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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동천동당간지주(慶州 東川洞幢竿支柱).경북 경주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경주 동천동당간지주(慶州 東川洞幢竿支柱).경북 경주

푸른새벽* 2009. 11. 8. 12:59

 

 









 





 





 

 





 









 

 

경주 동천동당간지주(慶州 東川洞幢竿支柱)

 

경주시 동천동 507-7 (표암재 내)


당간지주는 원위치에서 옮겨져 경주시 동천동 표암재에 남아 있다.현재 1주만 남아 있는데,다른 석조물과 함께 석축의 일부 부재로 활용되었다가 최근에 노출되었다.당간지주가 다른 용도로 전용이 쉬워 인근에 있었던 것을 옮겨와 석축을 쌓는데 활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주부는 가운데가 절단된 상태이다. 지주는 하부가 깊게 묻히는 점으로 보아 현재보다 길다란 형태였을 것이다.즉,지주의 치석 수법으로 보아 정연한 기단이 마련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기단부와 결구된 부위가 부러진 것으로 보인다.

 

지주는 각 면이 고르고 화려하게 치석되어 주목된다.지주는 전체면 외곽에 일정한 너비로 윤곽대를 두어 장식하였으며,가운데에는 돋을대를 두었다.그리고 외면은 중간 부분에 일정한 너비로 1단 낮게 단을 두어 치석하였다.이러한 치석 수법은 불교문화가 완숙한 시기에 제작된 삼랑사지나 불국사 당간지주 등에서 볼 수 있다.특히 지주 내면은 일반적으로 면을 고르게 다듬어 마무리 하는데,이 지주는 내면 외곽에도 일정한 너비로 윤곽대를 장식하여 다른 당간지주에서는 보기 드문 수법이다. 그리고 지주 내면에는 사각형의 간공과 간구를 마련하여 당간을 고정하였다.


이 당간지주는 전하는 바에 의하면 헌덕왕릉 주변 동천사(東川.泉寺)에서 옮겨왔다고 한다.헌덕왕릉 주변에는 동천사와 임천사(林泉寺)가 있었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동천사의 창건시기는 구체적으로 전하는 것이 없다.다만 진평왕이 오백성중의 봉안과 함께 5층탑을 세웠으며,전답을 헌납하였고 동해의 용왕이 절에 자주 와서 법문을 들었다고 한다.신라에서는 세 마리의 호국용이 살고 있는 우물이 있는데,동천사의 청지(淸池)와 동지(東池),분황사의 우물이었다고 한다.이러한 것으로 보아 동천사의 창건 시기는 상당이 올라갈 것으로 보이며,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헌덕왕릉 바로 옆에 있었던 것으로 전하는 임천사는 왕이 기우제를 지낸 사찰로 전하고 있다.이러한 것으로 보아 양 사찰이 모두 대규모 사원이었으며,호국사찰로 전형적인 가람을 유지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당간지주가 전하는 바와 같이 동천사나 임천사에서 옮겨 왔다면 두 사찰의 연혁이나 그 위상을 고찰하는데 중요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다른 당간지주에 비하여 지주부의 치석 수법이 뛰어나고 화려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이러한 점은 통일신라시대 불교가 성행하면서 각 사찰에서 화려하고 완숙한 양식의 당간지주를 건립하는 8세기대에 제작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