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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여행 후기

인제 한계사지麟蹄寒溪寺址 돌아보기

푸른새벽* 2010. 10. 6. 10:35

 

 큰 산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고 한다.

하나의 산 이름이기에 앞서 커다란 상징이며 산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산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가늠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오는 설악산(雪嶽山).

추석 무렵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며 여름이 되어야 녹는 까닭으로 설악이라 불린다는 거대하고 웅혼한 산자락에는

언제 자리잡았는지 언제 폐사되었는지 확실하게는 알 수 없는 절,한계사터寒溪寺址가 있다.

그 절터를 찾아 설악의 품,내설악으로 들어간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설악산국립공원 장수대분소.

떠나오기전 탑돌이는 분명하게 알려주었었다.

꼭 장수대분소에 들러 도움을 청하라고.

답사를 다니다보면 경험으로만 터득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가령 금지구역이지만 꼭 찾아봐야 할 옛님이 있다면 관리사무소에서 공손하게 차분하게 도움을 청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

금지하는줄 아니까 허락없이 몰래 찾아들었다가 발각(?)되어 끌려나오는 민망함을 당하는 것보다 얼마나 당당하고 떳떳한가.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왕릉에서 특히 그랬었다.

 

한계사지를 찾아 들어가는 길도 출입금지구역이었다.

탑돌이 말대로 관리사무소에 들어가 공손하게 인사하고 이러저러한 일로 답사를 왔는데 가능하면 출입을 허락해주십사고 정중하게 청하였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썩 달가와하지는 않았지만 내 행색이 등산객으로는 보이질 않았는지,아니면 금지구역에 들어가서 못된 짓을 하지는 않을 것같아 보였는지 아무튼 허락을 하였다.원래는 금지구역인데 답사를 왔다니 허락하겠노라고.

 

 




설악산국립공원의 등산로와 탐방로를 세세하게 그림으로 만들어 세워놓은 커다란 안내판 뒤에 숨 듯이 서 있는 한계사지 안내문.

 

 




출입금지구역이라는 안내문이 걸린 이 문을 당당하게 열고 들어갔다.

 

 




이 길을 따라 얼마를 들어가야 하는지는 모른다.

아주 커다랗게 잘 그려놓은 설악산 등산로나 탐방로안내판에도 없는 절터이니 입구에서 얼마나 들어가야 하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얼마를 더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채로 한참을 걸으니 이런 건물이 보인다.

산 속에 있는 집이지만 그 규모가 작지는 않은데 어떤 용도로 언제 사용하였는지 건물은 많이 상해있었다.

 




 

낡은 건물이 있는 곳에서 잠시 더 위로 걸으면 자분한 돌계단이 나오고 그 위쪽으로 트인 공간임을 짐작할 수 있는 터가 나온다.

절터같기는 하다.

 

 




절터임을 알리는 표식은 없어도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석재들로 보아 절터가 분명하다.

아니 맞다.저~기 하얀 안내판 비슷한 것이 서 있으니.

 

 




탑이 보인다.

탑이 보인다. 

 

 




절터에서 보는 탑이 반가워 걸음을 재촉하는데 풀섶 왼편으로 이런 작은 돌계단이 있다.

자꾸 마음이 쓰인다.

이 깊은 산속 절터에 왠 계단이 있을까.등산로인가

이 계단을 올라가보고 싶은 맘보다 탑이 더 먼저 부르는 것 같아 우선 탑에게...

 

 




한계사지탑.

절터 안에 있으니 남탑(南塔)이 분명하다.

한계사지엔 탑이 두 기가 있는데 남탑의 주소는 한계사터와 같고 북탑(北塔)은 주소가 다르니 분명 남탑이 맞을 것이다.

 

 




한계사지남삼층석탑(寒溪寺址南三層石塔)

이 탑이 제자리를 찾기 전 까지는 요 아래쪽 폐가로 남은 낡은 건물 곁에 있다가 원래의 자리를 찾아 이리로 옮겨 졌다고 하는데

탑의 정면에서 왼쪽으로 금당터로 추정되는 자리가 있고 금당터의 위쪽 숲속에 북삼층석탑이라 불리는 탑이 한 기가 더 있으니

이 탑과 언덕위의 탑이 쌍탑이었을 것이라 추정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막 세수를 마친 새새댁같은,말갛고 고운 자태.

 

  




탑의 앞 쪽에 있는 석조물.

난 처음에 이 사각의 석조물이 의례히 그렇듯 배례석치고는 조금 크다 싶었어도 의심없이 배례석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더 많은 한계사터의 자료를 찾아 보던 중 어느책에서 이 구조물은 배례석이 아니라 공양상을 받치고 있던 대석일 수도 있다는 글을 읽었다.공양상의 대석이라고 단정지을 가장 큰 이유는 네 군데의 연화문 간격이 일정치 않다는 것이다.

통상 배례석이라면 네 곳 연화문의 위치가 일정한 간격으로 만들어져 있다는 것인데...

하긴 배례석치고는 연꽃문양이 오랜세월이 흘렀음에도 너무 튀어나왔다는 생각이 들기도하고.

 




 

배례석이든 아니든 이 아기자기한 조각이 새겨진 네모난 석조물이 이쁘기만 하다.

누군가 그랬지.

어떤 용도인지,명칭이 정확한지 아닌지는 따지지말고 그저 마음이 움직이는데로 보고 느끼라고.

 

 




남삼층석탑에서 왼편으로 눈길을 돌리면 허물어져내린 나즈막한 석축곁에 불상대좌가 있다.

크기는 그리 크지 않은데 대좌는 중대석과 하대석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

하대석의 각 면에는 지금도 뚜렷하게 알아볼 수 있을만큼 정교한 사자가 조각되어 있는데 한 면만 제외하고는 사자의 조각이 모두 훼손되었다.

 

 



 

하대석 각 면에 새져진 사자중 비교적 모습이 온전한 사자

앞발을 턱 밑으로 모두고 뒷발 역시 가지런하게 엎드려 있는 모습이지만 자꾸자꾸 대좌에서 털털 털고 내려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불대좌 뒷쪽에는 무너진 석축에 비뚜름하게 기대선 불상광배가 있다.

 




 

제 모습 온전치 못한 광배의 윗쪽면에 희미하게나마 연화문새김이 보인다.

광배의 연화문은 불상의 머리나 가슴부분이 닿는데 이 광배의 연화문을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광배는 크기가 상당하였지 싶다.

연화문 위쪽의 깨진 부분을 기준삼아 어림잡아보면 더욱 그렇다.

 

 



 

 

 

 

 

 

 

 

자료를 살펴보면 광배는 두 개의 선으로 두광과 신광으로 구분하였고

두광 안에는 8판연화문이 있고, 주위에는 보상화문을 새겼고 신광의 바깥 부분은 화염문을 조각하였으며 그 안쪽 에 원래는 9구의 화불이 있었으나 지금은 5구의 화불만 남아 있다고 하는데 난 딱  한 구의 화불밖에 보지 못한 것 같다.

그것도

한계사터에서 광배를 살펴 볼 때는 몰랐는데 집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면서

찾았던 것이다.

 

 

 

 

 

 

 

  





대좌와 광배가 있는 자리에 서 보면 탑과 금당터가 확실히 구분이 되는데 금당을 중심으로 하여 오른쪽으로 탑이 하나 더 있었을까

아니면 탑의 왼편이 또 하나의 탑이 있던 자리일까...가늠해보는 것도 즐겁다.

 

 




한계사터엔 이런 석조물들이 여러군데 흩어져 있다.

뒤의 것은 불상이라는데 앞에 구멍이 뚫린 이 것의 쓰임새는 무엇이었을까.

석등의 받침돌? 아니면 전각의 활주를 고정시켰던 초석?

 




 

본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두루뭉수리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불상.

불두를 잃어버렸다고해도 그리 크지 않으니 아마도 좌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한계사터의 자료를 찾아보지 않았더라면 난 이 석조물이 불상이었다는 사실은 몰랐으리라.

눈으로 보이는 것도 믿지 못하는 세상에서 나라고 특별하게 다를 것은 없으니.

 

누군가 말했다.

그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만 스쳐갈 뿐 그 앞에 멈추지 않는다고.

그러나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폐사지 순례는 온전한 것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랜 세월의 자욱은 석조물을 장식한 꽃잎의 조각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이게 하는 힘도 가지고 있나보다.

천년세월이 무색하다.

 

 




한계사터, 그 품에 안고 있는 탑과 불상과 대좌와 광배를 찾아보고 풀섶에 숨어 있는 그 내력을 더듬어보다가 다시 발길을 돌린다.

설악의 위용을 어렴풋한 안개속의 능선으로 멀리서나마 어림잡으며 한계사터 북삼층석탑을 찾아 다시 자동차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이곳이 출입금지구역일까...

 




 

자동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와 네비에 주소를 입력하니 자동차가 세워진 자리에서 몇 백미터 밖에 되질 않는다고 자꾸 그런다. 

탑돌이에게 전화를 해보니 남삼층석탑이 있는 그 위쪽 언덕에 북탑이 있단다.

 어쩐지 한계사터에 들어설 때부터 수풀속으로 난 이끼낀 이 계단이 자꾸 마음쓰이더라니.어쨌거나 내려온 길을 다시 더텨갈 수 밖에.

날 덥고 눅눅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자꾸 마음 쓰였던 이 계단이 맞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어쨌거나 올라가보자.

 

 




남삼층석탑이 있는 곳에서 이끼낀 돌계단으로 한 오십여 미터쯤 올랐을까.

나무들 사이로 어른어른 탑이 보인다.

내 짐작이 맞았네.

 

 




언덕을 올라 탑 가까이 가는 그 잠시동안 사진을 찍기는 몹시 불편하겠다 싶은 생각을 했다.

 

 




한계사지북삼층석탑(寒溪寺址北三層石塔)

요 아래 한계사터에 있는 탑과 쌍탑이었을 가능성도 추정할 수 있다는 이 탑은 무너져 있던 것을 1984년에 복원하였다는데 비교적 상태가 온전해 보인다. 탑 지붕돌의 층급받침이 남삼층석탑과는 다르지만 거의 비슷한 형태의 신라시대탑이다.

탑은

이렇게 가까이서 보면 운치를 느낄 수가 없는데...

뒤로 물러설 자리 마땅치 않아 올려다 보기가 영 불편하다.

 

 




나무들 사이로 어른어른 보이는 탑이 좋아 되돌아 내려오는 걸음이 오를 때보다 훨씬 느리다.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

 




 

산은 가까이 있기도 했으며 멀리 있기도 했다.또 불거져 모난 봉우리가 있는가 하면 부드럽고 유장한 능선으로 있기도 했다. 더러 빼어난 봉우리 위의 소나무는 마치 漏盡의 경지에 다다른 듯 그저 바람이 불면 보는 대로 안개가 덮치면 안개에 가려진 대로 가만히 서 있을 뿐이다.

부처님 또한 그렇지 않은가.그는 아주 가까이 계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멀리 있는 산과 같으며,존재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결코 뽐내는 법이 없다.산에서는,다만 그를 지나가는 비바람과 눈보라며 천둥과 번개 그리고 그 안에서 사는 산짐승이나 새들만이 소리를 낼 뿐,산이 스스로 소리를 내는 법은 없다.부처님 또한 그 스스로 요란한 소리를 내는 법이 결코 없다. 다만 그를 지나가는 사람들만이 시끄러운 소리로 시비를 가리려 애를 쓰는 것이지.그는 그저 如如할 뿐이다.

 

드문드문 바람만이 선물처럼 산에서 내려올 뿐 모든 소리가 잦아든 적요의 한계사터.

적어도 그곳에서는 부처님 자리에 산이 대신 앉아도 모자람이 없었다.

*이지누 지음'절터,그 아름다운 만행'중에서*

 

2010년 8월 마지막날 다녀온 한계사터의 답사기를 미루고 미루다 이제서야 마치게 되었다.

내 게으름의 극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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