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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여덟살 요끼 '땡이' 본문

☆~ 雜想/일상의 소소함

열 여덟살 요끼 '땡이'

푸른새벽* 2010. 10. 8. 11:12

우리집엔 귀한 강쥐 두마리가 있다.

네 살먹은 하얀 말티스 '누니'와 열 여덟살의 요크셔테리어 '땡이' . 두 마리 모두 수컷이다.

그 열 여덟살 할배 땡이때문에 요즘은 매일매일이 스트레스의 연속이며 답사의 발걸음도 묶여 있다.

 

18년 전 언니에게 받은 전화 한통으로 이렇게 짧지 않은 세월을  땡이와 인연 짓게 되었는데

전화내용인 즉,언니의 아랫동서네가 호주로 이민을 가는데 기르던 강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희 아이들은 강쥐 좋아하니 가서 데리고 오면 안되겠느냐고.

전화내용을 곁에서 들은 아이들은 당장 분당으로 가서 데리고 오자며 나를 매일매일 졸랐다.강쥐가 분당에 있다니까.

며칠동안  계속된 아이들 성화에 못 이겨 데리고 온 것이 18년 전.그 때 땡이는 8개월 된 아주 활발하고 건강한 강쥐였다.

 

요크셔테리어 치고는 좀 크고 길다 싶은 땡이는 우리 가족들과도 잘 어울렸으며 성격도 온순하고 식성도 까다롭지가 않았다.

우리집에서 지낸 그 세월동안 땡이는 별달리 병원신세를 진 일도 없으며 한번 걸리면 고생한다는 피부병도 앓은 적이 없다.

짖는 소리가 몹시 우렁차서 그렇지,가끔은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실례를 해서 그렇지 별달리 말썽을 피워 가족들을 번거롭게 하는 일은 없었고 훈련을 시킨것도 아닌데 자율급식을 했으니 얼마나 기특한가.그런 땡이가 나이가 들어 그런가 요즘 부쩍 병원을 찾는 일이 잦아졌다.

 

두 어달 전에는 한 번도 마다지 않던 사료를 거들떠보질 않는 것이다. 일체 사료에 입을 대지 않으니 급격하게 체중이 줄어들었고 

입에서 심한 냄새가 나기에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이빨이 상한 것이 한 둘이 아니란다.

그래서 상한 이빨 모두를 뽑았는데 그 숫자가 열개나 되었다.

아니~ 이빨을 열개나 뽑고도 괜찮을까하는 우려를 들은 의사선생님은 상관없다고 했다.

사료 먹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단다.하긴 지금까지 사료를 먹는데 별 불편함은 없어 보인다.

이빨 수술하느라 마취하고 또 치료하느라 며칠을 입원시켰더니 병원비가 거의 50만원이 들었다.그래도 어째~ 고쳐주어야지.

 

이빨로 인한 번잡함이 가시고 난 후 땡이는 사료도 잘 먹고 다시 잘 짖고 활발하게 '누니'와 어울려 온 집안을 휘젓고 돌아다녔다.

이젠 더 이상 별 탈이 없으려니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집안에서 악취가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입은 옷에 코를 대고 킁킁대며 잦은 비로 인하여 빨래가 쉽게 마르지 않아 옷에서 냄새가 난다고도 했고 또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나는 냄새같다고도 했다.

그건 아닌데.빨래가 쉽게 마르지 않아 그런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음식물 쓰레기는 더더욱 아니다.

빨래는 아무리 날씨 나빠도 선풍기 틀어가며 말리며 다림질까지 하는데, 그리고 매일매일 처리를 하는데 무슨 음식물쓰레기 냄새?

아무리 집안을 쓸고 닦고 각 방의 쓰레기통을 뒤지고 세척하며 집안 구석구석을 물로 씻어내다시피해도 그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이렇게 머리아플 만큼의 악취의 원인은 무엇인지를 찾느라 머리가 더 아픈 상태로 며칠을 지났는데...

 

냄새의 근원은 땡이였다.

땡이가 스윽 곁으로 오면 그 냄새가 얼마나 역한지 딸아이는 매번 화장실로 달려가니 이래선 사람이 못살 것 같았다.

또 병원에 데리고 갔다.

동물병원을 개업한 후 이렇게 나이많은 강쥐는 처음이라는 의사선생님도 선뜻 그 악취에 대한 원인은 찾지 못하는 듯 싶었다.

입안은 괜찮으니 구취는 아닌데 도대체 왜 그럴까요 하며 고개를 갸웃갸웃하시는 선생님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병원에선 그리 냄새가 심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은 한번 정밀하게 살펴보자는 선생님께 혹시 냄새주머니에 이상이 생겨 그런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그동안 냄새 주머니 열심히 짜 주셨어요?"

"아니요,냄새주머니는 아주 어릴 때 잠깐 짜 주었을 뿐 십여년 동안 한번도 짜 주질 않았어요"

"냄새 주머니 너무 열심히 짜 주어도 나이가 들면 냄새주머니가 헐거워져서 이럴 수도 있거든요.어디 봅시다"

선생님은 휴지를 대고 냄새주머니를 눌렀다.그리고 냄새주머니에서 나온 분비물을 보여주며 냄새를 맡아보라고 했다.

맞다.이 냄새.

코를 싸쥐게 하는 냄새.더운 여름날 비닐봉지 안에서 생선 열마리 쯤 썩은 냄새.

 

땡이는 냄새주머니가 너무 확장되어 수술을 해야했고 며칠동안 입원을 하였다.

이제 집으로 데려가도 괜찮다는 의사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수술은 잘 된 것  같은데 땡이의 양쪽 냄새주머니가 이상하게 한쪽은 괜찮은데 한쪽이 너무 크네요.그래서 변이 흐르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만 일단 수술하였으니 두고 봐야지요.집으로 데리고 가셔서 수술부위를 잘 소독해주고 약도 챙겨서 먹이면 괜찮아질 겁니다."

 

집으로 온 땡이에게 더 이상 역한 냄새는 없었다.그런데 변이 말썽이었다.

수술부위가 아물지 않아서 그런지 내내 변을 흘리고 다녔다.화장실 바닥을 변으로 칠갑을 해 놓는가 하면 거실의 쿠션이나 안방의 러그에까지.  땡이가 움직이는 동선 모두를 변으로 온통 싸 발라놓으니 이거 사람이 딱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그렇다고 아픈아이를 묶어 둘 수도 없고.

며칠동안 내내 땡이를 따라다니며 흘린 변을 치우고 그 자리를 소독하느라 내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 되었다.

아무래도 귀저귀를 채워야 할 것 같아서 병원으로 기저귀를 사러가서 선생님께 그 상황을 설명하였더니 선생님은 다시 데리고 오라고 했다.

정밀하게 살펴보고 상황이 심각하면 재수술을 해야하지 않겠냐고.

다시 그렇게 땡이는 병원신세를 져야했다.

 

닷새 후 선생님께 전화를 받고 동물병원으로 갔다.

재수술은 마쳤지만 수술부위보다는 역시 변이 문제라며 썩 밝은 표정이 아닌 선생님께 당분간은 집에서도 케이지에 가두어 놓는 것이 낫겠다는 말을 들었고 땡이와 사각형의 케이지도 함께 집으로 왔다.

지난 번에 이어 또 50만원 가까이 되는 수술비가 문제는 아니었다.

내내 집안에서 활발하게 돌아다니던 강쥐를 가두어 놓는다는게 영 맘이 편칠 않았다.

땡이 혼자면 괜찮은데 집안에서 이리저리 함께 엉켜 놀던 '누니'는 묶어 둔다거나 가두는 것이 아니니

한 마리는 밖에서 열심히 돌아다니는데 한 마리는 갇혀 있으니 더욱 힘들어할 것 같아서...

 

케이지에 감금(?)된 땡이는 수술부위를 자꾸 핥았다.

핥지 않아도  강쥐가 늙어 수술부위가 빨리 아물지 않을텐데 저렇게 열심히 핥으니 어쩔꼬~

핥지 못하게 엘리자베스칼라를 씌웠는데 야윈 몸이라 엘리자베스칼라가 소용이 없었다.

목에 걸려 있어야 할 엘리자베스칼라는 어느새 등쪽으로 넘어가 있으니 등을 꼬부리고 앉으면 꼬리밑을 핥기는 일도 아닌 것이다.

밤새 한 잠을  못 잤다.

케이지 안의 땡이가 수술부위를 핥을까봐 감시하느라고.

이러단 내가 큰 탈이 나고 말지~

 

퇴원 후 이틀이 지났는데 다행이 변은 문제가 없었다.

항시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땡이를 위하여 사료를 먹은 후엔 케이지를 잠시 열었고 땡이는 기다렸다는 듯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본다.

땡이의 상태가 걱정이 되었는지 동물병원 선생님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땡이는 어때요?"

"다행히 변도 괜찮고,잘 먹고 잠도 잘자고 짖기도 잘 하니 그건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데 수술부위를 자꾸 핥아서 어쩌지요?"

"그건 그리 신경쓰시지 않아도 됩니다.하루에 세번 쯤 소독만 열심히 해주세요"

 

아직 수술부위는 아물지 않았지만 땡이는 사료도 잘 먹고 변 때문에 속 썩이지도 않고 케이지에 갇힌 것도 그리 답답해하지는 않는다.

제발 수술부위가 얼른 아물어 꿰맨 실밥을 빨리 풀었으면 좋겠다.

 

열 여덟살 땡이.

나이들어 그런가 이젠 그리 윤기나던 털도 등쪽이 많이 빠진 것 같고 행동도 예전과 달리 민첩하지 못하고 무엇보다 많이 말라 참 안쓰럽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백살이 넘은 우리 땡이.

사람이나 동물이나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땡이가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어 늙었으니 언제 어느때 이별을 해야 할지 모르니 마음 준비는 항시 하고 있으라고.

 

땡이와 지낸 18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그동안 우리 집안에서 일어난 좋은 일,슬픈 일,어려운 일 다 지켜봤던 우리 땡이.

아무려나 제 수명 다 할때까지 아프지만 않으면 

목욕하지 않겠다고 이빨을 들어내도,큰 소리로 짖어도,시도때도 없이 누니를 올라타도,화장실 휴지 다 풀어 거실까지 끌고와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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