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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큰 일을 치렀다 1 본문

☆~ 雜想/일상의 소소함

큰 일을 치렀다 1

푸른새벽* 2011. 3. 6. 22:03

 

지난 달,2월 15일.

큰 딸내미가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어느 때부턴가 왼쪽 무릎이 퉁퉁붓고 열이 나더니 급기야 걷기가 불편해 질 정도가 되어 병원에 갔더니 무릎연골의 손상이 심하고 물이 찼으니 하루라도 빨리 입원을 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에 그날로 입원을 했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끝났지만 보름동안 입원은 해야 했기에 특별히 일을 가진 것도 아닌 나는 매일매일 병원으로 출근을 했었다.

다 큰 딸내미인데 뭐 그리 엄마가 꼭 붙어서 병수발을 하느냐는 소리도 들었지만 병원밥 먹기 싫다는 딸아이에게 식사를 날라다 주려면 어쩔 수 없었다.한끼라도 병원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하지 않으면 입원처리가 안된다는 병원측의 말에 아침 한끼는 환자식을 먹고 나머지 점심.저녁을 꼬박 집에서 밥을 해다 나르기를 일주일 쯤.

 

그날 아침도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아들아이 출근시키고 병원에 가지고 갈 도시락 챙겨놓고 대충 집안을 정리하고 욕실청소까지 마치고 욕실 문턱을 넘다가 그만 바닥에 떨어진 물기를 밟아 그대로 뒤로 넘어지며 욕실문턱에 꽝하고 뒷머리를 심하게 부딪혔다.

 

몇만볼트의 전류에 감전되었을 때의 순간이 그럴까.

아뜩해지며 정신을 잃었던 것 같은데 어느순간 나는 외치고 있었다.

'이러면 안돼.정신을 놓으면 안된다.천천히 생각해보자.집중을 해야해" 연신 되뇌이며 일어나려고 해보았지만 손.발이 움직여 지지 않았다.

그 상태로 얼마를 꼼짝없이 그렇게 누워 있었던것 같은데 차츰 손가락이,다리가 움직여 지는 것이 아닌가.

천천히 숨을 내쉬며 생각한 것이 아이들에게 빨리 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전화를 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는데 아무튼 병원의 딸내미에게 전화를 했던가보다.(단축번호가 참 유용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다급한 딸내미의 목소리와 119 어쩌고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정신을 차리자.정신을 놓으면 안된다고 계속 중얼거리며 일어나보니 넘어졌던 자리에 피가 한강을 이루고 있었다.

안돼,강쥐 두마리가 온통 칠갑을 해 놓을텐데 이건 닦아 놔야해. 그 정신에도 걸레를 찾아 피를 닦고나니 그제서야 머리가 쑤시고 울리는 것이 말도 못하게 통증이 심했다. 손바닥만한 혹이 돋아난 뒷머리엔 연신 피가 들러 한손으로 그 부위를 누르고 이제 뭘 해야 하나 생각을 해보니

딸아이가 119을 불렀으면 병원에 실려가서 당장 CT나 MRI 검사를 할텐데 속옷에 장식이 달렸으면 벗어라 어쩌라 하는 소리 듣기싫으니

장식이 없는 속옷으로 갈아입는데 또 다시 강쥐들이 걸렸다.119가 오면 묶이지 않은 이 넘들이 뛰쳐나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전화기와 손가방을 챙겨들고 현관문을 잘 잠근뒤 계단에서 그냥 쓰러지고 말았다.(후에 그렇더라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기억이 아주 희미하다.아니 어느순간부터는 아주 깜깜하다.

간간이 아들아이의 목소리가 들렸고 아들아이가 제 옷을 벗어 나를 감싸 안았고 작은 딸내미가 "엄마,그건 금방 물어본 말이예요" 하는 소리.

그 이상의 기억은 없다.

 

아침 아홉시 경 넘어졌는데 내 올바른 정신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이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의 일들.

119의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해서 각종 검사를 받았고 아들아이와 작은 딸내미가 달려왔다는데 '그랬구나'이지 기억엔 없다.

큰 일은 아니고 가벼운 뇌진탕이라 CT상으로 별다른 소견은 보이지 않으니 굳이 MRI검사까지는 필요없을 것 같다는 말에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는데 멀쩡한 것 같은데 자꾸 물어본 것을 반복해서 묻고 또 묻고 하니 다시 병원으로 갔었고 정말 별일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시간이 갈수록 상태가 심각해지니 저녁나절에 더 큰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았고...

뒤로 넘어진 사람들이 흔히 겪는 일시적인 기억상실증이니 내일아침이면 정말 괜찮아질거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아이들의 걱정과는 달리 비로소 내 정신을 되찾은 것 같다.

배가 고프다는 내 말에 그 밤에 아이들은 음식점을 찾아 들어갔고 나는 식사를 아주 흡족하게 했다.그 것은 또렷이 기억이 난다.

 

손등에 링거를  서너번이나 꽂았던 기억도,머리 찢어진 부위를 꿰매지 않고 스태이플러 같은 것으로 몇번을 찝은 것도,병원에 세 번이나 간 것도 기억에 없다.

 

"어머니께서 물어본 것 또 물어보고 금방 하셨던 말을 몇번이고 다시 하고 또 하는 것을 보고 있으려니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볼 땐 

자식들 시험하려고 그러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겠어요" 어제 둘째 사위가 된 녀석의 말이다~ㅎ

 

그리고 오늘까지 열 하루가 지났다.

지난 금요일에 찝어 놓았던 스태이플러를 뺐다.이제 맘 놓고 머리를 감아도 괜찮단다.

그러나 내 뒷머리엔 커다란 혹이 남아 있고 아직도 많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