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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답사는 情 1 본문

☆~ 여행과 인연/자연.사람.음식

답사는 情 1

푸른새벽* 2011. 5. 28. 21:25

# Episode 1

경북 청도군 풍각면 덕양리 1372번지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자그마한 탑, 청도덕양동삼층석탑(淸道德陽洞三層石塔)이 있다.

2박 3일동안 창녕.밀양.청도를 돌아 본 마지막 답사의 끝머리 청도 풍각면 봉기리에 있는 봉기동탑을 거쳐 찾았던 덕양리.큰 나무그늘아래 놓여진 몇 개의 의자들이 주민들의 쉼터노릇 단단히 하고 있을 듯한 곳에 덕양동탑이 아주 고요하게 자리하고 있었다.탑을 돌아보며 사진을 찍고 항시 그렇듯 또 급히 다음의 답사처인 각남면 옥산리의 대산사로 향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작은 마을 고샅을 몇 번이나 돌아도 각남면으로 나가는 길이 아리송했다.엎친데 덮친 격으로 좁은 마을길에서 마주오는 차량을 피해 후진을 하다가 그만 자동차의 한쪽 바퀴가 얕은 밭고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런  낭패가...

 

그 때 마주오던 차량의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다가와 상황을 살핀 후 아무 말도 없이 길 가의 집으로 뛰어 들어갔고 조금 후엔 그 집에서 후덕한 아주머니 한 분과 함께 고리가 달린 줄을 들고 나왔다.크게 깊이 빠진 것이 아니라 셋이서 영차영차 하니 자동차바퀴는 금방 길로 올라왔다.

 

나는 공손하게 그 두분에게 인사를 하고 또 했다.그리고 자동차에 올라 그곳을 떠나려는데 

 

"바쁘지 않으면 차라도 한잔 대접하고 싶으니 잠시 우리집에 들어갑시다~"

 

후덕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정말 간곡하게(?).사실 대산사를 끝으로 2박 3일의 답사를 마치고 귀가해야 하기에 마음이 바쁜데...그렇지만 순박하고 다정한 성의를 거절할 수가 없어 아주머니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아니~도시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네요.낯선사람이나 외지의 사람이면 경계부터 하는데 이렇게 집안에 까지..."

"자동차를 들어 올리면서보니 아지매 행동이나 인상이 을매나 좋은지 그냥 차 한잔이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아입니꺼"

"그래도 이렇게 자동차 들어올리는 것도 도와주시고...지금 감 수확으로 한창 바쁘실텐데"

후덕하고 인심 좋아보이는 아주머니는 따뜻한 차 한잔과 과일을 깎아 내 놓으면서

"사람이 어디 첨 부터 나쁜 사람이 있습니꺼.사람은 다 좋아예.그리고 우리집 앞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우째 모른척 할 수 있습니꺼"

아주머니와 나는 차를 마시며 아이들이야기와 사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맘이 바쁜 나는 이제 일어서야겠노라했더니

 

"도시에는 이것저것 푸성귀는 모두다 돈 주고 사야 한다아입니꺼.우리집에는 푸성귀가 쌔고 쌨으니 좀 가져가이소.

그리고 오토바이 타고 쪼매만 가믄 우리 과수원이 있으이께 거기서 감도 좀 따드릴께예.

아~참 ! 집에 모아놓은 홍시도 많으니 그것도 가져가이소"

 

자동차를 그 아주머니네 집 마당에 세워놓고 나는 아주머니가 운전하는 오토바이의 뒷좌석에 매달려 과수원으로 갔었다.

아주머니는 익어서 막 떨어질 듯한 홍시를 따서 한바구니 담고 배추며 쑥갓이며 각종 채소를 또 비닐포대에 한가득 담아 주었다.그러고는 감이 주렁주렁 열린 실한 감나무가지를 두개나 뚝 부러트려 꺽어 내 자동차 뒷좌석에 실어 주었다.

"이래 감이 달린 가지는 거실에 걸어두면 한동안은 가을 기분이 날겁니더"

감이며 채소며 내 자동차 트렁크가 어찌 그리 비좁던지.

 

떠나오면서 어렵사리 그 집 전화번호는 메모해왔다.집에 돌아와 이런 후의를 어떻게 갚아야 하나...곰곰 생각끝에 무언가 농촌에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준비해 보내야겠단 생각을 했는데 전화번호만 알았지 그 집 주소를 모르니 어쩌나 하다가 전화통화를 하였다.간단한 안부를 물은 후 주소를 알려주십사했더니 극구 사양을 하며

"그런말 하려면 다시는 전화하지 말라"며 전화를 끊었다.

이런 낭패가...

 

난 아직도 청도 풍각면 덕양동의 그 아주머니께 받은 후의를 갚지 못하고 있다.답사는 情이라는데.

 

 

# Episode 2

전북 임실군 삼계면 학정리. 임실 학정리석불(鶴亭里石佛)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거라는 정보였기에 마음 단단히 먹었는데

의외로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학정리석불이 위치하고 있다는 주소를 네비에 입력하면 그야말로 찾는데 애를 먹는다.정확한 주소가 아니기 때문이다.그런데 임실 성문사를 검색하면 아주 쉽다.난 임실 성문사를 검색해 찾아갔기에 쉬웠던 것이다.

도착한 시간은 점심 때였다.석불이 모셔진 성문사라는 절집은 겨우 법당 한채만 있는 단촐한 절집이었다.학정리석불은 밭 한가운데 묻혀 있다는 정보와는 달리 성문사라는 절집의 법당에 잘 모셔져 있었다.

 

근처에 자동차를 세우고 법당으로 향하는데 컨테이너 박스 건물쪽에서 보살님 한분이 뛰어 나오더니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순간 긴장했다.대부분 이런경우엔 법당에선 사진촬영이 안된다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석불을 찾아 경기도에서 왔노라했더니 부처님 만나뵙고 아래로 내려와 차나 한잔 하고 가시라며 활짝 웃었다.근래에 새로 법당을 세운 듯 달랑 법당 하나와 화장실 뿐 그 무엇도 없는 절집에는 컨테이너를 두개 붙여 만든 살림집 비슷한 건물이 있었다.

 

조심스레 법당안으로 들어가 마음껏 석불을 살펴보고 느긋하게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오니 들어올 때는 안계시던 스님이 컨테이너 박스 건물 앞에서 손짓을 했다.새로 세운 절집이라 허드렛일이 많은가보다.스님의 차림도 노동자에 다름아니었다.썩 내키진 않지만  다가가서 스님께 예를 표하니

 

"먼 곳에서 오셨는데 변변치는 않지만 점심공양이나 함께 하시지요~"

 

"그러세요.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아직 집을 짓는 중이라 모든 것이 부족하고 경황이 없지만 점심공양이야 함께 할 수 있지요"

서글서글 사람 좋아보이는 보살이 옆에서 거든다.방 하나 부엌하나 로 양분된 컨네이너 박스는 밖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아늑했다.

 

"여기 신도들이 어디서 구했는지 싸래기를 많이 가져 왔기에 점심은 싸래기죽을 끓였어요.괜찮으실지 모르겠네요"

한끼 공양에 싸래기죽이면 어떻고 시래기죽이면 어떠랴.괜찮다고 상관없다고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그런데 요즘에도 싸래기가 있나? 귀한 것일세~

 

점심상은 스님과의 겸상이었다.흰 싸래기죽과 맑은 무국과 나물 몇 가지가 모두인 상차림이 과히 절집의 밥상이구나 싶었다.그런데 몹시 불편했다.스님과 겸상을 하다니.뭉글뭉굴한 식감의 싸래기죽이 입안에서 뱅뱅돌아 익숙한 맛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색한 숟가락질을 하고 있으려니 서글서글한 보살이 양념장과 함께 먹으면 맛이 괜찮을 거라며 다진 청양고추와 양파가 듬뿍 든 양념장을 옆에 놔 주었다.나는 여지껏 그렇게 맛난 양념장은 먹어 본 적이 없다.그 어색한 맛의 싸래기죽 한 양푼을 말끔히 비웠으니.집에 돌아와서 흉내를 내 보았지만 그 맛은 아니었다.

 

"아직은 여러가지가 모두 부족해서 커피잔도 이렇게 제각각 이네요.다음번에 꼭 한번 더 오세요.

그 때는 절마당도 이쁘게 정리가 끝날 것이고 이 컨테이너박스도 치우고 정원을 꾸밀 것이니까 꼭 한번 다시 오세요"

점심공양후 커피를 마시면서 서글서글한 보살님은 꼭 한번 더 다녀가라 당부말을 했다.

 

싸래기 점심공양을 마친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젠 그만 돌아가야겠노라 일어서려는데 잠깐 기다리라며

스님이 무언가 내 손에 쥐어 주셨다.만원짜리 지페 두장.

 

"답사다닌다니까 다니면서 음료수라도 사 먹으라고 주는 용돈~"

 

나는 다시 임실에 갈 계획이 아직은 없다.그런데 또 빚을 졌으니 어떻게 갚아야 할지 그것이 걱정이다.

 

 

# Episode 3

2008년 8월 중순 쯤

경북 상주.그 때가 상주로의 답사는 첫 걸음이었다.상주의 하 많은 답사처 중 으뜸은 당연히 복룡동당간지주였고 상주로 들어서서 가장 먼저 찾아보았던 옛님도 복룡동당간지주였다.자동찻길에서 빤히 보이는 당간지주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굳이 누구에게 물어보지 않아도.그 다음의 답사처 몇 곳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 갈 수 있었는데 상주석각천인상이 문제였다.내가 가진 답사자료에는 분명 상주 남산의 공원 어디엔가 있다고 했는데.여름의 한 가운데 자동차는 공원 저~~아래에 놓고 한참을 걸어 올라갔는데 아무리 찾고 찾아도 석각천인상의 석각도 없고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은 고사하고 물어보는 말에 대답조차 듣기 어려울 만큼 상주라는 고장의 사람들은 낯선 사람에게는 무조건 무심하다 못해 불친절하기까지했다.토요일이라 담당자가 없다는 시청에서 석각천인상은 상주박물관으로 옮겨졌다는 이야길 듣고서야 남산을 내려왔다.

 

그리고 상주박물관에서 석각천인상을 만났었다.구시렁구시렁 상주의 옛님을 찾아다니며 연실 나는 구시렁거렸었다.무지하게 불친절한 고장.문화재표시판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애써 찾아야 겨우 눈에 띄는 고장.삼백의 고장이니 禮의 고장이니 문화의 고장이니 하는 말들을 실컷 비웃으며 상주라는 고장은 두 번 발걸음 하기 싫은 곳이라 단정 짓고 상주 답사의 끝머리로 찾아 갔던 상주증촌리석불입상(尙州曾村里石佛立像).

 

증촌리석불입상은 함창읍 증촌리의 작은 절집에 모셔져 있었다.석불이 모셔진 작은 절집 용화사는 증촌리 작은 마을 고샅을 지나 안쪽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절집입구 크지 않은 연못엔 연실을 매단 蓮이 지천이었다.

 

군데군데 철 늦게 핀 연꽃을 사진기에 담으려고 이리저리 연못주변을 살피는데 지나가던 아주머니께서 걸음을 멈추고 말을 시켰다.

"어디서 오셨습니꺼? 연못이 좋지예~여기 연못은 저 안쪽에 있는 용화사 껍니더"

"네~ 감사합니다~"

 

연못의 풍경을 실컷 사진기에 담고 난 후 용화사에 들어섰는데 절마당 한쪽에서 서너명의 아주머니들이 평상에서 무언가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길래 우선 인사부터 했다.

 

"아이구~ 인제 오시능교? 아까부터 기다렸는데.우선 이리로 와서 좀 앉으이소~" 아주머니 한 분이 자리를 비켜 앉으며 나를 앉으라고 했는데 그 아주머니는 용화사에 도착해서 연못부터 살피던 나에게 말을 걸었던 아주머니였다.

"어디서 오셨능교?"

"네~ 경기도 하남에서 왔습니다."

"아이고 멀리서 왔네요.무신일로 여까지 왔십니꺼? 용화사를 알고 오셨어예?"

이리저리해서 답사를 다니는 중이며 오늘은 상주답사라서 상주를 돌아보았고 상주의 마지막 답사처로 찾은 곳이 용화사며

용화사에 모셔진 부처님을 만나뵈려 왔다고 설명을 했다.

"부처님 뵈러 오셨다니까 우선 부처님께 인사부터하고 오이소"

"저~ 사진을 좀 찍고 싶은데 괜찮을런지요?"

"그래하이소.괘안십니더"

 

조심스레 법당안으로 들어가 예를 갖추고 증촌리석불을 요리조리 살피고 사진찍고...법당을 나와 다시 평상으로 가니 아주머니들은 예의 그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그 작업이란 것이 연못에서 따낸 연밥에서 연실을 털어내는 것이었다.

"이 연실은 어디에 쓰나요?"

"아~이 연실은 이렇게 새파랄 때는 그냥 까 먹어도 되고 바짝 말려서 두었다가 차로 끓여서 마시면 좋습니더"

"아~ 그렇군요.저는 이렇게 가까이서 연실을 본 적이 없고 이렇게 만져보기도 처음이네요"

내가 절마당으로 들어서 평상에 앉을 때까지 묵묵히 연실터는 일만 하시던 한 아주머니께서 연밥을 수북히 챙기더니 나에게 밀어주었다.

"이거 가지고 가이소.지금 까먹으면 땅콩처럼 고소할낍니더."

"네~ 고맙습니다.그런데  이렇게나 많이..."

"이래 만나는 것도 인연이 닿으니 그런것 아입니까.우리 절에 오셨는데 빈손으로 가시면 안되지요.이거라도 드릴 것이 있어 좋네예"

그러더니 일어서 주방쪽으로 가서 큰 주전자를 들고 나왔다.

"이거 한잔 마셔보이소.연밥을 말렸다가 차로 끓였는데 맛이 괜찮습니다.갈증도 가시고요."

하얀찻잔에 담긴 연밥차는 와인빛과 같은 붉은 색이었다.연밥차 한 모금을 넘기며 나는 상주의 불친절을 잊었다.

 

"언제든 상주에 오시거든 꼭 들리시소.인연이 닿았으니 보살님이 용화사까지 발걸음하셨겠지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