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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청룡사지(靑龍寺址).충북 충주 본문

☆~ 절집.절터/충 북

충주 청룡사지(靑龍寺址).충북 충주

푸른새벽* 2008. 12. 15. 10:30

 

 

 











 






 






 

 











 

 











 

 






 

 청룡사터(靑龍寺址)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뒷산인 청계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옛 절터이다

 

청룡사를 맨 처음 누가 창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음과 같은 고려 시대의 창건설화가 전해진다.어느 화창한 봄날 한 도승이 근처를 지나는데 갑자기 소나기기 쏟아졌다.도승이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으려니까 하늘에서 용 두마리가 여의주를 갖고 놀다가 땅에 떨어뜨렸다.용 한 마리가 여의주를 향해 내려오다가 청계산 위로 올라갔고 여의주는 큰 빛을 내다가 사라지고 용도 사라지면서 비가 멎었다.산세를 자세히 살펴본 도승은 그곳이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의 길지임을 깨달았다.용의 힘이 꼬리에 있음을 상기한 도승은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암자를 짓고 청룡사라 했다.

 

그후 고려 말의 국사였던 혼수(混修)가 말년을 이곳에서 보내다가 조선 태조 1년(1392)에 입적했다.태조는 혼수에게 보각(普覺)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절을 크게 중창했다.그후로 청룡사는 여주 고달사,원주 거돈사,법천사,흥법사 등 남한강 줄기를 따라 자리잡은 절들과 마찬가지로 큰절로 내려왔으나 조선 말에 폐찰되었다.조선 말기에 판서를 지낸 민대룡이 소실의 묘를 이곳에 쓰려고 승려에게 돈을 많이 주어 절을 불태웠다고 하는데 불을 지르고 달아나던 승려가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가 덧붙여서 전해온다.

 

옛 절터의 산자락에 보각국사 부도와 부도비 등 볼 만한 석조물이 정비되어 있다.

 

청룡사터 입구의 널따란 주차장에서 오른쪽 사잇길로 들어가면 청룡사터가 나온다.참나무가 우거진 산길로 들어서서 조금 가면 오솔길 가운데에 비석 하나가 이끼를 덮어쓴 채 서 있다.숙종 18년(1692)에 세운 청룡사 위전비(位田碑)이다.


다시 등성이 오솔길을 따라가면 적운당이라 적힌 석종 모양의 부도 한기와 지붕돌 등 팔각원당형 부도의 부재들이 모여 있다.그 뒤편으로 더 올라가면 석등과 보각국사의 부도,부도비가 한 줄로 늘어서 있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