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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경기 파주시 파주읍 파주4리 이장님 본문

☆~ 여행과 인연/자연.사람.음식

경기 파주시 파주읍 파주4리 이장님

푸른새벽* 2009. 7. 14. 23:42

답사라는 이름으로 각종 문화재나 문화유적을 찾아다니지만 유독 나는 당간지주에 관심이 많다

각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 그냥 좋아서인데 그렇다고 당간지주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이나 안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바라만봐도 좋고 생각만 하여도 흐뭇하니...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답사를 떠나기 전 가능하면 당간지주를 볼 수 있는 곳을 먼저 선택하게 된다

 

당간과 당간지주는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아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를 중심으로 건립되기 시작한 조형물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불전(佛殿)에 번이나 당을 장엄하는 전통은 있었지만
정형화된 당간과 당간지주가 본격적으로 건립되기 시작한 것은 통일신라 초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는 경주를 중심으로 하여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특히 경주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양식의 당간지주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당시 불교가 신라 수도를 중심으로 성행하였으며
사찰의 조영과 경영이 경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로부터 영향을 받아 전국적으로 많은 양이 건립되는데
당간지주의 건립이 수도였던 개경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지방에 소재한 사찰들도 창건이나 중건 시 당간지주가 건립된다
즉,수도에서 지방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건립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것은 통일신라시대 사찰 가람의 영향으로
고려시대 들어와 전국 사찰에서 당간지주의 건립이 보편화되었음을 시사한다

이와 같이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에 경주를 중심으로 다양한 양식이 건립되면서 각 지방으로 전파되었고,

고려시대에는 개경이나 각 지방에서 치석 수법이 다른 당간지주가 건립되었다

*엄기표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위의 글에서 알 수 있듯이

당간과 당간지주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의 세력이 미쳤던 고장과 또 개경을 중심으로 한 고려시대에 대부분이 건립되었다

따라서 서울과 경기지방엔 현재 남아 있는 당간지주가 몇 되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정에  생뚱맞게 서 있는 장의사지 당간지주와 안성 봉업사터의 당간지주,

양주 회암사터의 당간지주 그리고 파주시 파주읍에 있는 파주리 당간지주 정도이다

그나마 경기북부에 남아있는 당간지주는 회암사터당간지주와 파주리 당간지주 정도로 알고 있다.

 

 

 

2008년 10월 2일 

거리가 멀지 않아서 그런가 경기북부 쪽으로의 답사는 그리 간절하지가 않다

하지만 파주시를 작정하고 돌아볼 요량을 한 것은 파주에 있다는 파주리당간지주를 만나기 위함이었는데

예전에 비해서 잘 정돈 되었다고는 하나 아직도 경기 북부,특히 파주나 일산.고양쪽의 도로사정은 만만치 않았다

집에서 가까운 동선으로 잡아 우선 소령원을 돌아보고 다음으로 찾은 곳이 파주리당간지주였는데

내가 가진 자료의 주소대로 찾아간 곳은 농협창고 뒤쪽의 빈 공터였다

당간지주라면 기다란 돌기둥이라 어지간하면 멀리서도 보일터인데 도통 내가 닿은 곳엔 그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10월 한낮의 뙤약볕 아래서 행여 그 고장의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그 자리에서 서성이고 있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어르신을 만났다

여차저차한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그 돌기둥은 저 농협창고 뒤편에 있는데 거기로 들어가보려면 이장님을 만나야 해 돌기둥이 있는 곳을 잠궈놨거든"

그러면 이장님은 어떻게 만나뵈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장님이 운영하는 농약상회가 큰 길가 농협 건너편에 있으니 그리고 가라고 일러주셨다

파주리 작은 읍내엔 농약대리점이 여러곳이었다

농약대리점마다 들어가서 이장님이 운영하는 곳이냐 물어보고서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파주4리 이장님은 참 친절한 분이었다

당간지주를 찾아 온 이유를 설명했더니 가게도 비워둔채로 열쇠를 들고 나오시더니 따라오란다

당간지주는 농협창고 뒤 여염집 담장 안에 있었다

녹슨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비좁은 공간에 당간지주 한짝이 시멘트바닥에 꽁꽁 묶여 있는듯 했다

그 주변은 祭를 지내고 치우지 않은 쌀과 각종 쓰레기 들이 널려 있었다

"해마다 이곳에서 제를 지내고 있는 영험한 장소인데  어느 몹쓸 인간들이 이렇게 어질러 놓았을까 모르겠네

6.25 이전까지만 해도 밭 한가운데 두 개가 있었고 당간지주 옆에 작은 우물이 있어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 물을 길어다 먹었어요
그런데 6.25 이후에  당간지주가 서있는 바로 옆에 미군부대가 들어서면서 한 짝을 가져갔는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했는지 몰라요"

지금 당간지주 옆에 있었다던 우물은 자취도 없다


자분자분 당간지주가 외짝일 수 밖에 없는 내력을 설명해주셨던 이장님은  당간지주가 사찰에서 사용했던 것으로는 알지 못하고 있는것 같았다 .마을사람들 역시도 당간지주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곳을 신성한 장소로 여겨 매년 한 번씩 이곳에 모여 제사를 올린다며

마을사람들의 뜻을 모아 곧 당간지주가 있는 근처의 땅을 매입해서 넓고 좋게 다시 모실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현재 이 당간지주와 관련된 사찰의 연혁이나 사지(寺址)의 흔적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이 일대가 개발되면서 모두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옹색한 터에 오두마니 홀로 갇혀 서 있는 파주리당간지주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 외짝의 당간지주에게 보내는 정성은 극진하였다

외지에서 온 낯선이에게 번거롭다 않고 당간지주가 있는 곳을 안내해주시고

당간지주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셨던

파주시 파주읍 파주4리 이장님

기꺼이 사진촬영에도 응해주셨던 이장님이 바로 우리문화재를 올곧게 지키는 훌륭한 지킴이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