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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도대체 왜? 본문

☆~ 雜想/일상의 소소함

도대체 왜?

푸른새벽* 2010. 10. 4. 09:51

 사람이 살다보면 이러저러한 일로 언짢거나 불쾌해지는 일이 어디 한두가지 일까마는...

 

어제 점심부렵부터 거의 여섯시간 이상을 다음의 답사처로 마음먹은 경북 의성에 관한 자료를 정리하느라 문화재청이며 국립문화재연구소며

한국전통사찰의 홈페이지와 의성군청의 문화관광홈페이지를 몇 번이고 들락거렸으며, 나보다 먼저 발걸음한 답사객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려 여러곳의 블로그나 까페를 찾아보았고, 내 서가에 꽂힌 각종 답사에 대한 책들을 찾아보고 밑줄 그어가며 취합한 자료들을 다시 세세하게 분류하고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타이핑하여 프린트 해놓고도 완성된 자료의 내용들을 세세하게 체크하면서 만나볼 옛님에 대해 다시 꼼꼼히 숙지하느라 여섯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 몰랐는데...

물론 전국 지자체의 문화재나 유적 전체에 대한 자료는 정리해 두고 있지만 답사를 떠나기 전에 하는 내 습관이 다시 한번더 꼼꼼하게 살피고 챙기는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꼭 이렇게 해야할 이유가 있을까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여지껏 자료를 정리하며,또 답사를 다니며 한 번도 그런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시간이나 경비가 아깝다는 생각을 해 본적도 없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사람들 속에서 부대끼지만 평범하게 일상을 꾸려나가는 중에도 갈등은 다반사이기 마련이다.

몇 년 전 내 개인적인,지극히 개인적인 일로 견디기 힘든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도 답사에 대한 나의 애정은 변함이 없었는데 요 며칠 사이

과연 이대로 답사를 계속 해야할지, 이렇게 모든 사람이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내 공간을 펼쳐놓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갈등이 슬며시 자릴잡더니 답사자체에 대한 회의와 자괴감까지 들었다.

 

그 회의에 대한 가장 큰 이유는 다름아닌 고창문수사에 대한 포스팅에 달린 댓글 때문이었다.

내 공간 <푸른새벽>에 자주 발걸음하거나 댓글을 써 주시는 분들은 그렇지 않은 것은 말 할것도 없지만 비교적 악플이 달릴만큼 요란하게 글을 쓰지는 않는 편인데...

 

2009년 6월.나라안이 전직대통령의 자살소식으로 들끓을 때 전북 고창을 돌아보게 되었다.

가장 먼저 선운사를 찾아보려고 계획을 세웠었는데 전례없이 유난한 그 해 6월의 더위에 두어시간은 족히 걸어야 할 선운사는 엄두가 나지 않아 선운사는 꽃무릇 다 지고난 다음에 찾아보기로 하고 그 다음으로 찾았던 곳이 문수사였다.

문수사 대웅전의 전면 공포에 그려진 귀면을 보고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 귀면이라 썼더니 어떤 분이 귀면이 아니라 용면이 맞는 것 아니냐기에 책에 의존하는 내 짧은 지식으로는 정의할 수 없기에 내로다 하는 고수들이 모인 옛님방에 귀면인가 용면인가를 물어봤던 적이 있다.

귀면이 맞다,아니다 용면이다 하는 여러가지 의견이 분분했는데 그 중에 어떤 분의 댓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정답은 다른 누구의 이야기에도 기울이지 않고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죠... ㅋㅋㅋ... 기존의 많은 사람들이 귀면이라고 했는데, 최근에는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 이게 뭐 도깨비면 어떻고, 용이면 어때요... 기냥 한 번 쳐다보고 "짜슥~~~ 별나게 생겼네." 그러고 돌아서면 되죠."

불교교리에 대해선 문외한이라 그렇겠지만 무엇보다 종교가 다른 나로서는 고개 끄덕여지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내가 공감한다 써 놓은 글에 이런 댓글을 장황하게 써 놓은 사람이 있었다.

  

용면, 귀면하는 것 보다 내맘으로 느끼는 것이 답사의 진정함!?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기선 고수의 말씀이라 보기엔 어패가 있네요.사찰의 건축물은 철저하게 불교의 교리를 담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느끼려면 그 것을 다 알고 난 후에 이루어져야할 단계, 법고창신이라고 들어보셨겠죠?

아뭏튼, 대웅전은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고해의 바다에 헤메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苦海의 바다에 띄우신 지혜의 배,

반야용선입니다. 이 배에 오르는 사람은 모두 마음을 닦아 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지혜의 배는 용선입니다.

용의 모습이라는 말이예요. 그러니 귀면은 아니라 용의 얼굴이겠죠?

그 용안너머 대웅전안에 들어가면 용의 몸이 쭉 이어져 있고. 대웅전 밖으로 나가면 용의 꼬리가 나와 있답니다.

못보셨죠? ㅎㅎ

대웅전의 안과 밖에 용의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

그대가 서울, 경기 일원에 거주하신다면, 파주 보광사 법당의 측면에 그려진 반야용선의 사실적인 모습을 보러 가보세요.

저는 불교방송에서 <산사를 가다>를 진행하는 僧 원욱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문수사에 대한 포스팅에서 옛님방의 인연으로 알게된 들곷박사인 동생이 써 놓은 댓글에 답글로 쓴 내 글에 아주 세세하게 토를 달아 놓았다.

 

  • 현진
  • 2009.06.01 08:13
  • 사람은 참 아는 것만 알고 모르는 것은 무관심하나봐요.
    주변에 절집이 흔한데,
    다른 지방은 내가 아는 절집 딱 하나만 있다고 생각해요.ㅎㅎ
    고창하면 선운사가 너무 유명하니까 선운사말고는 절이 없는줄로 생각했어요.
    문수사도 있었군요.
    담에   고창에 들릴 일이 있으면 여기도 찾아봐야겠네요.
    • 沈香
    • 2009.06.01 12:59
    사실 이번 고창으로의 답사는 선운사가 우선이었어
    선운사는 세 번이나 돌아보았는데도 세 번다 미진했기에 이번에는 맘 먹고 철저히 낱낱이 살펴보려했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 혹 더위라도 먹으면 어쩌나 싶어 겁이 났어
    선운사는 그 위쪽에 있는 참당암이나 마애불을 보려면 뙤약볕에 한 참을 걸어야 하기에
    선선한 계절,그것도 꽃무릇이 다 지고 난 다음에 돌아보기로 하고 그 대안으로 찾았던 곳이 문수사였어.
    물론 답사동선에도 있었고.
    솔직히 문수사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지.그런데 대웅전을 보는 순간 어찌나 기쁘던지...
    하지만 그 기쁨을 채 만끽하기도 전에 맘이 상하고 말았던 것은
    스님의 큰 소리때문이었어
    그래서 문수전의 문수보살도 부도밭을 본 다는 것도 언감생심 꿈도 못꾸겠더라구
    문수사의 스님은 매우 냉정하고 사납다고 하면 실례가 되려나~

     

      

    내 보기엔 본인이 결례를 하셨던 것 같던데요.

    사람도 허락받지 않고 정면에서 똑바로 쳐다보고 사진을 찍거나 바라보면 실례랍니다.

    가운데 문은 신도들이 통행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곳은 기도하는 도량이므로 불자가 아니어도 예의는 갖주는 것이 좋을 듯했어요. 맘이 무척이나 상했다본데......

    안타깝네요.

    사찰을 문화재로만 보는 이들과 기도하는 생활공간으로 보는 것에 서로 다른 관점이 존재합니다.

    대웅전을 보고 왜 기뻐하셨는지요.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오랫동안 옛모습을 간직해서?

    그럼 그것은 몇년지나지 않아서 사라집니다.

    나무벌레.비 바람에 의해서, 그래서 다시 나무를 갈아 끼우고 기와를 올리며, 대 수술을 감행합니다.

    수술한 흔적들이 너무 참담하기도 하고, 그 목재들이 몇백년을 견디라고 다시 단청을 곱게 올립니다.

    그렇게 천년의 법당들이 후세에 전해진답니다.  

    그런데 문화재를 찾아오는 이들은 오로지 천년전 처음 단청한 모습을 변하지 않고 만나게 되길 바라시지요.

    아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말, 마음속에 담아두시고 사찰의 문화재를 찾아가세요.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혹시 명동성당에 들어가서 마음껏 셔터 눌르는 일이 가능하시다고 생각하시나요.

    유럽의 성당에서 그런 일들이 가능할까요?

    한국의 사찰은 거기에 비하면 매우 관대하다고 생각하진 않으시나요?

    관리감독하는 사찰의 소임자들의 애환을 글로 쓰라면 만인상소길이는 될 껄요!

    오래전 글이시기는 하지만 문수사 스님을 너무 모욕하신다. 싶어서 글을 남기고 갑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문수사를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찾아오셨더라면 그런일은 없었지 싶은데요! 선운사의 대안으로 문수사!ㅎㅎ
    게다가 부도전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월장하기가 일쑤이니

    사진기들고 오는 답사객들은 스님들에겐 요주의 인물, 이런 분들에게 오랫동안 사찰의 문화재를 도난 당한 기억도 있고.......!

     

    자신을 僧이라고 밝힌 분이 써 놓고간 글이다.

     

    이 글을 쓰면서 이번만큼은 나는 여지껏 살아오면서 내가 손해보는 듯해도 참는 것이 훨씬 편했던 그간의 내 맘을 버리고

    내가 불편한 만큼 그에대한 반론을 쓰려한다.

    아주 유치하고 성숙하지 못한 짓 인줄 뻔히 알면서도 이렇게 쓰는 것은 순전히 내 정신건강 때문이다.

     

    용면, 귀면하는 것 보다 내맘으로 느끼는 것이 답사의 진정함!? 물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여기선 고수의 말씀이라 보기엔 어패가 있네요.사찰의 건축물은 철저하게 불교의 교리를 담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느끼려면 그 것을 다 알고 난 후에 이루어져야할 단계, 법고창신이라고 들어보셨겠죠?

    아뭏튼, 대웅전은 석가여래, 부처님께서 고해의 바다에 헤메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苦海의 바다에 띄우신 지혜의 배,

    반야용선입니다. 이 배에 오르는 사람은 모두 마음을 닦아 고해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지혜의 배는 용선입니다.

    용의 모습이라는 말이예요. 그러니 귀면은 아니라 용의 얼굴이겠죠?

    그래요,그건 맞다고 치지요.글 쓴이가 자칭 僧이라니 불교의 교리대로 따르는 것이 맞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문화유산을 모두 불교의 교리대로 보라는 법은 없지요.

    절을 지을 때,단청을 할 그 시기의 그때 그장소에서 그 사람들로부터 그 뜻을 들어봤냐고 묻고 싶네요.

    많이 배우고,연구하고 문화재에 대해선 내로다 하는 학자들의 의견도 엇갈려

    귀면인지 용면인지는 딱 부러지게 결론 난 것은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용안너머 대웅전안에 들어가면 용의 몸이 쭉 이어져 있고. 대웅전 밖으로 나가면 용의 꼬리가 나와 있답니다.

    못보셨죠? ㅎㅎ

    대웅전의 안과 밖에 용의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

    그대가 서울, 경기 일원에 거주하신다면, 파주 보광사 법당의 측면에 그려진 반야용선의 사실적인 모습을 보러 가보세요.

    제대로 공부하고 답사하는 사람들이 대웅전 내부의 용미를 보지 못했을까요?

    어째 반야용선을 보러 파주 보광사에만 가보라고 하시는지.내가 비록 경기도에 살아도 답사라면 전국구입니다.

    반야용선의 사실적인 모습이 보광사에만 있는것은 아니지요.통도사극락전 외벽에 그려진 반야용선이나 제천 신륵사의 반야용선을 비롯하여

    여지껏 찾았던 백여 곳이 넘는 전국의 절집 곳곳에서 만난 반야용선은 열 손가락으로도 한참 모라자는데.

    그리고 어찌 딱 부러지게 내가 대웅전안의 용미를 못보았다고 단정짓습니까?

    보러가라하지 않아도,세세하게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는 답사를 시작했던 첫 해 부터 알았거든요~

    문화유산에 대해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들 앞에서나 잘난체 하며 할 그런 말을 어찌...소위 자신을 僧이라고 밝힌 사람이.

     

    내 보기엔 본인이 결례를 하셨던 것 같던데요.

    사람도 허락받지 않고 정면에서 똑바로 쳐다보고 사진을 찍거나 바라보면 실례랍니다.

    가운데 문은 신도들이 통행하는 곳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곳은 기도하는 도량이므로 불자가 아니어도 예의는 갖주는 것이 좋을 듯했어요.

    대웅전 앞에선 잠시 목례하거든요? 그리고 제가 갔던 시각에 고창문수사에선 예를 갖출만한 사람은 없었거든요?

    스님이나 보살이나 보여야 예를 갖추지요.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옛말처럼 저도 답사길 십여년에 그것쯤은 알고 있어요.

    스님은 성당에 가시면 성호를 그으시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그리고 법당의 가운데 어칸은 스님들만 출입이 허락된다는 것쯤은 이미 몇 십년 전에 알았거든요?

    혹여 그 법도를 모르는 사람이 어쩌다 가운데 문으로 출입하려했다면 절집사람들이 가만 두었겠습니까?

    그리고 법당이 사람입니까?

    법당을 정면에서 사진 찍으면 안된다고 불교경전이나 속세의 법전에 명시되어 있기라도 합니까?

     

    사찰을 문화재로만 보는 이들과 기도하는 생활공간으로 보는 것에 서로 다른 관점이 존재합니다.

    대웅전을 보고 왜 기뻐하셨는지요.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오랫동안 옛모습을 간직해서?

    그럼 그것은 몇년지나지 않아서 사라집니다.

    나무벌레.비 바람에 의해서, 그래서 다시 나무를 갈아 끼우고 기와를 올리며, 대 수술을 감행합니다.

    수술한 흔적들이 너무 참담하기도 하고, 그 목재들이 몇백년을 견디라고 다시 단청을 곱게 올립니다.

    그렇게 천년의 법당들이 후세에 전해진답니다.  

    그런데 문화재를 찾아오는 이들은 오로지 천년전 처음 단청한 모습을 변하지 않고 만나게 되길 바라시지요.

    자~ 사찰의 보수에 대해 말씀하셨으니...

    건축물을 개보수하지 않으면 몇 년안에 사라진다고요?

    아주 쉬운 예로 부석사의 무량수전이나 봉정사의 영산전이나 병산서원 만대루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무량수전이나 영산전이나 만대루나 몇 년 전에 단청을 비롯하여 각 전각들을 대수술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고 서산 개심사의 경우도 표나게,거하게 개보수는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사찰이,그 건물들이 지금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적어도 우리네 선조들은 건물 하나를 지을 때에도 몇 백년을 견딜 수 있도록 미래를 내다보고 지은 것으로 알고 있는 제가 틀린 걸까요?

    우리 답사객 누구나 사찰의 개보수에 관해서 뭐라 하지 않습니다.특히 단청에 대해선.

    다만 예전 그 터에 있었던 모습과는 터무니없이 으리번쩍하게 변형시켜 놓으니 하는 소리지요.

    답사객들은 차치하고라도 학자들 모두 한결같이 입을 모아 버려놓았다고 하는 수덕사의 불사에 대해선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근래에 들어 영암도갑사엔 가 보셨는지,

    선운사라는 사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망쳐놓은 노전채의 철거와 고아한 모습이었다는 요사채의 철거는 어떤 이유를 들어 설명하시겠습니까.

    지금 어마어마하게 경비들여 치장해 놓은 불사가 후세에는 창건 당시의 모습과는 다르다고 모조리 다시 뜯어 고칠 것은 뻔한데...

    가까운 예로 광화문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예전의 모습 다치치 않으면서 관리를 위해 표나지 않게 개보수 한 사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답사객들 있던가요?

     

    혹시 명동성당에 들어가서 마음껏 셔터 눌르는 일이 가능하시다고 생각하시나요.

    유럽의 성당에서 그런 일들이 가능할까요?

    한국의 사찰은 거기에 비하면 매우 관대하다고 생각하진 않으시나요?

    관리감독하는 사찰의 소임자들의 애환을 글로 쓰라면 만인상소길이는 될 껄요!

    명동성당은 아직 답사걸음 못미쳐 뭐라 할 처지는 못됩니다만 사찰이 전국에 산재해 있듯 성당도 전국 어느고장에나 있습니다.

    성당이 어디 명동성당 뿐인가요?

    나라에서 지정한 문화유산인 횡성풍수원성당이나 익산의 화산성당,아산의 공세리성당엔 가보셨는 궁금하네요.

    어느 성당을 가도 사진촬영 말리는 곳 없습니다.심지어 聖像의 전면을 가까이서 사진찍어도 조명을 밝혀줄지언정 말리는 곳은 없습니다.

    유럽의 어느 성당을 말하는지는 몰라도 유럽의 성당을 답사한 답사객 누구도 미사중이 아니면 사진촬영 말리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생각있고 깊이있는 답사를 하는 사람 누구도 예불 중에 불상이나 법당을 촬영하는 사람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혹여 예불 중인데도 사진찍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답사객이 아니라 그저 한낱 무뢰한에 지나지 않겠지요.

    그리고 입만 살아있고 염치없는 정치인도 아니면서 외국과 비교를 하시는데...

    유럽과 우리나라는 비교하면 안되지요.사람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고 정서가 다른데.

    한국의 모든 사찰이 관대하지는 않습니다.한국의 모든 사찰이 관대하다는 건 불자나 절집사람들이나 스님의 착각입니다.

    모든 일이나 사물을 공평하게 정의하려면 바깥에서 보는 눈이 정확하거든요.또 그것이 기준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고.

    사찰의 문화재를 관리감독하는 분들의 애환을 쓰라면 만인상소의 길이가 된다고 했지만,우리 답사객들의 애환은 아마도 그 만인상소의 열 배는 넘는다는 것 모르시지요?

    사찰에선 문화재관리를 하는 사람들의 노고 때문에 적지않은 액수의 입장료 받는 것 아닌가요?

    사찰과는,답사와는,참배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등산객에게까지.

    성당에서는 절대 입장료 받지 않습니다.

     

    오래전 글이시기는 하지만 문수사 스님을 너무 모욕하신다. 싶어서 글을 남기고 갑니다. 

    스님을 모욕했다구요? 

    예불 시간도 아닌데 법당 밖에서 사진 몇 컷 찍은 것이 그렇게 산이 울리도록 도둑 취급당하며 야단을 맞아야 하는 일인가요?

    너무도 놀랬고, 애써 시간경비 들여가며 더운날 찾아간 절집에서 그렇게 야단을 맞았는데 기분이 언짢은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요?

    역지사지로 스님은 그런 경우라면 그냥 웃으시며 괜찮다고 하시렵니까?

    댓글 쓴 것을 보니 그렇게 마음공부가 깊은 분도 아닌것 같은데...

    그리고 사진기 메고 절집을 살펴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진기 부셔버리겠다 험상궂은 얼굴로 고함치는 것은 모욕이 아니구요?

    어찌 언짢고 기분나빴다는 내 사사로운 글이 모욕이라 생각하시는지요?

    僧이라는 허울로는 어떤 말이건 함부로해도 되는 것이고 답사객들은 어떤 불쾌한 말도 당연히 들어 마땅한 것입니까?

    제가 땡중이라는 표현을 썼습니까? 스님같지도 않다라는 표현을 썼습니까? 나라안에서 가장 불쾌한 절집의 스님이라고 썼습니까?

    제가 나라안에서 가장 불친절하다 표현한 사찰의 주지스님께서도 대단히 미안하다시며 다시 한번 더 그곳을 다녀가시라셨는데.

    돈 내고 사찰입장한 사람에게 그런 대우는 아니지요.입장료받은 만큼의 대접은 해야지요.물론 문수사는 입장료를 받지는 않지만

    그래도 절집을 찾아 온 손님인데.

     

    그리고. 사랑하는 것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문수사를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찾아오셨더라면 그런일은 없었지 싶은데요! 선운사의 대안으로 문수사!ㅎㅎ 

    참 어이가 없는 일이네요.
    저의 답사동선에 없었던 문수사를 찾아 간 것은 아닙니다.

    처음 선운사를 찾으려했다가 여의치 않아 두 번째 답사처인 문수사를 찾았던 것입니다.

    대안이라는 말이 그렇게 불쾌한 것인가요?

    저 같이 먼 곳에서 시간경비들여 저인망식 답사를 하다보면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지요.

    스님말씀대로 제가 선운사의 대안으로가 아니라 처음부터 문수사를 찾아갔다면 그 맘을 문수사스님이 짐작하고 헤아려서 각 전각이나 부도전 등의 사진촬영을 느긋하게 허락했을까요?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입니다.

     

    게다가 부도전은 담으로 둘러쳐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월장하기가 일쑤이니

    사진기들고 오는 답사객들은 스님들에겐 요주의 인물, 이런 분들에게 오랫동안 사찰의 문화재를 도난 당한 기억도 있고.......!

    아하~! 이 글을 보고 알아차렸네요.

    사찰에선 사진기 들고 경내를 둘러보는 답사객들을 무조건 도둑취급한다는 절집사람들의 속내를.

    부도전을 친절하게 안내하며 설명해주시는 스님이 계신 사찰에서 부도전을 월담하던 답사객이 있던가요?

    그냥 살펴보고 사진 한장 찍는 것도 말리니 그런 겁니다.

    그리고 사진기 들고 오는 답사객에게 사찰의 문화재를 도난 당했다고 어찌 그렇게 확실히 단정지으십니까?

    세상만물의 이치와 내면의 성찰이 깊으신 스님들이 도둑과 답사객도  분별을 못하는지요.

    사찰의 문화재를 도둑맞았다면 그건 절집사람들의 관리감독 태만이지 참배객이나 답사객에게 그 책임을 전가할 일은 아니지요.

    이거야 말로 전국의 답사객들을 모욕하는 발언이 아닌지요?

    폐사지에 있던 유물들을 자기네 사찰로 빼돌리려했던 스님들은 어떻게 설명하시렵니까? 불교문화재이니 어느 사찰에 있던 상관없으시다시겠지요? 그렇다면 당당하게 관청의 허락을 받고 옮길 것이지 야반에 몰래 그 짓거리들을 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 납득할 수 없는데요?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는 불상을 야밤에 몰래 절집으로 옮기려 했다가 마을주민들에게 호되게 당한 절집의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던데 이런 사람들은 스님입니까? 도둑입니까?

    스님같은 생각을 가진 분들이 있기에 그저 절집을 찾아준 인연을 고마워하는 모든 절집사람들까지 욕을 먹는 겁니다.

    그 책임 당당하게 질 수 있는지요?

     

    나는 묻고 싶다.

    문화재청이나 지자체의 목록에도 없는 나라안 산천 곳곳의 비지정인채 방치된 불교 문화재를 찾아가 어지러운 그 주변을 정리하고 香이라도 사르며, 돌아와 관리관청에 그 문화재에 대한 각별한 관리를 부탁하며 문화재청이나 지자체에 각 고장의 문화재의 내력에 대한 오류를 수정해 달라고 거듭거듭 건의하며 안이한 관리들의 태도에 울분을 터트리는 사람들이 누군지 아느냐고.

    미처 알려지지않은,소개되지 못한 문화재에 대해 알리고 그 문화재가 합당하게 받아야 하는 대접에 대해 논의하는 사람들이 사찰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나 스님들 인줄 아느냐고.

    뜨르르하게 내밀 명함은 없어도 우리의 문화재를 사랑하고 아끼며 그 소중함을 널리 알리는 열성적이고 속깊은 답사객들을 이런식으로 모욕하면 안된단 말이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답사에 온갖 열정을 바치는지 모르겠다.

    까칠한 성미탓에 남이 싫다거나 남에게 폐가 되거나 하지말라는 짓 절대 안한다.

    한마디라도 남에게 언짢은 말 듣는 것이 싫다.

    그래서 하지 말라거나 금지하는 것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대놓고 모욕을 당하면서 왜 답사의 걸음 멈추지 못하는 것일까.

    도대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