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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떠나다

울산.울주 돌아보기 (2016.1.16) 본문

답사.여행 후기

울산.울주 돌아보기 (2016.1.16)

푸른새벽* 2016. 2. 9. 14:21

Road Kill !

비록 그 새벽녘 내가 운전을 하지 않았어도 운전 경력 삼십년 만에,또 탑승객으로서도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겨울 새벽 4시.새해 첫 답사처인 울산으로 향하는 길.집에서 출발 해 약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중부내륙고속도로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운전석쪽으로 무언가 둔탁하지만 묵직한 힘이 실려 부딪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자동차는 심하게 흔들렸다.자동차와 자동차의 접촉이라면 자동차가 심하게 흔들리고 마는것이 아니라 그냥 바로 큰 교통사고인데...

 

뭐지?

이런 경우가 말로만 들었던 로드킬? 그렇다면 먹이를 구하러 다니던 야생동물인가?동물이라면 달리는 자동차에 그렇게 부딪혔으니 그 다음은 안봐도 불을 보듯 뻔한것.사람으로서는 천만다행히도 운전을 하는 분의 노련함과 침착함으로 놀라고 찝찝했던 그 상황은 벗어 날 수 있었지만 마음이 무거웠다.겨울,먹을것 찾으러 나왔던 어떤 가엾은 생명이 이렇게 또...

 

답사를 떠난다는 설렘으로 꼬박 밤을 새운 나는 뒷자석에서 잠시라도 눈을 붙이려했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로드킬도 그렇고 자동차 꽁무니를 계속 흔들리게했던 도로위 블랙아이스도 그렇고.겨울 새벽녘의 고속도로는 위험 투성이다.

 

2016년 1월 16일.오전 8시 40분.답사카페 회원들과 만나기로 한 울산 반구대박물관 주차장에 도착해 자동차를 살펴보니 운전석쪽 팬더가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다.만약에 내가 운전했었더라면?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이었다.

 

반구대박물관 주차장에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에게 그 사건(?)을 이야기했더니 자동차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이라 그런 경험들이 꽤 있다고 입을 모았다.

 

 

 

 

 2016년 들어 첫 번째 단체답사의 첫번 째 답사처.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저곳에서 과연 암각화를 자세히 살펴 볼 수나 있을지.

 

 

 

 

 

 

 반구대암각화를 만나러 가는길 저 멀리 하나의 비각이 보였는데 암각화보다 우선 저 비각을 먼저 살피자는 의견들이 많았다.

 

 

 

 

 

 

 반구대암각화가 새겨진 곳 위쪽 낮은 언덕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반고서원유허비(槃皐書院遺墟碑).

 

이 비는 고려 말 충신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를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며 근처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문을 닫은 반고서원이 있는데 그곳에 만들어 세운것을 최근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한다.

 

보호각이 협소하고 문살이 너무 촘촘해 비석을 자세히 사진기에 담지 못한것이 아쉽다.

 

 

 

 

 

 

지금 유허비가 있는 위치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주석했다던 반고사槃皐寺의 자리라고 전해지는데 반고대 근동에는 심심찮게 사찰의 유구들이 발견되고 있으니 이곳이 반고사터라는데 힘이 실리고 있다.

 

 

 

 

 

 

유허비가 있는 곳에서 개천 너머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한 반고서원(盤皐書院).

1712년 유림들이 정몽주(鄭夢周)·이언적(李彦迪)·정구(鄭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곳이라는데 발길멈춰 살펴보지는 못했고 그저 사진기로 최대한 당겨서 찍어 보았다.

 

 

 

 

 

 

이제 발걸음마다 자륵자륵 소리나는 이 길의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 반고대암각화를 살펴보려 한다.

 

 

 

 

 

 

암각화가 새겨진 부분이 어디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바짝 다가가 세세히 살피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지만 겨울 갈수기라해도 개천을 건너가는건 내겐 무리다 싶었다.그러잖아도 평형감각 형편없이 무뎌져있는데 혹시라도 건너다 발이라도 빠지면 그 다음의 상황은 주변에 민폐를 끼치게 될 것이 분명하기에.

 

그런저런 핑계거리 찾은 나와는 달리 아무렇지 않은 듯 건너간 사람도 두엇 있기는 있었지만 일행 중 한사람은 개천물 얕은 부분을 폴짝 뛰어 건너려다가 발을 헛디뎌 놀라 뛰어 나오는 바람에  주머니의 휴대전화가 물에 빠져 난감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반구대에는 이렇게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선명하게 새겨진 글자가 수두룩 빽빽한데 암각화만 찾기도 알아보기도 힘들다.

 

 

 

 

 

 

암각화는 찾지 못하고 눈에 띄는 마애비만 여럿 살펴보는걸로 반구대암각화 답사를 마친게 영 아쉽고 허전했다.

 

 

 

 

 

 

내가 준비한 울산답사 자료에도 일반인들은 암각화를 살펴보기가 쉽지 않으니 암각화의 사진이나 모형물을 참고하라해서

암각화를 본 떠 만든 모형을 자세히 들여다보는걸로 아쉬움 가득한 암각화답사를 마쳐야 했다.

 

 

 

 

 

 

반구대암각화에서 멀지 않은곳, 천전리각석을 찾아 가는길.

이곳에 여러번 답사를 왔었다는 일행은 천전리각석을 보기 전 공룡발자국화석을 잠시 살펴보자 해서 찾았던 곳.

 

 

 

 

 

 

아무런 정보없이 이곳을 찾았다면 전혀 특별하게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약 1억 년 전 백악기시대에 살았던 대형 초식공룡인 울트라사우루스를 비롯하여 중형 초식공룡들의 발자국화석 2백여 개가 확인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열 서너개 밖에는 확인하지 못한 내 시선과 생각으로는 공룡의 발자국이라는게 전~혀 믿어지지도 실감나지도 않았다.

 

공룡이 걸어간 발자국이라고 관련학계나 관련기관에서 그렇다하니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는데 일정하게 걸어간 흔적이 아니라 여기저기 혼란스러이 찍혀진(?)발자국은 다른 대륙의 공룡 유적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특징이라니 그 역사적.고고학적 가치가 사뭇 높을것 같기는 하다.

 

 

 

 

 

 

천전리공룡발자국화석이 있는 곳에서 개천너머로 시선을 돌려보면 거기 보호철책안에 천전리각석이 있다.

 

겨울이 아니라면,이렇게 하늘 낮게 가라앉은 날이 아니라면 풍광은 참 좋을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본 천전리각석은 우선 박락이 심하다는 느낌이 든다.

자료에 의하면 천전리 암각화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시간은 계절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보통 오전 10시에서 11시 무렵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가 되기 전이니 그런대로 암각화는 잘 살펴볼 수 있었다.

 

동심원이나 마름모꼴 또는 물결무늬로 새겨진 그림곁에는 사각의 테두리안에 그려진 그림과 글씨도 수두룩하다. '학계의 지배적인 의견으로는 그림무늬는 연대를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힘들지만,대체로 후기 구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쳐 그려졌고 사각의 테두리를 두른 명문은 '천전리 서석 원명(原銘)과 추명(追銘)'으로 불리는 글씨이다. 원명이니 추명이니 하는 것은 두 글을 쓴 주체가 같고,또한 같은 일을 시차를 두고 회상하여 기록한 글이란 뜻이다.

 

원명은 법흥왕 12년(525)에 사탁부(沙啄部)의 갈문왕이 이곳에 행차하여 그 기념으로 새긴 글이고,추명은 14년 뒤인 법흥왕 26년(539)에 다시 이곳을 찾아와 과거에 다녀간 일을 기록한 것으로,지금까지 발견된 신라비 가운데 오래된 것으로 꼽힌다.'(답사여행의 길잡이'중)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국보로 지정되기 바로 전까지 이곳은 마을의 화장터였다고 한다.바로 전에 주마간산격으로 살펴본 반구대암각화나 이 천전리각석도 안내하고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면 이 소중한 유산의 가치를 느끼기는 쉽지 않을것 같다.

 

 

 

 

 

 

천전리각석을 바라보는 위치에서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조금만 가면 이렇게 새로운 발굴을 위해 정리해 놓은 곳도 있다.

이곳에선 앞으로 또 어떤 놀랄만한 유적이 발견될까...

 

 

 

 

 

 

강이 우는 소리.아니, 겨울강이 우는 소리.

 

그렇게 강도 운다는 것을 어느책에선가 읽은 기억은 있지만 정말 내가 언강물이 우는 소리를 들을지는 몰랐었다.도저히 글로는 표현 못 할 강울음은 짧은 순간 내 가슴에 시퍼런 울림으로 다가와 꽂혔다.

아 ! 그건 분명 오늘 새벽 로드킬 당한 어느 생명체의 비명.그것이었다.

 

 

 

 

 

 

소복히 매화가 피어 있었다.

약속도 하지 않았는데 아직은 아닌데...

 

 

 

 

 

 

 

1월 16일 오전 11시 48분.울산답사의 다섯번 째 답사처인 울주군 두서면 목련암.

도로에서 절집으로 드는 경계는 없었지만 척 봐도 부자절집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목련암이라길래 수더분하고 넉넉한 스님 한분 계시는 아담한 여염집 같은 암자인 줄 알았던 내 선입견이 부끄러워진다.도대체 이런 근거없는 선입견은 어떤 연유로부터 시작되었단 말인가.

 

 

 

 

 

 

목련암엔 목불좌상이 있다해서 찾아왔다.

잘 차려진 법당의 주존불 주변을 살펴보는 나와는 달리 답사객 일행이 우르르 한 구석으로 몰려가는걸 보니 이미 이곳을 미리 답사했던 사람들도 꽤 있나보다.

 

나처럼 첫걸음인 답사객은 문화재로 지정된 목불좌상이 법당 구석진 곳 한켠에 자리하고 있을거라고는 단번에 알 수는 없을테니까.

 

 

 

 

 

 

사진에서는 불상이 제법 커 보이지만 실상은 높이가 41cm밖에 안되는 매우 작은 불상이다.

유리관 안에 모셔져 법당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목련암목불좌상은 재질이 연하고 결이 고와 가공하기 쉬운 피나무로 만든 것이라 하는데 지금은 개금을 과하게 하여 목불인지 석불인지 청동불인지 정보가 없으면 알 수 가 없을 정도이다. 화려한 보개를 쓴 목불이라 조금 특별해 보인다.

 

그냥 목불인걸 금방 알 수 있도록 제 모습 그대로 두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지만 보존의 문제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었을거라고 순하게 이해했다.

 

목불이라서 특별하기도 하지만 문화재로 지정된 가장 큰 이유는 이 불상의 복장유물 때문이 아닌가 싶은 이 목련암 목불좌상은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22호로 지정돼 있다.

 

 

 

 

 

 

낮 12시 조금 넘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찾아 갔던 식당 앞에서 전혀 생각않았던 언양읍성이라는 보너스.

울산답사를 위해 자료를 챙겼어도 언양읍성에 대해선 크게 관심두지 않았던 것은 단체답사 동선에도 없었을 뿐더러

성곽이라면 거의 산중턱에 있다는 턱도없는 내 선입견 때문이었다.

 

근데 이렇게 자동차 도로변에 일부분만 남은 성곽의 흔적이 사적 제153호라니.그렇다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

 

언양은 옛날부터 경주·울산·밀양·양산과의 교통 중심지였다고 하니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을 여러모로 보호하기 위해 이런 읍성을 쌓을 필요는 있었으리라.

 

 

 

 

 

 

얼마 남지 않은 읍성 성벽의 한가운데 툭 튀어나온 부분은 수원화성에서 보았던 성곽의 '치(雉)'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벽에서 ‘치’란 구조는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일직선 성벽에서 톱니바퀴의 돌출된 치(雉)처럼 'ㄷ‘자 모양으로 성벽이 나와있는 구조를 말한다. 성벽에 치나 치성 구조가 있으면 성을 방어하는 성벽 위 군사들이 성벽을 기어 오르는 적군을 활과 창이나 돌을 던저 적을 격퇴하기가 용이한 시설물이다.

 

언양읍성은 전국의 중요 읍성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던 14∼15세기의 축조방법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나타나는 축성법 변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지만 현재 남은 성벽이 너무 옹색해 아쉽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 볼 수 없는 현 상황이 더 아쉬웠다.

 

 

 

 

 

좀 짜다 싶을 정도인 경상도식 추어탕으로 점심을 먹은 후 찾아 간 곳은 가지산 석남사.석남사에 대해선 따로이 <석남사 돌아보기>로 포스팅 하려하니 이곳에선 생략.

 

 

 

 

 

 

울주군 언양읍 송대리 398

울주 화장사석불좌상(花藏寺 石佛坐像)은 여염집처럼 작은 규모로 새로 지어진 절집 법당에 모셔져 있었다.앞서 2014년에 이곳을 먼저 답사했던 사람들의 사진을 보니 그 때까지만해도 이 석불은 하얗게 호분을 바르고 있던데 현재는 석불인지 뭔지 전혀 모를 정도로 눈부시게 개금되어 있으니 언뜻 근래에 만들어 모신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크기는 앞서 만나고 온 목련암 목불보다 더 작으며 귀가 큰 항마촉지인의 석가여래인데 비지정 문화재이다.

 

 

 

 

 

 

조촐한 절집 화장사 마당 가장자리엔 출처와 내력을 알 수 없는 옥개석 셋 만 남은 석탑부재를 석탑의 모양을 갖춰 얹어 놓은 탑(?)이 있는데 이 탑도 2년 전까지는 절 마당 한가운데 있었다는데 어떤 연유로 이렇게 절마당 한귀퉁이로 옮겨 졌는지...상부탑신의 괴임이나 낙수면의 물매등 여러 면으로 보아 고려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곳이 제 있던 자리는 아닐텐데 어디서 왔을까...

가지런히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탑 옆에 서 있는 동자석.

 

 

 

 

 

 

언양읍에서 화장사석불과 탑재와 동자석을 만나고 다음으로 찾아 간 곳은 간월사지였는데 간월사지에 대해서도 역시 <간월사지 돌아보기>로 따로 포스팅 하려한다.

 

 

 

 

 

 

 

2016년 1월 16일 울산답사의 마지막 답사처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30분 경.울주군 삼남면 신화리 석보암.

 

대문 없이 낮은 블록담의 여염집 같은 암자에는 지키는 스님도 보살도 보이지 않아 마치 폐가 같았다.먼저 답사를 한 사람의 안내나 눈 밝은 길잡이가 없으면 감히 찾아 올 엄두도 내지 못할 곳.

 

전하는 바에 따르면 도굴꾼이 석불을 옮겨 가려는데 아무리 옮기려고 해도 석불은 제자리에 붙은 듯 꼼짝않아 포기하고 돌아갔다는 이 석불은 심하게 마멸되고 훼손되어 정확히 살피기는 어렵지만 부분부분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후의 불상으로 추정한단다.

 

어떻게 불상의 가운데가 저렇게 두부모 자르듯 깨끗하게(?) 잘라질 수 있을까에 대해 원래 그런 돌을 가져다 조합해서 만들었을 거라는 의견과 어느 때 몹쓸 일들이 벌어져 이런 지경이 되었을거라는 의견이 엇갈려 한동안 분분하게 토론했지만 모두의 결론은 "요상하네~"였다.

 

 

 

 

 

 

 

울산답사 첫째 날의 답사는 석보암 석불을 만나는 것으로 마감했다.

 

숙소는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의 용도가 무언지는 아리송한 새로 지은 네모 반듯한 건물과 3채의 초가집이었다.네모난 건물은 이번 답사에 참가한 스무명 이상의 남성들의 잠자리였고 초가집 세 채가 열명 정도 되는 우리 여성들 몫으로 배정되었다.초가집이라고해도 오래된 것이 아니라 초가집을 본 떠 새로 지은 것이었는데 하룻밤 지내고보니 불편한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식사는 숙소의 바로옆에 있는 식당이었는데 내가 생각하기엔 네모난 건물과 초가집관리도 겸하고 있는것으로 보였다.

 

식당에서 간이 조금 센 저녁식사를 마친 후 자리를 네모난 건물로 옮겨 꽤 오랜 시간 담소를 했는데 이번 울산답사의 백미라고해도 전혀 과하지 않은 한 회원의 비장한 노래 때문에 배근육이 경련을 일으켜 애를 먹었다는 이도 있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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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17일.

울산답사 이틀째는 뜨끈한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오전 9시 망해사지를 시작으로 청송사지 →운흥사지 →어물동마애여래좌상으로 마감했기에 망해사지나 청송사지,운흥사지에 대해선 생략한다.(따로이 포스팅 할거라서)

 

 

 

 

 

 

망해사지,청송사지,운흥사지를 돌아보고 점심 식사 후 다시 어물동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 30분.주차장에서 올려다 보이는 계단이 까마득하다.

 

주차장에 도착해 자동차 문을 열고 내리는데 갑자기 작년 딱 이맘 때 다쳐 한달동안 고생했던 왼쪽 발목이 삐끗하며 통증이 전해졌다.

아...왜 이러지?

평지를 살살 걷는것까지는 할 수 있겠는데 이렇게 가파른 계단은 도저히 못 올라갈 것 같았다.더우기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는 안된다.이럴땐 포기가 상책이다.아쉽지만.

 

그런 나를 보고 일행 중 한사람이 "카메라 주이소.제가 가서 찍어다 드릴께예" 나는 고맙다며 얼른 사진기를 벗어 그에게 주었다.

 

 

 

 

 

 

시도유형문화재 제6호(북구)로 지정된 울주 어물동마애여래좌상(蔚山 於勿洞磨崖如來坐像).

 

거대한 바위에 일광(日光)·월광(月光)보살을 협시로 하는 약사삼존불을 높게 돋을새김이 되었는데 일광.월광 협시보살은 이마에 해와 달이 새겨져 있어 쉽게 알수 있을것 같다.마애불이 새겨진 바위 뒷면에는 서까래 같은 것을 걸쳤던 자리가 있어 석굴사원 형식의 공간이 있지는 않았을까 싶다지만 대신 찍어 다 준 사진에는 마애불 뒷면의 사진이 없어 아쉽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 후에 동축사의 삼층석탑을 만나고 다시 박물관으로 가서 태화사지십이지상 부도를 보고

박물관뜰에서 기념사진 찍고 울산답사를 마치는 것이다.그런데 마애불을 만나고 내려오는 도중에 후드득 떨어지는 빗방울의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그러잖아도 해 짧은 겨울인데 비까지 내리니 이미 날은 어둑해지는 듯 했고 무엇보다 울산에서 귀가를 하려면 이동거리와 소요되는 시간이 만만치 않은데 비까지 내리니 날 맑은 날보다 더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야했기에 먼거리에서 참석한 일행은 여물동마애불을 마지막으로 답사를 끝내자고 의견을 모았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경남지역에 거주하는 일행들은 동축사와 박물관을 돌아보았다고 했고 동축사보다 태화사지십이지상부도에 미련이 많았던 나를 위해 동축사와 십이지상부도 사진을 보내주긴했는데 내 블로그에는 그동안 내가 발걸음해서 직접 만나보고 온 옛님들 사진만 게시했으며 여지껏 그런 신념(?)에 변함은 없고 앞으로도 주욱 그럴것이니 사진을 보내주신 분의 성의는 고맙지만 내 개인공간에만 저장하고 이곳에는 건네 받았던 동축사삼층석탑과 십이지상부도의 간략한 사진으로 대신하고 직접 만나지 않았으니 그에 대해 쓸 거리는 없다.

 

 

 

 

 

이로써 1박 2일 울산광역시 답사기는 끝맺음을 한다.

사실 1박 2일의 답사는 항상 두 편으로 나누어 답사기를 썼는데 울산광역시의 경우엔 석남사와 간월사지를 비롯한 폐사지 세곳의 포스팅을 따로이 하려하니 1박 2일의 답사라도 한편으로 끝내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석남사와 폐사지 네 곳의 답사기를 더 써야하니 솔직히 다른 고장의 답사기를 쓸 때 보다는 훨씬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