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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보문리당간지주(慶州普門里幢竿支柱).경북 경주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경주보문리당간지주(慶州普門里幢竿支柱).경북 경주

푸른새벽* 2009. 11. 7. 20:23









































































 경주보문리당간지주(慶州普門里幢竿支柱)


경주 남쪽으로 명활산 가까이에 진평왕릉이 있고,여기서 남쪽으로 넓게 트인 뜰이 신문왕릉까지 이어져 있다.이 넓은 뜰은 보문뜰로 불리는데,특히 금당평 일대가  보문사지로 전해진다.실제 이곳에서는 1916년 11월 '보문'이라는 명문 기와가 출토되어 절 이름을 알게 되었다.그리고 보문사는 황룡사구층탑찰주본기에 의해서 872년(경문왕 12) 이전에 창건되었음이 확인되었다.현재 사지가 있는 논 가운데에는 건물지,석조 등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남아 있다.


당간지주는 보문사지의 서남쪽에 남북으로 마주 서 있으며,간대석은 결실된 상태이다.현재 두 지주 사이에 사각형 대석이 끼워져 있는데,원좌나 원공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석재가 묻혀있어 하부를 확인할 수 없어 구체적인 것은 알 수 없지만 부러진 북쪽지주 상단부 부재일 가능성이 높다.
지주부는 지면에서 92Cm정도의 높이까지 냄녀을 제외하고 1단 굵게 하였고,상단부로 갈수록 가늘어지게 치석하였다.외면 외곽 모서리는 각을 깎았으며,정상부는 둔중하게 하여 전체적으로 단순하면서도 웅장한 인상을 주고 있으며,치석 수법이 사천왕사지나 남간사지 당간지주와 닮아 있다. 그런데 남쪽 지주의 너비와 폭은 북쪽지주에 비하여 5~6Cm가 작다.그리고 두 지주는 하단부 치석 수법이 다르고,북쪽지주는 하부에 간공이 마련되지 않았으며 외면 외곽 모서리를 깎은 수법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이러한 것으로 보아 두 지주가 같은 시기에 건립된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즉,어느 한쪽 지주가 부러지거나 파손되자 후대에 보강된 것으로 보인다.


당간을 고정하는 간공은 두 지주가 다르게 시공되었다. 남쪽지주는 상중하 3개의 간공을 시공하였는데,모두 사각형으로 관통되었다.그런데 북쪽지주 간공은 하부에는 없으며,남쪽지주 중간에 있는 간공과 같은 높이에 관통되지 않은 사각형 간공을 시공하였다.그리고 상부는 절단되어 확인할 수 없는 상태이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당간은 지주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간을 끼워 고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보문사지가 위치한 보문 뜰에는 연화문 당간지주가 있는 사찰과 황복사지 등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으며,이들 사찰에도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었다. 그런데 보문사지 당간지주는 각 면을 고르게 다듬었으며,간공 시공 수법과 지주 하단부 치석 등이 경주 지역에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건립된 당간지주들과 친연성을 보인다.따라서 보문사지 당간지주는 사지에 남아있는 유물들과 가람배치 등으로 보아 8세기 전반경에 전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경주보문리당간지주(慶州普門里幢竿支柱)

 

보물 제123호
경북 경주시 보문동


이곳은 ‘보문(普門)’이라고 새겨진 기와조각이 출토되어 보문사터로 알려졌으며, 터에서 상당히 떨어진 북쪽에 이 당간지주가 서있다.

 

지주의 양 기둥이 62㎝ 정도의 간격을 두고 마주 보고 있으며, 양쪽 기둥 가운데 북쪽 기둥은 윗부분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고, 남쪽만 완전한 상태로 남아있다.


당간을 고정하기 위해 마련한 구멍은 위·중간·아래 3곳에 있는데, 남쪽 기둥은 구멍이 완전히 뚫렸고, 북쪽 기둥은 반쯤 뚫려 있어 특이하다.

이 당간지주는 전체적인 형태가 가늘고 긴 모습이나 안정감이 있다. 다른 당간지주에 비해 비교적 작은 규모로, 매우 소박한 모습의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