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군산 설림산 은적사(群山 雪琳山 隱寂寺).전북 군산 본문

☆~ 절집.절터/전 북

군산 설림산 은적사(群山 雪琳山 隱寂寺).전북 군산

푸른새벽* 2014. 1. 23. 23:40

 






 

 






 






 






 






 






 






 






 











 

 






 






 











 

 






 






 











 

 






 






 






 






 






 

군산 설림산 은적사(群山 雪琳山 隱寂寺)


전북 군산시 소룡동 1332번지


은적사(隱寂寺)는 설림산(雪琳山) 서쪽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절은 613년에 원광국사(圓光國師)에 의하여 창건된 것으로 전해 온다. 그러나 613년은 백제 무왕 4년에 해당하는 시기로서 당시 이 지역이 백제의 영역이었고 백제와 신라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던 사정을 감안한다면 이곳 백제의 지역에 신라의 원광국사가 사찰을 세웠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또한 이 지역에서 수습되는 유물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없어 613년 원광국사의 창건설은 현재로서는 믿기 어렵다.


은적사와 관련하여 현재 전해지고 있는 또 하나의 창건설화는 백제 말기 이전에 창건되었다는 것이다. 신라가 당과 연합하여 백제를 침략하였을 때 중국 당나라의 소정방이 백제를 치기 위하여 이 설림산 인근의 천방산(千房山) 아래에 상륙했는데 이곳에 이미 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 내용에 의하면 정확한 창건년대는 알 수 없으나 백제 말 신라가 침입하기 이전에 이미 이 곳에 절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창건 이후의 사적을 살펴보면 고려시대인 952년(광종 3)에 정진국사(靜眞國師)가 중건했고, 1373년(공민왕 22)에 고려 말의 고승 나옹(懶翁) 스님이 2차로 중수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1781년(정조 5)에 보경(寶鏡)선사에 의해 중수되었으며, 1937년에 허옹(虛翁)선사가 4차로 중수하는 등 전부 네 차례에 걸쳐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이것은 구전되어 오는 내용으로서 정확한 연혁을 확인할 수는 없다.


한편 작성된 연대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조선사찰사료』 하권 「전라북도」편에 <은적사중수시주기>가 있어 절의 연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중수기는 1856년(철종 7)에 쓰여진 것으로서 현재 전하는 절에 관한 기록 가운데는 가장 오랜 기록이다. 이 중수기를 통해 적어도 1856년 무렵에는 은적사가 법등을 이어오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 중수기에서조차 1856년 중수 이전의 연혁에 대해서는 다만, “백년고찰로서 오랫동안 중수하지 않아서 거처하는 승려들이 안타까워했다.”고만 전할 뿐 자세한 연혁을 알 수 있을만한 어떠한 단서도 나와 있지 않다. 따라서 철종 이전의 사찰 연혁은 다만 구전으로 전해오는 것으로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며, 철종 이후의 것에 관해서만 대략적인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은적사와 관련된 대부분 자료에서는 구전에 따라서 조선 정조 5년에 보경선사에 의하여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조사 기록되어 있는데, <은적사중수시주기>의 내용을 참조해 보면 정조 5년의 보경선사는 아마도 철종년간에 활동했던 보경(寶鏡)선사를 오인하여 구전된 것이 아닌가 한다. 정조 5년에 은적사를 3차 중수했다고 하는 보경선사는 장흥 보림사(寶林寺)의 고승으로서 1790년(정조 14)에 정조의 명을 받아 팔도도화주가 되어 경기도 화성의 갈양사터에 용주사(龍珠寺)를 세운 바 있는 보경 사일(寶鏡獅馹) 스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856년에 쓰여진 이 중수기를 살펴보면 1856년에 ‘보경상인(寶鏡上人)’이 재물을 모아 전각을 올리고 옥구현감으로 재임하던 황종현(黃鍾顯)에게 중수시주기를 부탁하였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이 해에 은적사가 보경상인에 의하여 또 한차례 중수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수기에 보이는 보경상인은 범해 각안(梵海覺岸)의 『동사열전(東師列傳)』에 의하면 완주군 고산면 불명산 화암사(華巖寺)로 출가하여 공주 마곡사에 주석한 바 있는 용담 출신의 보경 혜경(寶鏡慧璟) 스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구전되는 3차 중수는 정조 5년에 보경선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철종 7년에 전혀 다른 인물인 보경선사에 의하여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지 않을까 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근래의 대대적 중창이 이루어지면서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과 오층석탑을 제외한 대웅전·극락전·명부전·조사전 등 기존의 건물들이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새로 지어져서 옛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또한 이 절의 문화재 가운데 유일하게 지방유형문화재로 지정 보호되었던 산신각이 1991년에 방화로 인하여 전소되므로써 옛 정취를 찾아보기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대한불교진흥원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