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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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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후기

강원 인제麟蹄돌아보기

푸른새벽* 2010. 9. 5. 21:28

8월인데도,장마 다 끝난 8월인데도 푹푹 찌지않으면 시도때도 없이 쏟아지는 비.

2010년의 8월은 비와 무더위와의 전쟁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그동안 더워더워 하는 8월이래도 맘만 먹으면 언제든 답사를 떠날 수 있었었는데 올 해는 아니었다.

더위가 겁나고 대책없이 쏟아지는 비가 겁나서 답사걸음 두 번밖에는 하질 못했다.

 

8월의 마지막날

정녕 그냥 보낼 것인가. 

8월을 이대로 그냥 보내면 큰 탈이 날것만 같아 거리상 그리멀다고 생각되지 않는 고장을 택해 나서보기로 했는데...

다음의 답사처로 점찍은 충북 영동이나 강원 영월을 제치고 뜬금없이 나의 간택(?)을 받은 강원도 북쪽고장 인제麟蹄.

그것은 시도때도없이 쏟아부어 남녘을 흥건~하게 적신 비가 이젠 남녘은 재미없는지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기상청의 예보에

영동이나 평창보다는 한참 북쪽인 인제가 나을 것 같았기 때문.

 

인제엔 한계사터가 있다.겨울 눈내린 어느날 꿈결같이 다녀오려고 아껴두었던.

 

떠나기 전날 답사자료챙기는 내 곁에 붙어 앉아 이것저것 참견하는 딸내미에게 슬쩍 던져보았다. 

"엄마 내일 답사가는데 함께 갈테야?"

"좋아요.어차피 집에 있으면 뒹굴기만 할텐데 하루종일 누워 뒹굴어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니까 좋은 공기도 쐴겸 어마마마 따라갈래요."

어머나~! 기다렸던 듯 금방 대답이 튀어나온다.

남들 모두 휴가 끝낸 느지막한 시기에 일주일의 휴가를 받아 강릉으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온 딸아이가

이틀남은 휴가가 못내 아쉬운지 슬쩍 던져본 내 말에 눈 반짝이며 따라나서겠단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딸내미의 선선한 대답을 들으니 혼자나서는 걸음과는 또 다른형태로의 답사를 준비해야 한다.

딸아이와 함께라면 늘 그렇듯 답사걸음빡빡하게 돌아치면 안되니 어떤 옛님은 포기하기도 해야 할 것이고 또 먹거리도 챙겨야 한다.

 

아무려나 8월의 마지막답사는 딸내미가 친구되어 줄 것이다.

 

 

집에서 진입이 수월한 서울춘천고속도로를 한참 달려 도착한 곳.

준비한답시고 찬 음료만 자동차에 잔뜩 실었더니 딸아이는 따신 커피가 마시고 싶단다.

에구~청개구리.

찬 것 준비하면 따신 것 먹고싶다하고 따신 것 준비하면 찬 것 찾고~ㅎ

 

여름날 아침 일곱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새벽의 어둑신한 그림자가 깔린 것은 아마도 흐린 날씨 때문일 터. 

 

 




아침 아홉시.

100킬로가 넘는 속도는 감당이 되질 않는다는 딸아이 때문에 천천히 느긋하게 달려 도착한 곳.

인제군의 첫답사처인 갑둔리오층석탑.

간간이 군용트럭만 오고 가는 왕복 2차선의 한산한 자동찻길 한켠엔 500미터 전방에 갑둔리오층탑이 있다는 갈색의 표지판이 서 있다.

굵은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일테지.

 




 

갈색의 표지판이 가리키는 오층탑을 만나려면  바로 이 철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느낌이 곤충의 더듬이처럼 곤두서는데 막상 철문은 잠겨 있으니 문을 열고 들어갈 수는 없을 것 같고 철문을 비껴 풀을 헤치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딱히 길이랄 것도 없어 보이는 풀밭(?)을 따라 탑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재촉하는 발걸음이 축축하다.

대책없이 바짓가랑이를 적시는 여름아침의 이슬보다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이 더 고약하다.

 

 

 



경사 심하지 않은 길을 10여 분 동안 쉬엄쉬엄 그렇게 걸어 오르니 풀섶을 헤치고 나무사이사이로 걸어온 길과는 달리 확 트인 공간이 나오고

그 공간 가운데 탑이 있다.

나도 이만하면 탑냄새 맡을 줄 안다고 자신있게 말해도 되지싶다.

 




 

인제갑둔리오층석탑(麟蹄甲屯里五層石塔)

멀쑥하니 후리후리한 키가 영락없는 고려탑인데 1.2.3층의 몸돌이 근래에 다시 만들어 올린 듯 하고 그나마 4.5층의 몸돌은 없다.

5층의 지붕돌도 예전의 것이 아니고...

몸돌 모두 없어지고 지붕돌마져 온전치 못하지만 그나마 등록문화재의 반열에 들 수 있었던 것은 위층 기단에 고려 정종 2년(1036)이란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 석탑 및 불교사 연구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란다.

갑둔리오층석탑은 인제군 문화재자료 제117호이다.

 

 




갑둔리오층탑 곁에는 이렇게 동글납작한 돌을 꿰어 쌓은 것 같은 묘한 석재가 있다.

큰 주판알처럼 생긴 이 구조물은 탑의 곁에 있으니 분명 탑과 상관이 있을 것이다.

탑의 상륜을 장식하는 보주(寶珠)같기도하고 또 어떻게 보면 보륜(寶輪)같기도 한데 

만약 이것이 탑의 상륜부에 장식된 보주가 확실하며 가운데 꽂힌 동그란 쇠막대가 찰주라면 갑둔리오층탑과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갑둔리오층석탑의 모든 자료를 다 뒤져보아도 찰주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혹 이곳말고도 갑둔리에는 꽤 많은 탑재가 흩어져 있다는데 그것들의 일부는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한참을 요리조리 살펴보다

갑자기 떠오른 이미지하나.

높은 송전탑에 연결된 전선의 곳곳에 달려있는 애자.

송전선 등에서 전기를 절연하기 위해 이용되는 속칭 뚱딴지라 부르는 하얀 도자기로 만든 애자(碍子).

맞아,딱 애자를 닮았네~ㅋ

 

  




갑둔리오층탑 앞에는 이렇게 이쁜 배례석도 있다.

탑을 만나러 와서 생각지도 않았는데 꽃잎이 돋을새김된 이런 이쁜 배례석을 만나는 것은 탑이 주는 보너스며 답사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갑둔리에는 오층석탑 말고도 삼층석탑이 더 있으며 무수히 많은 탑재(塔材)도 있다고 한다.

오층석탑을 보러가는 도중에 이런 버젓한 안내문이 있으니 당연히 찾아봐야 한다.

사실 삼층탑의 안내문을 오층탑을 보러가는 도중에 만나긴 했었다.답사동선대로라면 당연히 삼층탑을 먼저 찾았어야 했다.

 

떠나오기 전 인제군의 답사자료를 준비하면서 내 능력껏 여러 경로로 인제에서 찾아 볼 탑에 대한 자문을 구했었는데

갑둔리삼층탑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정보를 탑돌이를 통해 알게되었다.

그래서 갑둔리에서 삼층탑을 볼 수 있다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버젓이 안내판이 서 있으니 그 갈색의 유혹을 어찌 떨쳐버릴 수 있단 말인가.

 

자동찻길에 서 있는 안내판의 앞쪽 비포장길을 따라 들어갔는데,그 길이란 것이 자동차에 부착된 모든 나사가 헐거워질 만큼 몹시 울퉁불퉁했으며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한참을 망설이게 하는 아주 작은 갈래길이 나왔다.

 

 




어디로 갈까 한참을 망설이다 오른쪽을 택했다.

 

오른쪽길을 따라 들어가며 행여 놓칠새라 눈에 힘주어 살펴보아도 도통 탑이 있을만한 곳은 없었다.

덜컹거리며 어느만큼 더 들어가보아도 길 가운데 붉은 글씨로 써놓은 도로공사중이란 팻말만 서 있었다.

안내판에는 분명 900미터 라고 했는데 1킬로는 족히 온 것 같다.

아닌가보다.다시 돌아가야지.

다시 작은 샛길이 갈라지는 곳으로 돌아와 이번엔 왼쪽길로 들어가보았다.

얼핏 낡은 건물들이 나무들 사이사이로 보였다.갑둔리삼층탑은 무슨 군사 훈련장 안에 있다고 하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훈련장인가?

훈련장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멀리서 보이던 건물은 가까이 가서보니 형편없이 낡아 있었고 근래엔 사람의 발자욱조차 닿지 않은 것 같았다.

여기도 아니네.

 

이럴 땐 포기가 빠를수록 좋다.애초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니 갑둔리삼층탑은 포기.

 

이 답사기를 쓰면서 다시 여러곳의 자료를 찾아보다가 이마를 쳤다.

갑둔리삼층탑의 정확한 위치를 게시한 사이트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에구~ 진즉에 자료를 더 열심히 찾아볼 걸...

갑둔리삼층탑은 갑둔초등학교에서 약 7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단다~ 

 




 

인제군 인제읍에 있는 인제군청을 찾았다.

인제 답사의 두 번째인 합강리미륵석불을 찾으러. 

인제군청 마당은 빡빡하게 주차한 자동차들로 미륵불이 있을 만한 곳을 가늠하기가가 쉽지 않았다.

날 더운데 군청마당을 돌고돌아 모조리 더텨보는 것이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어 인제군청의 민원실에 물어보려고 들어갔더니

왠걸,인제군청 민원실엔 온통 세무에 관한 부서들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입구에 있는 안내데스크에는 안내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시 돌아나와 군청의 본관으로 들아가 보아도 역시 안내인이 자리에 없었다.한참을 기다려도...

2010년 8월 31일 오전 10시 40분.인제군청 안내데스크엔 안내인이 없었다.본관입구에도 민원실에도.

 

지도도 한장 얻고 군청마당에 있다는 합강미륵불의 위치도 물어볼 겸 인제군청 문화관광과를 찾았다.

문화관광과는 본관 건물 3층에 있었다.

그리 옹색하지 않은 공간의 문화관광과에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직원이 두 명뿐이었다.

그렇지 모두 출장을 갔겠거니~

출입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직원에게 문화재담당자가 누구시냐 물으니 바로 옆에서 내 모양새를 살피던 다른 직원이 얼른 다가와 대답한다.

문화재담당자는 출장중인데 왜 그러시냐고.

궁금한 것이 있어 찾아가 본 여러곳의 지자체에서 항시 느꼈던 것이지만 문화재담당자를 찾아 문화관광과에 들어가 물어보면 대답보다는

의심과 경계의 눈초리가 먼저 돌아왔었다.인제군청도 다르지 않았다.

합강미륵불의 위치를 물으니 담당자가 아니라서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하면서 유리창너머 보이는 군청마당 어느곳을 가르쳐 주었다.

고맙단 인사를 하고 최근의 지도 한장을 얻어가지고 문화관광과를 나왔다.

인제군청의 문화관광과에 대해선 내 블로그 포스트 <雜想>에서 다시 피력할 것이니 이곳에선 생략하기로 한다.

 

 




인제합강미륵불(麟蹄合江彌勒佛)

미륵불은 군청의 마당 한켠에 숨어 있는 듯 그렇게 서 있었다.

 

 




인제합강미륵불(麟蹄合江彌勒佛)의 원래자리는 인제읍 합강정 아래였으나, 합강정 근처의 도로확장공사로 인하여 군청으로 이전하였으며

목이 잘려 있는 것을 다시 붙여 놓은 것이라 한다.

양 손을 가슴쪽에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이 미륵불의 하반신은 땅속에 묻혀 있다고 하니 원래의 모습대로라면 키도 제법 컸을 것 같은데...

입술을 일그러뜨린 표정이 펑펑 울고 싶은 미륵의 마음인 것 같아 애잔하고 또 애잔했다.

 

 




합강미륵불의 애잔한 모습을 뒤로하고 인제군청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상동리탑을 찾아 인제읍 상동리 백련정사로 왔다.

백련정사 초입엔 산행하는 이들을 위한 단정하고 친절한 안내판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내판이 서 있는 현위치에서 백련정사까지는 그리 먼거리가 아닌 것 같다.

 

탑돌이가 가르쳐준대로라면 이 곳에 자동차를 두고 걸어가야 한다.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아 울퉁불퉁한 이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간다. 

정비되지 않은 길이지만  탑과 불상을 찾아가는 정취엔 딱 어울린다.

 

 




청정지역답게 작은 폭포들이 줄줄이 나타나는 계곡을 따라 걸으며

이 계곡의 물은 의심없이,꺼림칙함없이 그냥 마셔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계곡을 따라 어느정도 걸어오니 야트막한 언덕에 갈래길이 있다.

탑돌이는 이곳에서 기와장이 쌓인 곳을 보고 올라가라고 했다.

갈래길 왼편으로 먼저 올라가본 딸내미가 소리친다."어머니,법당이 보여요~"

 

 




백련정사.

상동리탑을 품고 있는 자그마한 절집.

백련정사라는 표식은 어디에도 없지만 철다리가 있다는 탑돌이의 귀띔이 있었으니.

 

 




탑과 불상을 찾으러 법당 뒤편부터 살펴볼까 하다가 왠지 자꾸 이 건물이 신경쓰여 이 건물의 뒷편을 먼저 살펴보기로했다.

 

 




오늘은 예감이 잘 들어맞는 날이다.

백련정사의 법당보다는 새로지은 건물 뒷편으로 마음이 땡기기에 발걸음했더니 저기 멀리 왼쪽으로 햐얀 안내판이 보인다.

분명 저곳에 상동리탑과 불상이 있으렸다.

 

 




상동리삼층탑은  언덕비탈에 쌓은 축대위에 있었다.

 

 




상동리삼층석탑및석불좌상(上東里三層石塔및石佛坐像)

 




 

상동리삼층석탑(上東里三層石塔)은 인제군 남면 신남리의 암자에 있던 것으로 소양강댐을 만들면서 백련정사(白蓮精寺)로 옮겨왔다는데

2층 기단의 삼층탑이라는데 탑의지붕돌이나 몸돌도 2층이다.

전체적인 모양새로 보아 원래 3층 이상의 탑이었을 것이며 조성연대를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상동리석불좌상(上東里石佛坐像)

이 불상 역시 인제군 남면 신남리의 암자에 탑과 함께 있던 것으로, 탑을 옮기면서 함께 옮겨온 것이라한다.

두상은 없어져서 근래에 새로 만들어 붙인 것이라하는데 가슴에 모은 두손의 모양새로 보아 비로자나불이 아닌가 싶다.

   

 




상동리삼층탑과 불상.

지금이야 제 있던 자리 떠나 이렇게 낯선 곳에 이끼 덮어 쓴 모습으로 있지만

지극한 믿음으로 찾아오는 참배객들 있어,오로지 옛님 찾아보겠다는 일념하나로 발걸음하는 답사객들 사랑이 있어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더우기 예전부터 같이 있던 동료(?)와 나란히 앉아 있으니... 

 

이런 풍경이 좋다.

탑과 불상을 이렇게 위에서 내려다 보는 눈 맛.

 




 

인제의 네 번째 답사처인 인제읍 상동리의 인제향교.

 

 




문은 잠겨 있다.

 

 




"야~명륜당이다~"

잠긴 문틈으로 향교마당을 들여다보던 딸아이가 반가움에 들뜬 목소리로 외친다.

답사는 다니지 않아도,옛님에 대해선 문외한에 가까워도 명륜당은 딸아이에게 매우 익숙한 곳이다.

서울의 사대문 안 종로구 명륜동.은행나무가 敎木인 대학엔 갓 쓰고 수염기른 유생들이 날마다 드나들며 교정에 명륜당이 있는 학교.

그 대학에서 학사.석사과정 수료한 딸아이는 명륜당 편액을 보고 무척이나 즐거워한다.

그래,향교편액하나 보고도 그리 즐겁다면 그것만으로도 답사의 즐거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게야.

 

인제향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전면에 나와 있으니 전학후묘의 배치라고,명륜당 뒤쪽의 건물은 공자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대성전이라는 것과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지만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는 사실도 일러주었다.

 

 




인제향교는 인제성당과 어깨를 나란히 붙이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마침 잘 됐네.

향교도 돌아보고 성당에도 들리고.

 

 




성당건물이 씻은 듯 말간 흰색이다.

화려한 장식없는 고딕식 건물이 유난히 정갈하다.

 

 




어느 곳의 성당을 찾더라도 성당의 이곳저곳을 돌아보기전에 가장 먼저 찾게되는 곳.

성모동산.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어떤 기원이 있어 저리도 신실하게 기도를 드릴까

성모님앞에 무릎꿇고 기도하는 딸아이의 모습이 곱다.

 




 

향교와 어깨를 맞댄 성당 오른편 측면벽엔 이런 곰살맞은 벽화가 있다.

서양의 종교를 우리네 정서로 녹여낸.

한복차림 성모님의 모습이 푸근하다.

 




 

대성전의 편액과 활짝 핀 흰무궁화꽃의 조화가 아름다운 인제향교의 바깥담장을 돌아나오며 머릿속으로 다음의 답사처로 갈 동선을 그린다. 

인제군 북면 한계리 한계사지.

그곳엔 탑 두기와 불상과 광배와 대좌가 있다.

   

열 두시가 조금 지났는데 딸아이가 배가 고프단다.배가고프다는 말을 들으니 괜시리 엄마맘이 급해진다.

아침을 새벽 다섯시에 먹었으니 그럴만도하지.

무얼먹을까 물으니 인제의 향토음식이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저나 나나 인제엔 초행이니 어디 물어볼 곳도 모르고... 인제군청에서 발행한 맛집정보를 찾아볼 수밖에.

(요즘은 군청에서 발행하는 맛집정보가 아주 엉터리는 아니다.몇 번 경험해봐서 안다.)

인제는 황태가 유명한 고장이며 황태로 만든 음식을 잘하는 집은 용대리의 용대관광단지에 모여있다고 한다. 

용대리는 한계사터와는 방향이 한참 다르니 그곳에서 밥을 먹고 한계리로 이동하려면 갔던 길 되돌아와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데

번거롭고 피곤하지만 딸아이가 그리 원하니 불편하고 피곤한 것이 무에 대수더냐.






 

다음의 답사처인 한계사지와 용대리는 다른방향이다.

인제읍에서 설악을 향해 이십여 길로 가까이 가다보면 민예단지가 있는 삼거리가 나온다.

예전 동해나 속초를 가려고 지나쳤던 기억으로는 길이 좁은 작은 삼거리였는데 그새 너무도 넓게,몰라보게 많이 변했다.

이 삼거리에서 군인들이 검문도 하던데 지금은 경찰도 군인도,지키는 초소도 보질 못한 것 같다.

 

한계사지를 가려면 이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15킬로 정도 가면되는데 점심을 먹으려고 용대리로 가야하니

한계사지와는 반대방향인 고성.속초쪽으로 또 그만큼 가야한다. 밥 먹고나서 다시 되돌아 와야하는데 어쩌랴.

딸내미가 황태구이를 꼭 먹어봐야 한다니.

 

그런데

15킬로 밖에 안되는 거리를 삼십여분이 넘게 헤매고서야 용대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넘의 네비때문에.

민예단지삼거리에서 고성.속초 쪽으로 방향을 잡아 한참을 달리는데 갑자기 네비가 좌회전을 하란다.

어쩐지 말도 안되는 것 같은 예감이 들어도

초행인지라 할 수 없이 시키는대로 하였더니 진출로 없이 진입로뿐인 일방통행인 길에 덜컥 세워 놓는다.진출로가 없는데 어쩌라고.

다시 왔던길 되돌아와서 돌고 또 돌았는데도 이넘의 네비는 자꾸 틀렸다고 까탈부리고...

으휴~

사실은 도로가 말끔하게,넓게 재정비되어 그냥 직진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이넘의 네비 때맞춰 자주 업그레이드 하는데 왜 이런지 몰라.네비가 늙어 망령이났나.

좌우회전 열심히 명령하는 네비무시하고 그냥 쭉 직진하면 오른쪽으로 황태그림 근사하게 세워놓은 용대리관광단지에 닿는다.

 

 




용대리관광단지 근처의 밥집에 들어갔다.

역시 황태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집인데 북적대는 휴가철도 지났고 비 소식 자주 들리는 평일이라 그런지 밥집내부는 한산했다.

딸아이와 나는 황태구이백반을 주문했다.

황태구이정식엔 철판접시에 구운 황태구이와 열가지나 되는 반찬이 곁들여져 나왔다.비록 젓가락 갈 것이 없었지만.

 

 

 



황태구이정식의 주인공인 황태구이 2인분.

철판접시에서 지글지글 소리내는 황태구이가 식욕을 자극한다.

황태구이의 맛은 썩 훌륭하지도 그렇다고 아주 형편없는 것도 아닌 내가 만들어도 이 정도의 맛은 낼 수 있을 정도.

양념한 황태를 구울 때 기름을 너무 많이 두른 것 같았고, 젓가락질 번거로웠던 지느러미나 가시들을 제거하는 배려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황태구이정식에 딸려나온 황태국.

뽀얀 국물이 황태대가리나 뼈들을 넣고 고은 것 같은데 이렇게 뽀얀 국물을 내려면 에지간히 많은 황태대가리가 들어 갔을 것이며

에지간히 오래 끓였을 것이다.

맛이 괜찮다며 딸아이가 계속 국물을 들이키는 것을 보니 배가 많이 고팠던가보다.

아니,딸아이는 솥에다 삶는 것은 빨래빼고 다 먹을 수 있을만큼 식성이 좋기는 하다.저러다간 나중에 물 엄청 찾을텐데.

딸아이와는 달리 난,간이 너무 짜서 건데기만 건져 먹었다.

황태구이정식 2인분이 24000원.

오늘 답사비용은 모두 제가 쓰겠노라는 딸내미가 지갑을 열었다.

 

 




소금을 뿌려놓은 것 같다는 이효석의 소설 한 귀절이 깊게 각인되어 그런가 메밀꽃만 보면 소금을 뿌린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선다.

점심식사를 했던 밥집 주차장 건너편엔 메밀꽃이 그야말로 지천으로 피어 있었다.

소금을 뿌린 듯한 메밀꽃이 눈부셔 시선을 위로 들어보니 녹색의 표지판이 아련한 고속도로가 길게 지나간다.

언제든 맘만 먹으면 훌쩍 떠날 수 있는데 왜 떠남에 목마른 사람처럼 늘상 길 안내판만 보면 눈이 아련하고 가슴이 아릿할까.

못말리는 바람이다.

 

  




언젠가 여름휴가 때 이 길을 지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느해 겨울인가 저기 보이는 불쑥 솟은 바위전체를 얼음으로 덮어놓고 빙벽을 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점심식사를 했던 식당근처의 매장에서 오징어 한축을 샀다.

오징어 좋아하는 아들내미를 위하여.물론 딸아이의 지갑을 열었고~ㅎ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민예단지삼거리까지 간 후 한계리로 향했다.

설악의 품에 자리한 한계사터에 대해선 '한계사터 돌아보기'로 따로이 포스트 할 것이니 이곳에선 생략한다.

 

 




한계사터를 돌아보고 다시 인제읍 원대리에 있다는 원대리 탑을 찾아 한계사터를 떠난 시각이 오후 3시.

한계사터에서 조금 떨어진 서화리로 갈까 하다가 처음 답사를 시작했던 인제읍으로 향했다.

서화리엔 서화리탑이 있다는데 알고 있느냐는 내 물음에 보도듣도 못했다는 인제군청 문화관광과 직원의 말을 들었었고

서화면사무소에 전화를 해보아도 모르겠단 대답을 들었으니.서화리탑도 포기했다.

 

인제읍 원대리탑에 대한 자료는 인제읍 원대리에 있다는 것과(비지정탑이라 물론 번지수도 없다)

언젠가 도난을 당했다가 주민들의 원성으로 다시 되돌려 받았다는 것 뿐.

 

그리 크지 않은 인제읍인데 원대리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정확한 번짓수를 입력하라는 네비의 명령에 대충 인제읍 원대리 20번지라 입력했었는데 도착한 곳은 인가도 없는 산골짜기.

할수없었다.

되돌아 내려오면서 사람이 보이면 물어볼 수밖에.

어찌어찌하여 마당에서 옥수수를 털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고 그 할머니에게 이 동네에 탑이 있느냐 물어보았다.

금시초문이라는 할머니와는 달리 가는귀가 어두우신 할아버지는 탑의 이름은 몰라도 잃어버렸던 탑을 찾아온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그 탑은 원대리 절골에 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절골을 찾아야 했다.

원대리에서 그래도 가장 음식점이 많은 곳으로가서 물어보았다.

"탑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절골은 이리로 한참 올라가야 해요"

음식점에서 가르쳐준대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고 또 올라가 보았는데...절골이다 싶은 곳도, 사람도 보이질 않았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 빙빙 돌다가 무슨 연수원이던가 하는 근사한 건물 앞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에 할머니가 보이길래 들어갔다.

할머니에게 탑에 대해서 다시 물어보았다.

"탑이 절골에 있긴 있어요.그런데 탑을 볼라면 탑 임자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껀데."

"탑이 임자가 있는 것이군요~ 그런데 탑임자는 어디에 살아요?"

"저기 보이는 기와집에 살고 있는데 탑임자가 허락을 해도 오늘 중엔 찾기 힘들어요.저기 보이는 언덕위로 한참을 올라가야 절골이 있는데

절골에서도 계곡을 쭉 따라서 내려가야 탑이 있거든.옛날에 면에서 그 탑을 가져간걸 지금 탑임자가 억지로 찾아왔어요.

그래서 탑도 아무나 보여주지 않아요."

"읍사무소에선 이장님께 물어보고 허락을 받으라고 하던데요"

"이장이 뭘알아.여기 이장 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모를거야.젊은 사람인데..."

 

애써 찾아왔는데 아쉽지만 포기해야 했다.

포기하고,할머니께(제일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분) 자분하고 친절한 설명 고맙단 인사를 하고 자동차를 되돌린 시간이 오후 4시 30분.

  

8월 마지막날의 인제답사.

비록 찾아보지 못한 옛님 서너분이나 되어도,아쉬운 맘으로 포기하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어도

명륜당편액 하나에 즐거워하고,답사동선에 없던 성당에서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딸내미에겐

답사의 즐거움이 뭔지,왜 가고 또 가는건지,옛님을 찾아가는 걸음이 쉬운 것은 아니며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돌아와 생각하니 그 어떤것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가슴 가득한 포만감과 길고 긴 여운이 남았다니

그걸로 충분했다.

 

(인제답사기를 쓰면서 자료로 쓸 수 있을까해서 원대리탑을 검색해보니 딱 한곳 네이버블로그에 원대리탑에 대한 만족할 만한 자료가 있었다.

그 블로그엔 인제원대리탑의 사진과 탑에 대한 상세한 내력과 탑이 있는 근처의 법당에 대해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었다.

사진은 복사가 가능하게 되어 있었으나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은 내 정서가 아니며 도리에도 맞지 않는 것 같아

원대리탑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기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댓글만 쓰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