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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경북 성주에서의 짧은 인연 본문

☆~ 여행과 인연/자연.사람.음식

경북 성주에서의 짧은 인연

푸른새벽* 2010. 3. 29. 12:32

 

 써야 할 답사기와 몇몇 정리되지 않은 글들이 제법 쌓여 있는데 막상 그것들을 정리하자니 왠지 꾀가 나서 미루어 두고 있는데...오늘 대충 써 놓은 몇 편의 글을 읽어보던 중 슬며시 웃음이 나는 글이 있었다.몇 해전인가 절터를 돌아보는 3박 4일의 답사여행 중 경북 성주에서의 잊지못할 에피소드 한토막을 옮겨본다.

 

세월을 헤아리기도 까마득한 예전에 TV 시리즈로 방영이 되었던 외화(外畵) '야망의 세월'.그 '야망의 세월'에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피터 스트라우스'라는 배우. 단정한 이목구비와 그윽한 눈매에 반해 한동안 무척이나 좋아 했었는데 그 피터 스트라우스에 버금가는 외모를 가진 한 남정네를 경상북도 성주라는 고을에서 만나는 행운(?)이 있었다.

 

절터를 찾아가는 길을 잘못들어 고생하며 합천의 영암사터와 해인사 그리고 법광사터를 보고 경북 성주군 수륜면의 법수사터로 향했는데 날은 이미 어둑신해져 있었고 열시간 넘게 운전을 했던 터라 체력도 바닥 날 즈음 생각만으로도 눈물나게 그리웠던 법수사터에 도착했다.어두워진 절터 삼층석탑에 기대어 앉아 사금파리 조각들을 꽂아놓은 듯한 가야산 자락을 바라보며 족히 두어시간은 넘게  있었더랬다.

 

이미 사방은 어두워져 천지분간을 할 수 없게 깜깜했고 하루종일 비어있던 위장은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아우성인지라 자꾸 뒤돌아봐지는 미련을 떨치고 일어나 찾아간 곳은 경찰서는 아니었고 지금에야 경찰서니 파출소니 하는 명칭을 다시 쓰지만 그 때는 무슨무슨 지구대였지 싶다.경북 성주군 수륜면의 작은 파출소.

 

혼자 여행을 하면서 가장 난감한 것이 숙소를 정하는 것인데 내 경우에는 물어볼 것도 없이 그 고장의 경찰서나 파출소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는 편이라 수륜면에서도 당연히 찾아간 곳이 파출소 였다.작은 고을이라서 그런지 파출소 마당은 가로등 하나 없이 깜깜했지만 자동차 소리를들은 경찰 한분이 나와서 내 이야기를 듣더니 친절하게 숙소로 정할만한 곳을 안내해주었다.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자동차를 돌려 나오려는데

우지직 쾅~

 

깜깜해서 그런것도 아니고 운전미숙도 아닌데 아마 피로한 탓에 잠시 방심을 하였던가 자동차를 후진하다가 뒤에 있는 차를 그만...황급히 자동차에서 내려 보니 내 자동차는 문제가 아니고 부딪힌 자동차를 보니 오른쪽 뒷 범퍼가 심하게 긁히고 차제가 우그러진 것이 아닌가. 나원~ 운전경력 20년에 후진하다가 사고를 내기도 처음.

 

잠시 어쩌나 싶었지만 파출소로 들어가서 이실직고를 했더니 어깨에 무궁화이파리(경찰의 계급장을 모르니 그렇게 본다) 네 개를 얹고 있는 분의 자동차라고 했다.그런데 그 자동차의 주인을 보는 순간 잠시 아찔했던 그 기분. 아~!! 경찰관 아저씨도 이렇게 멋지고 근사하고 잘생긴 분이 있구나~ 나른한 피로가 묻어 있는 얼굴 바로 그 피터 스트라우스였다

 

어떤 작가가 쓴 글에 '마흔이 넘은 남정네들은  아리따운 여인을 보면 우선 안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 했지만 오십이 넘은 여인네들은  멋진 남성을 만나면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고 즐겁다는 사실을 아시는가~ㅎ

 

상황을 알아차린 그 분이 마당으로 나와서 이리저리 자동차를 살펴보더니 "음주는 아니지예? 면허증은 있습니꺼?"이러저러해서 이곳에 왔는데 이런일이 생겼다는 설명을 들은 그 피터 스트라우스 닮은 경찰관 아저씨는 "우짭니까  일부러 그런것도 아니고  마  그냥 가이소"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다며 면허증을 보여주고 연락처까지 알려준 뒤 숙소로 정한 곳으로 향했다.

 

다음날 경북 청도로 향해서 출발하며 밤새 찜찜했던 그 일을 해결해야 겠기에 다시 그 파출소로 갔다. 인사를 하며 들어서니 아주 반갑게 맞이해준 그 피터 스트라우스를 닮은 경찰관 아저씨. "잠자리는 불편하지 않던가예? 아침식사는 우예하셨습니꺼? 여~는 아침밥을 묵을 때가 마땅치 않는데 우짜꼬?" 손사래를 치며 나는 우선 자동차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겠냐고 물었다."글쎄요  어젯밤에는 모르겠디마는 오늘 아침에 보니까  쪼매 그렇네예~ 우야믄 좋겠습니꺼?" 원하시는대로 하겠노라 말했더니 십만원만 주고 가라고 했다.모르긴해도 정상적으로 수리를 하려면 십만원으로는 모자라지 싶은데...지갑을 열어 십만원을 드렸더니 여행경비가 모자라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해주던 그 경찰관 아저씨.

 

"그런데 이렇게 고생하며 답사를 다니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더~""술을 좋아하세요?" "네~ " "술을 왜 좋아하세요 ?" 엉뚱하게 되받아치는 나를 보며 한동안 말이 없던 그 경찰관아저씨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아~ 대강은 알 것도 같습니다"

 

접촉사고를 내도 이렇게 정석으로 내야 한다.파출소 마당에서 경찰관 차를 망가뜨렸으니.그 덕분에 멋지고 근사하고 매력적인 남정네를 알게 되었으니까.

 

청도.포항을 거쳐 예천과 문경을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와 그 경찰관 아저씨에게 전화통화를 한 번 했다 .자동차는  수리 잘 하셨냐고~

크게 호탕하게 웃으며 염려마시고 즐거운 답사길 앞으로는 조심해서 다니라는 말을 전화기 너머로 들었다.

그리고 끝~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