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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반죽동당간지주(公州班竹洞幢竿支柱.대통사지당간지주).충남 공주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공주반죽동당간지주(公州班竹洞幢竿支柱.대통사지당간지주).충남 공주

푸른새벽* 2009. 10. 20. 16:34

 

 





 

 





 









 





 

 









 





 

 





 









 





 

 

공주반죽동당간지주(公州班竹洞幢竿支柱).대통사지당간지주

 

공주 반죽동 당간지주는 성왕 때 양나라의 무제(武帝)를 위하여 창건되었다는 대통사지(大通寺址)로 추정되는 곳에 서 있다.대통사는 527년 이나 529년에 창건된 사찰로 웅진시기 백제 불교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사찰로 인식되고 있으나아직까지 그 정확한 위치나 구체적인 사역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이 일대에서는 강당지로 보이는 기단 유구와 그 남쪽에 금당지와 탑지,그 앞쪽으로 당간지지가 있어 백제 가람으로 추정되고 있다.또한 '대통(大通)'이라 쓰인 명문기와가 출토되었고,석조(石槽) 2기가 남아 있다.


현재 두 지주는 기단부가 파손이 심한 상태이며,동서로 마주 서 있다.기단부와 지주 하단부는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파손되었다고 한다.지대석은 매몰되어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며,지주를 받는 기단은 파괴되었지만 각 면을 구획하여 전후면 4구,양 측면 2구씩의 안상을 음조(陰彫)하였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기단 면석부에 음조된 안상은 부드러운 인상을 주고 있다.그리고 간대석은 파손이 심하여 원형을 알기는 어렵지만 원래는 사각형 대석을 두 지주 사이에 끼우고,원좌와 원공을 마련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두 지주는 기단 상면에 사각형 홈을 마련하여 끼워 세우도록 하였다.마주보고 있는 지주 내면에는 아무런 조식이 없고 거칠게 다듬었으나 다른 면은 장식성이 뛰어나다.전후면과 외면은 외곽에 일정한 너비로 도드라지게 하여 윤곽대를 돌렸다전후면은 윤곽대가 장식된 다른 지주에서는 보기 드물게 밑부분도 윤곽대를 돌려 지주부를 분명하게 구분하였다.그리고 외면은 가운데에 반원형의 세로띠를 높게 양각하여 장식적인 의장을 더하였는데,좌우측에 연하여 낮게 돌기된 세로띠를 추가하였다. 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반 정도 평평하다가 유려한 호선을 그리며 외면으로 이어지고 있다.당간은 간구와 간공을 시공하여 고정토록 하였는데,간구는 지주 내면 꼭대기에 사각형으로 시공하였고,간공은 중간부분에 사각형으로 시공하였다.


그런데 이 당간지주는 최근 발굴 조사에 의하여 여러 가지 의문점이 파생되었다.먼저 당간지주는 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치석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지주부의 윤곽대와 외면 중앙부의 호형 장식,상단부의 부드러운 곡선 처리,기단부의 마련 수법과 안상 표현 수법 등이통일신라시대 건립된 당간지주들과 양식적으로 강한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그런데 지대석 하부에 대한 시굴갱 조사 시 그리 오래지 않은 우물이 발견되었다.우물은 안쪽에 아궁이에 사용되었던 검게 그을린 석재를 가득 채웠을 뿐만 아니라 우물의 1/3 정도가 당간지주의 기단과 겹쳐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이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당간지주를 세우기 위하여 우물을 의도적으로 폐쇄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한다.또한 당간지주 아래에서 백자편이 출토되었다.이것은 이 당간지주가 조선시대 이후 원위치에 다시 세워졌거나 옮겨졌음을 알 수 있게 한다.즉,지금까지 대통사지의 위치를 추정하는데,지표 역할을 하였던 당간지주가 원위치가 아님을 알려주는 증거이다.당간지주는 당간이 철이나 나무로 제작될 경우 그 수명이 오래가지 못하므로 보수나 중건을 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사찰의 확장이나 중창 시 옮겨야 될 필요성이 대두될 가능성도 많았다.
따라서 건립 이후 보수나 중수하는 과정에서 원위치가 옮겨졌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지주부는 화려하면서도 정교한 치석 수법을 보이며,외곽면을 부드럽게 다듬어  강인하고 웅장한 인상보다는 곡선적인 아름다움과 친근감을 느껴지도록 하였다.이러한 양식의 당간지주는 경주를 중심하여 통일신라 중기에서 말기까지 성행하였다.그리고 건립 시기와 관련하여 기단 면석에 음조된 안상 조식 수법도 통일신리시대의 수버을 보인다.따라서 공주 반죽동 당간지주는 대통사가 창건된 이후 당간지주가 전국적으로 성행하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그 시기는 통일신라 중기인 것으로 보인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공주반죽동당간지주(公州班竹洞幢竿支柱)


보물 제150호 
충남 공주시 반죽동 301 


대통사의 옛터에 남아 있는 이 당간지주는 서로 마주보는 안쪽 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으나, 바깥쪽 면은 가장자리를 따라 굵은 띠 모양을 도드라지게 새겼다.

 

기둥머리 부분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모를 둥글게 깎았으며, 안쪽 위·아래 2곳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해 네모난 구멍을 파 놓았다.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지주의 받침돌과 한쪽 기둥의 아래부분이 많이 손상되었으나, 전체적으로 소박하고 형태가 간결하다. 이 일대의 다른 유물들과 함께 백제의 유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받침돌에 새겨진 안상(眼象)을 조각한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