 부근리에 들어서면
밭 가운데 서 있는 거대한 고인돌이 씩씩한 모습으로 찾는 이를 반긴다
부근리 고인돌은 북방식 무덤인데 우리 나라 고인돌 중에서 가장 큰 것 중 하나이며 썩 잘생긴 고인돌이다
비스듬히 경사를 이룬 굄돌 위에 거대한 화강암 덮개돌이 올려져 있다


길이 7.1m,너비 5.5m에 50톤 무게의 돌이다
이 돌을 얹기 위해서는 적어도 장정 500명은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렇다면 당시 장정 한 사람이 거느린 가족을 5명으로 잡아도
이 무덤의 주인은 2500명 이상을 거느린 막강한 족장쯤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본래 두 개의 석실이 있었으나 모두 없어졌다
사적 제137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화에는 선사시대 유물.유적이 풍부하다
그 중 신석기시대의 대표적 유물인 빗살무늬토기가 이곳 해안에서,이후 하점면 삼거리.양도면 도장리 등지에서 발견되었고
청동기시대의 유적인 고인돌 무덤이 하점면 부근리를 포함해 거의 강화 전역에 80여 기가 분포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이 지역이 일찍부터 인류가 생활하기에 적당한 기후조건,기름진 토양을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3천 년 전쯤,청동기를 만들어 쓰는 사람들이 만주와 몽고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이들은 목축과 농사짓는 기술이 발달해 있었고
잉여농산물을 축적할 줄 알았으며,자연 집단과 조직이 이루어져 계급사회를 형성하게 되었다
계급이 높은 족장이나 지배자가 죽으면 당연히 많은 공력을 들여 무덤을 만들었다
이때의 무덤은 죽은 이에 대한 숭배와 신전의 기능까지 겸했다는 학설이 가능하다


이들의 무덤은 대개 고인돌.독널.독무덤 등이다
그 중에서도 일반적이며 대표적인 무덤이 고인돌무덤이고,
이는 다시 북방식.남방식.개석식으로 구분된다
북방식 무덤은 일단 그 모습이 씩씩하고 장쾌하다
4개 혹은 2개의 높은 굄돌을 세운 위에 하나의 평평한 덮개돌을 얹는데
시신이 매장되는 돌방을 지상에 노출시킨다는 점이 특징이다
강화 부근리와 평안남도,황해도 은율.재령강.황주천 일대에 집중되어 있다


남방식은 낮은 몇 개의 밑돌을 놓고 둥그런 윗돌을 얹는데 마치 앉은뱅이책상과 같은 모양이다
해서 바둑판식이라고도 불린다
북방식과 남방식을 쉽게 구분하자면 긴 탁자 다리 모양으로 굄돌이 위로 올라온 것은 북방식
짧은 다리에 윗돌이 노출되어 있는 것은 남방식으로 보면 거의 틀림이 없다
시신을 주로 지하에 안치하는 남방식 무덤은
전북 고창 아산면 상갑마을을 비롯한 호남지방과 경상도지방 등 주로 한강 이남에 분포하고 있는데
강화에는 북방식과 남방식이 고르게 분포되어 있고 어떤 것은 형식이 모호한 것도 있다


개석식은 돌방 사이에 받침돌이 없이 댓바람에 덮개돌이 올라앉은 형식이다
이를 '무지석식' 또는 '놓인형 고인돌'이라 부르기도 한다
가장 간편한 방식인 개석식은 한반도 전역에 분포되어 있다


고인돌의 형태가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은 집을 연상시키는 만큼
청동기인들은 집을 지을줄 알았을 것이라라고 추측하는 학자들도 있다
또 고인돌무덤은
대개 긴 쪽을 정면으로 삼아 남쪽을 향하고 있어 이미 방위를 구분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시신을 안치할 때 부장품을 함께 묻기도 한 것은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부근리 고인돌에서 북쪽으로 약 150m쯤 떨어진 은행나무 묘목밭에도 고인돌이 하나 있다
본래 사적 제137호인 고인돌무덤과 한 쌍이었으나 석재가 모두 파손된 채 굄돌 하나만 남아 있다
또 하점면 삼거리에 닿기 전의 논 한가운데에도 매우 크고 잘생긴 고인돌 무덤이 있어 만나 볼 만하다
고인돌무덤만 찾아다녀도 하루 해가 짧을 만큼 강화 지역 고인돌무덤의 분포도는 넓고 그 수가 많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강화지석묘(江華支石墓)


사적 제137호 
인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317 


지석묘란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만든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하는데,지상에 책상처럼 세운 탁자식(북방식)과 큰 돌을 조그만 받침돌로 고이거나 판석만을 놓은 바둑판식(남방식)이 있다.


강화군 하점면 부근에는 40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데, 이 중 부근리 고인돌이라 부르는 규모가 큰 탁자식 고인돌을 말한다. 전체높이는 2.6m이며, 덮개돌은 길이 6.5m, 너비 5.2m, 두께 1.2m의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이 고인돌에 대한 발굴조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인근 삼거리에 있는 고인돌에서 무문토기조각과 간돌검(마제석검), 돌가락바퀴(방추차)를 비롯한 유물들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 삼거리 유적과 비슷한 유물들이 들어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