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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복사지 당간지주(皇福寺址 幢竿支柱).경북 경주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경주 황복사지 당간지주(皇福寺址 幢竿支柱).경북 경주

푸른새벽* 2009. 11. 6. 16:01

 

 

 









 

 





 





 

 황복사지 당간지주(皇福寺址 幢竿支柱)

 

경북 경주시구황동 103


황복사는 652년 의상(義湘)이 출가한 사찰이며,경문왕의 시신도 여기에서 화장하였다고 한다.그리고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함 명문에 의하면 석탑은 692년 죽은 신문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세웠다고 한다.그런데 신문왕비인 신목태후(神睦太后)와 효소왕이 죽자 706년 다시 사리와 불상,다라니경 1권 등을 석탑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황복사가 왕실과 밀착되어 있었으며,700년을 전후한 시기에 대규모의 불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사지는 경작지와 민가로 변하였으며 석탑,귀부 2기,십이지상이 부조된 석조물 등 다수의 초석들이 흩어져 있다.


당간지주는 밭둑에 부러진 상단부만 살짝 노출되어 있다.더구나 1주 만 남아 있는 상태이며, 지주는 상부가 심하게 절단되어 일부만 남았다.

현재 노출되어 있는 높이는 43Cm로 밭둑과 지형으로 보아 깊게 묻혔을 것으로 보인다.

 

노출된 부위의 지주 규모가 60 X46Cm인 것으로 보아 전체적인 지주 규모가 작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주 내면에 사각형의 작은 간공이 시공되었다.지주 외곽 모서리를 깎은 흔적도 남아있다.


이와 같이 황복사지 당간지주는 일부만 남아 있지만 각 면을 정교하게 다듬은 정연한 치석 수법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황복사의 연혁으로 보아 삼층석탑과 같은 시기에 건립되었거나 그 직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