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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구황동당간지주(慶州九黃洞幢竿支柱).경북 경주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경주구황동당간지주(慶州九黃洞幢竿支柱).경북 경주

푸른새벽* 2009. 11. 11. 12:01

 

 





 





 

 









 





 





 

 









 

 









 

 

경주구황동당간지주(慶州 九黃洞幢竿支柱)


구황동 당간지주는 일제 강점기에 조사 소개되기도 하였다.당간지주가 서있는 남쪽으로는 황룡사지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분황사가 자리하고 있다.그래서 당간지주의 위치가 황룡사에서는 뒤편에 해당하고,분황사에서는 앞쪽으로 볼 수 있다.그리고 이 당간지주의 소속 사찰은 황룡사 진입 공간에는 황룡사의 것으로 확실시되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기 때문에 분황사로 추정된다.두 지주는 분황사에서 남쪽으로 약 50m지점에 남북으로 마주 서있다.


두 지주는 동일한 치석 수법으로 지주 하단부가 매몰되어 기단은 확인할 수 없으나,간대석과 지주 하단부 치석 수법으로 보아 별도의 기단이 시설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간대석은 다른 당간지주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수법을 보인다.즉,간대석은 정교하지는 않지만 귀신(龜身).귀갑(龜甲).귀두(龜頭) 등이 남아 있어,귀부를 모방하여 치석하였음을 알 수 있다.귀부의 상부에는 동서쪽면에 연화문이 장식된 사각형의 좌대를 높게 마련하여 당간을 받치도록 하였다.그런데 당간을 끼우는 원공은 시공되지 않았다.그리고 좌대 서쪽 편으로는 사각형의 낙수홈을 만들었는데,당간이 놓인 부분에서 물이 고인 다음 낙수홈을 따라 빠지도록 하였다.이와 같이 간대석 상면 좌대의 치석 수법으로 보아 당간의 제일 하단부는 평면이 사각형이었으며,철당간보다는 석당간이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원좌나 원공을 시공하지 않은 것은 당간이 지주부에 간공을 3개 마련하여 단단하게 고정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지주는 귀부형 간대석 동서쪽에 'ㄷ' 자형 홈을 파서 그 사이에 끼워 세웠다. 지주부는 각 면을 고르게 다듬었으며,평면 사각 석주형(石柱形)으로 상부로 올라가면서 좁아지도록 하였다. 그리고 외면 모서리를 좁게 깎았으며,외면은 하단부를 1단 높게 치석하였다.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유려한 호형을 그리도록 하였다.이와 같이 지주부는 전체적으로 정연한 치석 수법을 보이면서 단아한 인상을 주고 있다.간공은 지주부 상중하 3곳에 시공하였는데, 원형으로 관통되었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을 간공에 만 끼워 고정하였으며 간구는 마련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주부 하부를 1단 높에 하고 관통된 간공을 마련한 수법,지주부의 정연한 치석 수법 등은 사천왕사지.경주 보문리.남간사지 당간지주 등 경주 일원에서 건립된 당간지주들과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그리고 경주 지역에 위치한 당간지주들과 비교했을 때 통일신라에서도 이른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특히 독특한 간대석이 채택되고 있어 귀중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경주구황동당간지주(慶州九黃洞幢竿支柱)


시도유형문화재 제192호(경주시)
경북 경주시 구황동 315-2


분황사의 것으로 보이는 이 당간지주는 양 기둥에 별다른 조각을 두지 않은 간결한 모습이다. 기둥사이에 놓인 당간의 받침돌이 특이하게도 거북모양이다. 기둥 안쪽면의 아래·중간·윗부분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을 뚫어 놓았다.

 

양 기둥 사이에 거북받침돌이 있는 특이한 양식으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