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경주 사천왕사지 당간지주(四天王寺址 幢竿支柱).경북 경주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경주 사천왕사지 당간지주(四天王寺址 幢竿支柱).경북 경주

푸른새벽* 2009. 11. 12. 00:10

  





 





 





 

 





 





 





 

사천왕사지 당간지주(四天王寺址 幢竿支柱)

 

경북 경주시 배반동 935-1


사천왕사지는 경주 낭산(狼山)의 남쪽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이 사찰은 신라가 당나라군을 불력(佛力)으로 물리치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당시 문무왕(661~681)은 명랑법사(明郞法師)로 하여금 절을 짓게 하고 비법(秘法)을 행하여 당나라군이 타고 오는 배를 바다에 침몰케 하였다.사천왕사가 자리잡은 신유림(神遊林)은 미추왕(味鄒王) 이래 전불시대(前佛時代)7개 가람터의 하나로 전해졌다.


특히 선덕여왕 때에는 이 곳이 바로 도리천이라 하여 신성시 되었고 유명한 신라의 조각가 양지(良志)가 예술적 기량을 발휘한 곳이기도 하다.
신라 멸망 직전에는 사천왕사 오방신(五方神)이 쥔 궁현(弓弦)이 끊어져 멸망의 징후가 나타났다고 한다.이러한 사실은 사천왕사가 신라의 호국 사찰로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현재 확인된 사천왕사지의 규모는 동서 약 110m,남북 약 120m이다.사지 한가운데로 철로가 지나가고 있으며,지금도 사지 일대에 건물지,초석,목이 잘린 2기의 귀부 등이 남아 있다.


당간지주는 사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동서로 세워져 있는데 1928년 사천왕사지 부근 민가 옆에 있었던 것을 옮겨 세운 것이라고 한다.서쪽지주는 간공 부위가 절단되어 결구한 흔적이 있다.기단과 간대석은 남아있지 않다.두 지주의 하부는 내면을 제외하고 지면에서 일정한 높이까지 상부보다 1단 높게 치석하였다.이것은 지주 하부를 굵게 하여 지주의 안정감과 견고성을 주기 위한 치석 수법으로 보인다.지주의 각 면은 고르게 다듬었으며 별다른 장식은 없다.다만 지주 외면 외곽 모서리를 좁게 깎았으며 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부드러운 호선(弧線)을 그리도록 하였다.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공은 상.중.하 3곳에 마련하였으며,지주 내면 꼭대기에 마련되는 간구는 시공되지 않았다.간공은 59cm간격을 두고 모두 관통되어 시공되었다.하부 간공은 사각형,중간 간공은 원형,상부 간공은 사각형으로 간공의 평면 형태에 변화를 주었다.


당간지주의 하부가 어느 정도 묻혔는지 확인할 수 없어 전체적인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지주의 너비와 폭이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소규모 지주였던 것으로 보인다.또한 사천왕사가 불력으로 당나라군을 물리치기 위하여 갑자기 세워진 사찰이었으므로 장식이 많고 치석 수법이 뛰어난 대규모 당간지주를 세울 충분한 여유가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어쨌든 사천왕사는 기록에 의하면 문무왕 19년(679)에 완공된 사찰이었다.당간지주도 사천왕사가 창건되기 시작하여 가람의 면모를 갖추어 나갈 때 배치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7세기 후반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당간지주의 치석과 간공 시공 수법 등이 초기적인 형식과 양식을 보이고 있어 주목되는 자료이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