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충북 청원 백족사에서 본문

☆~ 여행과 인연/자연.사람.음식

충북 청원 백족사에서

푸른새벽* 2009. 7. 13. 17:23

하늘에서 비나무(雨木)를 빽빽하게 내리꽂아 심듯 한 요란한 비의 계절이라 작정하고 있었던 전남 영광.무안의 답사를 미루고 있었다 .폭우소식이 아니었다면 영광.무안은 아니더라도 가까운 곳은  몇 군데 다녀왔을텐데 불순한 일기에 괜히 나섰다가 행여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게라도 되면 어쩌나 싶어 문경답사 후,보름동안 저장된 사진만 들춰보며 지냈더니 요며칠 괜시리 짜증이나고 몸이 무거웠다.그래서 잠깐 날 맑은 사이 경기 이천과 여주를 잠시 돌아보긴 했었지만 영 성에 차지 않았다.병이다.정말 지독한 중독이다

 

"섣달 장마에 반짝볕 안나는 날 없다"라던 예전 어머니말씀이 무색하게 쏟아져도 한꺼번에 며칠 씩 너무 한다 싶었지만지난 금요일 거짓말처럼 날씨가 반짝 맑았다.때는 이때다.토요일부터는 다시 중부지방으로 요란한 비소식이 있으니 얼른 서둘러야지.생각같아서는 충남지역 그 중에서도 가장 남쪽으로 날아가고 싶었지만 그도 불안하여 충북지방 중 한 번도 발걸음하지 못한 청원으로 맘을 굳혔다.문화재청자료실에서 미리 정리해 둔 자료 말고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자료를 찾아 정리했다.비지정문화재 우선으로...

 

 

 

 

 

 

충북 청원군 가덕면 상야리

백족산 백족사

 

청원군의 답사에 가장 먼저 안심사를 찾아보고 동화사의 고개 삐뚜름한 비로자나부처님과 작은 탑도 보고 보물로 지정된 계산리탑도 보고 점심을 먹을까 어쩔까 하다가 찾은 백족사.백족사로 가는 길은 쉽지가 않았다.간절한 기도가 입속에서 저절로 튀어 나올만큼 길은 굽이굽이 심하게 휘어져 있었고 45도가 넘지 싶을 만큼 경사가 심한 자동차 한대 지나기도 좁은 길 이었다 .그야말로 천신만고라는 표현이 딱 맞지 싶었다.(나만 그렇게 생각하고 느꼈는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도 백족사는 백족산의 가장 정상부근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다다른 백족사는 아주 작고 아담한 절집이었다

 

백족사를 찾은 이유는 삼층탑 때문이었는데 산신각 앞에 자리한 탑은 심히 부족한 모양새였지만 그렇다고 알고 왔기에 얼른 사진부터 찍었다.그리고 법당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인자한 할머니 같은 상호의 석불이 있었다.내가 준비한 자료에는 없었던...

 

아무도 없는 절집에서 행여 누군가라도 만나면 어쩌나 싶은 조급함에 우선 사진부터 찍고 다시 탑을 살피러 법당 계단을 내려서는데 법당 옆 요사채임직한 건물에서 인기척이 났다.나이가 그렇게 많아뵈지는 않는 스님이었다.불자인 친구에게 배운대로 스님께 합장의 예를 갖추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곳을 찾았노라 말씀 드렸더니 "자동차로 오기가 참 힘이 든 곳에 이렇게 오셨으니 고마운 일이지요 .점심때가 되었는데 우선 공양이라도 하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스님의 맘은 고맙지만 둘러볼 곳 많아 정중히 사양을 하였다

 

스님께서는 조선 세조가 이 곳을 지나다가 발을 씻는데 발이 희었다고 해서 백족산이라고 산명이 붙혀졌다고 전해지는

백족산의 전설과 본래 '침진암(尋眞庵)'이라는 암자였다가 이 곳 산명에 따라 명칭을 변경하였다고 하는 백족사의 내력과  

엉성할 수 밖에 없는 탑과 특별하게 이쁜 백족사의 산신각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고 법당 안에 모셔진 불상도 대좌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가까이서 사진촬영을 허락하셨다.그리고는 법당안 좌우에 걸려 있는 팔부신중탱과 고승의 영정에 대해서도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는데...

 

언젠가 스님이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 그림들을 짊어지고 가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어인일이냐고 묻는 스님께 그 의문의 사람들은 그림이 낡아서 노스님께서 태워버리고 새로 그려야 한다기에 허락받고 가져오는 것이라 하는 것을 강제로 빼앗아 오셨다는 이야기도 해 주셨다.그러면서 요사채 안으로 들어가시더니 무언가 들고 나오셨는데 백족사를 근래에 새로 단장할 때 나왔다는 기와였다.깨진 두 장의 기와에는 乙酉 三月  崔順元 이라는 글이 아주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백족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된 이 절집의 뒷산은 세조 때 명명된 것이라는 전설을 믿어보자.세조의 재위기간은 1417~1468년이다.세조재위기간을 감안해서 계산해보니 을유년은 1465년 1525년 1585년 1645년 1705년 1765년 1825년 1885년 1945년 그리고 2005년이다.

 

스님의 말씀으로는 조선시대 기와라는데 내 부족한 지식과 안목으로는 확인할 길 없으니 그것이  못내 아쉽고 또 아쉽다.

국립문화재총람에 백족사는 고려시대의 사찰이라는 자료가 있으며 그 이외의 사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한다.

 

아담하고 고즈넉한 절집처럼 그 곳에 계신 스님도 차분하고 정이 많은 분이셨다.여지껏 많은 절집을 다녀보았지만 물 한모금 마시지 않았던 절집에서 그렇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근래에 납골당을 운영하고 있는 충청북도 땅 청원의 백족산 백족사에는 처마를 장식하고 있는 용머리가 너무 이쁜 산신각과 정갈하고 차분한 모습의 젊은 스님이 계신다.그 스님은 선봉이라는 법명을 가지신 분이다 (*스님의 뜻을 받들어 스님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