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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망덕사지 당간지주(望德寺址 幢竿支柱).경북 경주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경주 망덕사지 당간지주(望德寺址 幢竿支柱).경북 경주

푸른새벽* 2009. 11. 12. 00:01

  

 





 





 





 









 





 





 





 

 

 망덕사지 당간지주(望德寺址 幢竿支柱)

 

당나라는 유인궤를 계림도총관으로 하여 신라를 공격하였으나 패하고 만다.이에 화가 난 당나라 고종은 김인문金仁問을 옥에 가두고 신라를 침략하게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신라는 명랑법사로 하여금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짓게 하고 문두루비법文豆屢秘法을 행하자 신라를 침략하던 당나라 배들이 바다에서 모두 침몰하고 만다.이런 소문을 들은 당나라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려고 신라에 사신을 보낸다.신라는 사신에게 사천왕사를 보이지 않고 속이기 위하여 685년 그 옆에 급히 새로운 절을 짓게 되는데 바로 망덕사이다.이후 효소왕 1년(692)에 절을 정식으로 짓지 시작하여 697년에 완공하였다.755년에는 망덕사의 탑이 흔들렸는데 이것은 당나라에서 안록산安錄山의 난이 일어났다고 전하는 신호였다고 한다.


망덕사지는 일제 강점기에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이후 1969년과 1970년 2차에 걸쳐 발굴되었다.그 결과 전형적인 쌍탑 가람배치로 확인되었다.현재 절터에는 동서 목탑지와 금당지,강당지,중문지,회랑지 등이 남아 있다.또한 발굴 결과 당간지주 위치가 서탑지에서 서남쪽 30m지점인 것으로 조사되어 원위치가 아닌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두 지주는 현재 논 가운데 있는 높은 축대 위에 동서로 마주 서있다.현재 기단과 간대석은 결실되었으며 서쪽지주 정상부가 약간 파손되어 있는 상태다.지주부는 전체적으로 별다른 장식이 없는 단순 소박한 양식이다.외면 외곽 모서리는 상단부에서 154cm되는 부분까지만 깎았으며 정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부드러운 호선을 형성하도록 치석하였다.당간을 고정하는 간杆은 지주 내면 꼭대기에 U헝의 간구를 마련하여 끼우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망덕사지 당간지주는 각 면을 고르게 다듬었으며 전체적으로 소박한 인상을 주고 있다.당간지주는 망덕사의 연혁과 치석 수법으로 보아 사찰이 초창되어 면모를 갖추어나간  7세기 말경(692~697)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경주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당간지주가 성행하기 전의 석주형石柱形 양식을 보이고 있는 점에서 주목된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망덕사지 당간지주(望德寺址 幢竿支柱)


이 당간지주는 망덕사터 서쪽에 65㎝ 간격으로 서로 마주보고 서 있다.


표면에 아무런 조각과 장식을 두지 않는 대신, 지주 바깥면의 모서리를 윗부분부터 줄어들게 하여 장식적인 효과를 내었다.


기둥머리는 안쪽 측면에서 바깥면으로 내려오면서 곡선을 그리며 외부로 6㎝쯤 깎여져 경사를 이루고 있고, 안쪽 윗면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네모난 홈을 만들었다. 각 면에 비록 조각은 없으나 소박하고 웅장한 기풍을 나타내고 있다.


망덕사는『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 신문왕 5년(685)에 창건된 사찰인데 이 당간지주도 당시에 같이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