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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후기

화성 용주사 돌아보기

푸른새벽* 2010. 8. 26. 13:02

 경기 화성시 송산동 188 용주사(龍珠寺)

국보 1

유형문화재 14

문화재자료 5 등등

문화재청에 등록된 문화재만도 20여 점이나 되는 절집.

 

 

 8월 어느 눅진하게 흐린날 용주사를 돌아보기 위하여 화성시를 답사하기로 하였다.

  

용주사는 화성시 송산동 자동차 왕래 빈번한 찻길가에 있었다.

용주사라 새겨진 큼지막한 입석과 용주사란 편액 얌전하게 달고 있는 아담한 전각이 보인다.

 

 




용주사 편액.

통상 사찰의 편액에는 절집이 기댄 산 이름이 함께 씌여 있는데 용주사는 그냥 용주사다.

 

 




용주사 편액이 달린 자그마한 팔작지붕의 전각을 지나면 절집으로 드는 구부러진 길이 보인다.

종묘나 경복궁에서,또 왕릉의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드는 참도에서 보았던 박석이 깔린 길.

입구에서부터 용주사가 예전 왕실의 원찰이었음을 느끼게 한다.

 

 




박석이 자잘하게 깔린 길을 지나 서너개의 계단을 오르면 왼쪽으로 거대한 건물이 보이는데 용주사효행박물관이다.

효행박물관 앞뜰에 서 있는 저 탑이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탑인지,아니면 절 마당에 또 탑이 있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것은

탑의 앞이나 옆에 지정된 문화재라면 반드시 세워져 있어야 할 문화재안내판이 보이질 않았고, 설마 이렇게 절마당에 들기도 전에 탑이 있으려구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지나쳤다.다 돌아보고 나오면서 살펴보려고.

 

 




박석이 가지런히 깔린 길을 따라 걸어 들어오니 홍살문이 있다.

절집에 왠 홍살문?

홍살문도 그렇지만 홍살문 너머로 보이는 또 하나의 삼문(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문의 이름은 보지 못했다)과 나란히 잇대어 있는 건물들.

보통의 절집에서는 볼 수 없는,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행랑채.

홍살문에다 행랑채까지... 정조임금이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호하고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세웠다는 절집임이 분명함을 느낀다.

 

 

 




 

플래카드가 걸려 있어 이 문의 이름이 있는지,또 있다면 무슨 문인지는 모르겠다.나에겐 그 플래카드를 들춰볼 힘이 없으니...

아무튼 양쪽으로 행랑을 길게 거느린 삼문을 넘으려는데 문기둥을 받치고 있는 네모난 뿔대주초석이 화들짝 시선을 붙잡는다.

두개의 네모난 돌 위에 음전하게 앉아 있는 해태상(맞나?)도 그렇지만 사찰에서 보는 네모의 뿔대주초석이 생경하고 주초석에 새겨진 원형의 모양이 무척 이채로왔기 때문.

커다란 원 안에 작은 원 세개가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보통 사찰 지붕 합각에서 이런 문양을 많이 보기는 했었지만 이곳 용주사에는 절마당으로 드는 문의 기둥초석에 새겨져 있다.

화들짝 눈길이 머물만하다.

 

커다란 원 안에 작은 원 세개가 그려진 원이삼점(圓伊三點).
'원이삼점'은 '불.법.승' 삼보를 의미하고, .
또,'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의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것이라는데

큰 원은 '우주법계'를, 작은 세개 원은 '열반 3덕'인 '법신, 해탈, 반야'가 서로 상즉하고 있음을 비유하고 있다.  

 

 




주불전이 있는 절마당으로 들기위해 두 개의 문을 지나왔건만 아직 주불전으로 가려면 또 다른 하나의 전각을 통과해야 한다.

용주사 천보루.

새 날개 모양으로 짜맞춘 익공양식 팔작지붕의 이층 누각.

천보루 앞에는 단정한 탑이 자리하고 있다.

이 탑 역시 아무런 안내판이 없다.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용주사탑은 효행박물관 앞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천보루앞에 있는 탑인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던 것은 두 탑 모두 오층이고 두 탑 모두 안내판이 없기 때문.

탑 뒤편에는 안내판이 있긴하다.

그런데 안내판이 그냥 비어있다.먹통인 것이다.생각컨데 안내판에 붙여놓은 안내문이 훼손되어 없어진 것이다.

다만 안내판 곁에 있는 표지석으로 천보루에 대한 안내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용주사천보루 역시 주초석이 네모난 뿔대모양이다.

천보루는 정면에서 보았을 때보다 측면에서 바라보니 더욱 웅장하게 느껴진다.

 

 




왕실에서 관리하던 사찰이어서 그럴것이다.

천보루 지붕에 장식된 용머리.절집지붕의 장식도 잡상이라고 부르는건가?

 

 




천보루와 오른쪽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건물.

지붕의 합각면과 단청,그리고 가지런한 문살이 참하다.

 

 




천보루를 통과해야 비로소 용주사의 주불전인 대웅보전을 만날 수 있다.

명성 뜨르르한 절집이어서 그런지,예불을 드리는 시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무슨 법회가 있는 날이어서 그런지 용주사의 천보루와 대웅보전 안에는 참배객들이 참 많았다.용주사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 24분이었는데.

 

 




예불 중이라 법당안을 들여다 본 다는 것은 그야 말로 언감생심.

그저 대웅전 주변을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용주사 대웅전은 외벽전체가 말끔하게 채색된 그림들로 장식되어 있다.

 

 




용주사 대웅전 외벽에 그려진 벽화.

부처님에 대한 일화를 그린 것인지 아니면 효행(孝行)에 대한 것인지는 감이 잡히질 않는다.

몇몇 예외가 있긴 하지만 거개의 절집 법당외벽에 그려진 벽화는 부처님에 대한 것이라 익히 알고는 있지만 유독 용주사에서 감을 잡지 못했던 것은 용주사는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호하고 명복을 빌어주기 위해 세운 절이기 때문.

 




 

어차피 법당안은 살피지 못하겠으니 대웅전 왼편 축대위에 있는 법종각으로 발길을 돌렸다.

용주사에서 문화재로는 가장 격이 높은(?) 동종을 살펴보려고.

 

 




자그마한 범종각의 문은 이렇게 살문으로 되어 있는데 이렇게 촘촘하게 된 살문은 또 처음이다.

범종각의 문 앞에는 이렇듯 주의안내문이 걸려 있다.

알만하다.

어느 절집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들.

절집의 탑날개에 쌓여 있는 동전,부도위에 가지런히 붙여둔 동전을 비롯하여 수조속에 가라앉은 무수히 많은 동전들을 보았으니까.

논산의 개태사 철확안에도 엄청나게 많은 동전들이 모여있었다.

절에 오는 참배객들은 동전 던지는 것을 좋아하나보다.도대체 절집으로 참배를 오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이렇게 동전들을 던질까.

참 흔하고 흔한것이 동전이고 매번 궁금한 것이 동전을 던지는 이유다.

 

 




촘촘한 살창으로 사진기를 요령껏 들이밀어 담아 본 용주사 동종.

내 능력이 이정도 밖에 되질 않는다.

동종의 몸에 새겨진 비천상이 둥둥 떠 돌며 이런 나를 비웃는 듯하다.

 




 

천보루를 지나 대웅전이 있는 마당에 들면 오른편으로 길쭉한 전각이 세로로 자리잡고 있는데 那由陀寮라는 편액이 붙어 있다.

이 편액은 정조때의 실학자로 규장각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서적을 정리·교감했고, 고증학을 바탕으로 한 많은 저서를 남긴 이덕무의 글씨라고 한다.이덕무는 나유타요의 편액과 주련을 함께 썼다고 하는데 그 때  그가 쓴 주련은 남아 있지 않고 편액만 남았다고 한다.

나유타료(那由陀寮)는 대중회의때 사용하는 큰 방 스님들의 요사채로 쓰인다는데 절집의 문살과는 달리 궁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문살이다.

 

 




용주사 천보루 아래에는 각종 불교용품을 파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스님이 계시기에 합장의 예를 갖춘 후 여쭈어 보았다.

용주사오층석탑은 천보루 앞에 있는 것이 맞느냐고.

스님은 아니라고 했다.천보루 앞에 있는 탑은 지정문화재가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했다.

그리고 천보루앞의 안내판에 대해서 이야기했더니 그것도 화성시청에 건의하였다고 빠르게 이야기하는 안색이 마치 다 알아들었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한 투로 들렸다.스님의 그런 모습을 보니 아마도 용주사에서도 여러번 화성시청에 건의하였나보다.

용주사가 화성시라는 지자체에 자리하는 입지라는 것이 대단할텐데 왜 탑의 안내판도도 그렇고 기존의 안내판도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았을까.

어느 산골짜기 비탈에 서 있는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탑도 아니고 이렇게 참배객 들끓는(?) 화성시내의 명성자자한 절집에 있는 문화재들을.

 

 




안내문도 없고 천보루 앞의 탑은 분명 지정문화재가 아니라했으니 다시 답사자료를 꼼꼼히 살펴봤다.

그래~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용주사오층석탑은 천보루 앞에 있는 오층석탑이 아니라 용주사효행박물관 앞에 있는 탑이 맞았다.

들어올 때 설마 했었는데 그 설마가 틀렸던 것이다.

 

 




용주사오층탑에 대한 답사자료를 꼼꼼히 살피면서 천보루앞 오층탑과 달리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탑이 효행박물관 앞에 있는 것이 맞다는 확신을 갖게 해준 것은 바로 이 탑에 새겨진 문양이었다.

탑의 기단부 면석에 새겨진 위패형 제액. 이런 문양은 통상 부도비의 상단에 장식되어 있다.

여지껏 수도없이 많은 탑들을 찾아가 살펴봤어도 탑에 새겨진 이런 제액형의 문양은 없었더랬는데...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용주사오층석탑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문양.

 

 




탑의 기단부에 새겨진 문양이 별나게 깊게 느껴진다.

용주사탑의 자료에는 세 개의 안상으로 장식되어 있다는데 나는 안상이라기보다는 화염문같다는 생각이 든다.

용주사오층석탑은 여러가지 탑의 조성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이라는데 얼핏 빼빼마르고 키만 훨쑥한 고려탑을 많이 봐서 그런지 용주사오층석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탑치고는 두둑하고 음전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효행박물관 오른쪽 나즈막한 축대위에 자리한 석상 둘.

자세한 내력이야 잘 모르겠지만 무덤을 수호하기 위해 세웠던 석인이 아닌가 싶다.

가슴에 가지런히 모은 두 손과 왕방울만한 눈을 강조한 표정이 재미있다.

 

 




상사화.

그래,분명 상사화가 맞다.

효행박물관을 빙 둘러친 낮은 담장너머에 핀 상사화.

더워더워 너무 더워 아직도 물 줄줄 흐르는 여름의 한중간에 있는 줄 알았는데 벌써 상사화가 피었네.

 

 




한 시간 가까이 돌아 본 용주사.

함박웃음으로 낯선객의 물음에 답해주는 보살도 없고,자분자분 살가운 절집사람들도 없고, 지극하게 합장하며 목례를 건네는 스님도 없고,푸근하고 아늑하다는 느낌도 없었던.

우렁우렁 고함치는 스님이나 도끼눈의 매몰찬 보살을 만난것도 아닌데 용주사는 관청에 볼 일보러 갔을 때의 느낌이 드는 절집이었다.

용주사는 친절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불친절한 것도 아닌 딱 중간의 무심한 절집.

 

거리상 가깝기도하고 또 나라에서 지정한 문화재가 많은 절집이며 소문소문으로 널리 알려저 궁금하기는 했던 절집이었지만

답사 다닌지 꽤 여러해가 지난 내가 유독 지금까지 쉬이 찾을 수 있는 용주사답사를 미뤘던 까닭은 여러번 전해들은 절집의 인심에 대해 너무 심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한마디로 별로 찾아보고 싶은 절집이 아니었으며 情이 가지 않았던 까닭이기도했다.

그래서 국보로 지정된 동종 말고도 또 하나의 작은 종이 있다는데 처음부터 살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으며 기록으로 남겨져 있는 문화재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 법당안을 살펴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예불시간이 아니어도 법당안을 살펴보려했던 답사객들이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는 말을 들었는데 하물며 예불시간에 용주사를 찾았으니.

 

사진에도 사진을 찍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집에 돌아와 용주사 사진을 정리하면서 대웅전의 정면 사진이 한장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고,딱 정면이 아니더라도 정면에서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비껴서 찍은 사진도 어쩌면 이렇게 없을 수가.다른 절집에선 법당의 정면사진이 평균 다섯 장은 되는데.

대웅전뿐 만이 아니라 용주사에서 찍은 사진들은 잘방잘방한 물기 없이 모두가 버석버석 건조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사진들을 보고 내 자신도 놀랐다.이런 적은 아직 없었는데...

 

사무치는 마음으로 가고 또 가고싶은 절집이 있는가 하면 "응~거기 가 봤어~" 하고 끝내는 절집이 있다.

용주사는 나에게 그 후자의 느낌으로 남을 것 같다.

 

 




용주사 편액이 달린 전각을 나서면 바로 자동찻길이다.

자동찻길 건너편엔 용주사에서 학생들의 교육이나 여가활동을 위하여 거하게 지어놓은 이층전각이 있다.

용주사 주차장엔 자동차들이 너무 많아 이층전각이 있는 마당에 자동차를 세워놓았기에 이 길을 건너야 한다.

 

하늘이 울고 싶어 안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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