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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후기

창녕 관룡사 돌아보기.경남 창녕

푸른새벽* 2010. 7. 2. 16:24

매번 그러지만,

답사기를 쓰려면 사진기에 담아 온 사진을 처음부터 끝까지 죽 훑어보면서 이야깃 거리가 될만한 사진을 골라 비공개로 해 놓은 게시판에 올려놓은 후 글을 쓰게 되는데 창녕답사기는 얼렁뚱땅이긴 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썼다.그런데 관룡사에대한 답사기를 쓰려고 사진을 골라 올려놓고 보니 막막하다.

 

서투른 글로,부족한 사진 몇장으로 관룡사에 대한 답사기를 쓴다는 것이 민망하기도하고 한편 무모한 짓거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극락전의 깜찍함을,용선대에서의 감탄을 어찌 부족한 몇 줄의 글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입을 다물지 못했던 놀라움을 충분히 글로 옮기지 못할 내가 한심해서 더욱 막막~하다.매나 독수리는 되어야 넘을 수 있는데 병아리의 다리로,같잖은 병아리의 날개로는 언감생심 어림없는 거대한 벽을 마주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

 

까짓것 쓰지 않으면 될것을 무에그리 답답해 하고 있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그래,쓰지말자 하며 여지껏 내던져 놓고 있는 미완성의 답사기들도 비공개로 해놓은 게시판에 수두룩 빡빡하다.미완성의 답사기엔 답사처에서 인연지은 알토란 같았던 추억도 차츰 흐릿해져 간다.

 

내가 그나마 지끔까지 되도않은 글로 답사기랍시고 썼던 것은 갈 수록 힘이 부치는 내 기억력을 믿지 못하니 그렇게라도 써놓아야 이 다음에 기억력 깡통이 되더라도 그리 안타깝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깊이는 커녕 얇기가 종잇장같은 답사기일지라도 내 추억의 창고에는 소중하게 보관되어야 한다는 엄중한 사명감으로  나는 지금 이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앞에 맞닥뜨려 선다.

 

 

 

 

 

경남 창녕이란 고장을 답사하려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곳이 술정리탑과 관룡사였다.

 

창녕답사의 첫날.마음같아서는 우선 술정리탑과 관룡사부터 찾고 싶었지만 그렇게하면 답사동선이 형편없이 헝클어지고 시간도 효율적이지 못하기에 영산면 구계리에서 석불을 보고나서야 찾아 오게 되었다.(술정리탑은 다음날의 답사동선에 포함되어 있었다.)

 

 

 

 

 

 

절집으로 오르는 계단 위쪽에 있는 문.천왕문인가?편액이 걸린 문 옆쪽의 누각과 참 잘어울리는 풍경이다.일주문이 없는 관룡사에서 경내로 드는 입구가 저 범종루로 인하여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화왕산 관룡사라 쓰인 편액.나는 어쩐일인지 화왕산하면 활활타오르는 불길부터 생각난다.언젠가 화왕산 억새축제 중 화재로 화왕산 일대가 엄청 소란했던 적이 있었다.그 화재가 내게는 어지간히 깊게 각인되었던가보다.화왕산관룡사라 쓰인 편액의 글씨체가 바람과 손잡고 이리저리 날뛰는 불씨 같다.

 

 

 

 

 

 

화왕산관룡사라 쓰인 편액이 걸린 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범종각이 있다.이곳에서는 특별히 북을 살펴보라했지.

 

 

 

 

 

 

관룡사법고의 지지대는 다른 절집의 그것과 많이 다른 것 같다.오랜 세월을 견녀낸 흔적이 나뭇결에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기상은 아직도 우렁우렁한 호랑이같기도 하고 사자같기도한데 이 지지대에 올라 앉은 북은 어떤 소리를 낼까.

 

 

 

 

 

 

관룡사에 들어서면 일직선으로 시선을 끌어잡는 아담한 전각.관룡사 약사전.딴 곳에 정신팔지 말고 여기부터 오라 부시게 눈짓하더니 정작 다가가니 반가움 감추고 짐짓 새침하니 옆모습으로 돌아서 있는 여인네같은...

 

 

 

 

 

 

 

절마당을 들어서자마자 시선을 빼앗은 옆면과는 달리 약사전의 정면은 평범하다.약사전 앞 마당에서 약사전을 지키고 있는 듯한 삼층탑을 먼저 살핀다.

 

 

 

 

 

 

 

관룡사 약사전삼층석탑.지붕돌이 온전하지 않아서 그런지 작은 탑이 더 작아 보이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는 야무진 매무시인데 탑의 지붕돌을 소복히 덮고 있는 이끼때문인가 지붕돌 처마곡선이 아주 날렵해보인다.

 

 

 

 

 

 

 

약사전삼층탑에서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절집으로 들 때 보았던 범종각이 다른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관룡사 범종각엔 목어가 없다.

 

 

 

 

 

 

 

관룡사 약사전에 엄숙한 모습으로 앉아 계신 석불.관룡사석조여래좌상(觀龍寺石造如來坐像).

살집이 풍만해 보이는 얼굴,큼직한 육계에 백호가 표현된 이마와 양 발위에 얹혀 있는 두 손.대좌(臺座)는 상·중·하대가 완전한데, 상대에 새겨진 문양이 특이하다.작고 아담한 약사전이 꽉 찰 정도로 거대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사진은 꽝이다.

 

 

 

 

 

 

 

관룡사약사전은 크기와 모양새도 이쁘지만 법당 바깥쪽 벽면이나 법당 안쪽의 벽화가 볼 만하다.약사전 내부의 벽화는 푸른 빛이 강렬한 화조도다.맞은 벽에 그려진 벽화도 마찬가지다.엄숙한 표정으로 약사전을 점령(?)하고 있는 불상과는 대조적인 유쾌한 푸른색이다.

 

 

 

 

 

 

이쁜 새새댁의 뒤태같은 약사전의 뒷면.약사전의 뒷벽에도 부드러운 색감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네 폭의 병풍같이 사분할되어 그려진 벽화. 산수화가 그려진 뒷벽의 벽화는 법당내부의 벽화보다 부드럽고 소박하다.

 

 

 

 

 

 

*측면의 가구수법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우미량'이라는 건축기법이다.이 우미량은 팔작지붕이나 우진각지붕집이 유행하는 조선 후기에는 볼 수 없는 보의 하나로,도리와 도리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며 주로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의 맞배지붕에서만 볼 수 있다. 

 

 

 

 

 

 

 

약사전 측면의 벽체는 뒷면과 같은 큰 장식화를 갖고 있진 않지만 측면의 가구(架構)수법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한 칸집 규모로 보아 3량으로 충분할 지붕구조를 7량으로 연결해 지붕이 다소 무거워 보일 법도 한데,나름대로의 균형감이 유지되는 데에 묘미가 있다.

 

약사전은 대웅전과 마주하고 있으나 대웅전을 등지고 있는 서남향한 자세인데,이런 까닭에 대웅전에서 약사전으로 가려면 반드시 약사전의 뒷모습을 보며 측면으로 돌아가도록 돼 있다.이런 배치는 약사전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갖는 대단한 자부심의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약사전은 정면과 측면과 뒷면,사방의 모습이 아름답고 지붕과 벽체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뛰어나 작지만 당당한 아름다움으로 기억하게 되는 조선 초기의 건축물이다.현재 보물 제146호로 지정돼 있는데,임진왜란과 숙종 때 내렸다는 큰비도 그 아름다움을 알아 보았던 것일까.건물이 지어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웅전이 초창되었을 당시 함께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표가 된 부분은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발췌한 것임)

 

 

 

 

 

 

 

똑 떼서 담싹 안아 들고 가고픈 약사전을 뒤로하고 대웅전으로 발길을 돌렸다.위쪽으로 보이는 산세의 위용이 너무 당당해 대웅전이 짜브라들 것 같아서 활주를 받쳐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대웅전은 조선 태종 때에 짓고,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광해군 때에 고쳐 세워, 이듬해에 완성했다는 것을 1965년 8월 보수공사 때, 천장 부근에서 발견한 기록으로 알았다고 한다.

 

대웅전 앞에 나이든 어르신이 계신 것을 보니 법당안으로 사진기를 들이밀지는 못할 것 같다.

 

 

 

 

 

 

"왜 자꾸 부처님 사진들을 찍는지 모르겠네.사진 찍어서 어따 쓰려구~ 부처님은 사진을 찍으면 좋지 않은데..."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걱정하는 어르신의 말소리에 신경쓰여 사진이 당연 흔들렸다.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는 곳인데 관룡사 대웅전엔 왜 비로자나삼존불을 모시고 있을까하는 의문도 잠깐, 아름다운 수미단의 조각장식도 자세히 볼 수 없었다. 어르신의 뜻을 거스를 용기가 없다.사진은 안된다는.

 

 

 

 

 

 

 

대웅전 왼편 측면에 놓여 있는 길고 커다란 나무통.

 

 

 

 

 

 

 

마음속에 늘 그리던 관룡사의 경내는 상상으로 그려보던 것과는 달리 그리 크진 않았다.산지가람인 관룡사는 전각들의 규모가 작아 보였고 옹기종기 붙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관룡사뒷편의 산길을 따라 500여 미터쯤 가면 용선대가 있단다.산길로 500미터는 평지를 1킬로 정도 걷는것과 맞먹는다고 동행이 말한다.

 

가파른 산길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걸어야 한다.목적지로 가기위한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자신의 발길을 반겨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가파른 산길은 더욱 힘들어진다고 했던가 .해저물녘인데도 주체할 수 없게 흐르는 땀을 닦으며 허위허위 용선대를 향하여 산길을 오르며 누군가의 말을 생각했다.

 

 

 

 

 

 

어느만큼 산길을 올랐을까.탁 트인 시야 저 위로 보인다.

 

 

 

 

 

 

 

참 어렵게 올라왔다.

 

 

 

 

 

 

 

누구나 잠깐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항하사 모래탑같이 많은 칠보탑을 만드는 것보다 낫다

칠보탑은 끝내 부서져 티끌이 되거니와

한생각 깨끗한 마음은 바른 깨달음을 이루느니라.

 

 

 

 

 

 

 

관룡사용선대석조석가여래좌상(觀龍寺龍船臺石造釋迦如來坐像)의 앞쪽에 있는 석조물.석등의 받침돌인 듯 싶은데 이 꼭대기에 석등받침돌이 왠말인가.연화문이 곱게 새겨진 석조물은 이 높은 곳에서 오늘까지 얌전하게 석가여래를 받들고 있다.

 

 

  

 

 

 

 

답사처에서 담아온 여지껏의 사진들에 만족한 적은 별로 없다.그것은 내스스로도 내 솜씨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인데...정말 너무하다 싶다.용선대에서 담아온 사진을 보면.높기도하고,숨도차고,다리도 풀렸고 무엇보다 석가여래가 위치하고 있는 주변이 온통 바위투성이며 그 바위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그 자리를 떠나 다른 더 높은 곳으로 가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생각을 묻어 놓아도 씨앗이 되는 법이라 했던가.

내 가슴속에 하나의 씨앗을 묻게 했던 사진 한장.

 

이정도는 되어야 한다.

적어도 용선대석가여래를 만나뵈었다고 말하려면.

 

옛님방의 누들스야~ 사진 고맙데이~ㅎ 

 

 

 

 

 

 

 

바람이 좋은 용선대에서 한참이나 앉아는 있었다.

 

풀린 다리 겨우 진정되었나 싶을 즈음 용선대를 뒤로하고 산길을 내려오면서 다시 한 번 더 뒤돌아 본다.

 

 

 

 

 

 

 

관룡사경내를 돌아 본 후 용선대까지 올랐던 것을 끝으로 관룡사 경내를 나섰다.부도는 관룡사 경내에 들기 전 오른쪽 언덕에 있다. 

 

팔각의 부도도 아니고 여느 절집에서 흔하게 보았던 석종형도 아닌 멀쑥하게 큰 모양새가 참 그렇다.이 부도는 관룡사 내에 있는 7기의 부도 중 하나라는데 나머지 부도는 어디에 있기에 눈에 띄지 않았을꼬~ 모양새 특이한 이 부도는 창녕지방을 대표하는 부도란다.

 

 

 

 

 

 

 

부도의 가운데 받침돌에 새겨진 문양.

나는 이 문양이 연꽃으로 보이지 않는다.아무리봐도 튜울립을 단순화 시킨 모양새다.이 튜율립문양으로 인하여 관룡사부도는 더욱 특별하고 별나보인다.

 

 

 

 

 

 

 

한여름이긴 해도 장마철인지라 오후 다섯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저녁이 검실검실 몰려온다.부도가 있는 언덕에 서면 관룡사 절 마당을 채운 고요가 보인다.하늘이 잿빛이이어서 그런가.

 

 

 

 

 

 

 

관룡사를 찾아들 때 관룡사 범종루가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보일락말락하는 거리에  관룡사석장승이라 이름 붙여진 장승 한 쌍이 있다.

 

 

 

 

 

 

 

사찰 입구에 두는 장승은 절의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과 더불어 잡귀의 출입을 막고, 풍수지리적으로 허한 곳의 기운을 불어넣는 등의 기능을 한다는데 새워진 연대를 알 수 없는 이 장승들이 원래 있던 자리는 이곳이 아니라고 한다.

자리는 옮겨 왔어도 이 할머니.할아버지 장승은 관룡사의 수문장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다.

 

 

 

 

 

 

 

절이 창건된 연대는 명확하지 않지만,신라 진평왕 5년(583)에 증법국사(證法國師)가 처음 절을 지었으며 신라8대 사찰의 하나로 이름을 떨쳤고 원효대사가 제자 1천여 명을 데리고 화엄경을 설법한 곳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관룡사(觀龍寺).

 

'창녕의 금강산'이라 불린다는 관룡산의 기암절벽에 기댄 절집 관룡사는 어디선가 씨앗으로 날아와 내 가슴속에 고운 싹을 틔운 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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