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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宿水寺址 幢竿支柱).경북 영주 본문

☆~당간지주/통일신라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宿水寺址 幢竿支柱).경북 영주

푸른새벽* 2017. 4. 25. 19:22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宿水寺址 幢竿支柱)


숙수사지 당간지주는 소수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 소나무 숲 속에 남북으로 마주 서있다.기단과 간대석은 결실되어 확인할 수 없다.다만 지주 주변 지대석에 활용되었던 부재로 보이는 긴 사각형 돌이 노출되어 있다.따라서 금산사나 미륵사지 당간지주와 같이 지대석 위에 정연한 기단과 간대석 등이 마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지주는 내면에 정자국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각 면을 고르게 다듬었다.지주부는 전후면 외곽에 윤곽대(輪廓帶.너비 8cm)를 돌리고, 그 가운데에 낮게 세로로 돋을 띠를 장식하였다.외면은 외곽에 윤곽대는 돌리지 않고 가운데에 낮게 돋을띠를 세로로 장식하고 중간부를 1단 낮게 깎아(너비 116cm) 장식적인 의장을 가하고 있어,경주지역을 중심으로 8세기에서 9세기까지 건립된 당간지주들과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저상부는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부드러운 호선을 형성하도록 다듬고,그 중간에 1단의 굴곡을 두었다.간구는 지주 내면 꼭대기에 ∪형을 시공하여 간을 끼우도록 하였으며(11x13cm,깊이 12cm),지주 중간부에 간공은 마련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숙수사의 연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려진 것은 없지만 늦어도 통일신라 초기에는 사찰이 창건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당간지주의 치석 수법은 각 면을 정교하게 다듬었다.그리고 지주부 외곽에 윤곽대를 돌리고 1단 낮게 깎아 화려하며,지주의 너비와 폭이 전체높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작아 세장(細長)한 인상을 주고 있다.이러한 양식의 당간지주는 경주를 중심으로 지역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그런데 경주와 비교적 떨어져 있지만 이들 당간지주와 친연성을 보이고 있는 당간지주가 숙수사.부석사.비로사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이러한 것은 당시 이들 사찰이 경주와 떨어져 있지만 중앙정부와 연결되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 지역이 불교문화가 빠르게 전파되는 지역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특히 당간지주는 소수서원에 남아 있는 석조들과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당간지주는 8세기 후반경에서 9세기 사이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숙수사지 당간지주(宿水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59호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8

 
숙수사지 당간지주는  소수서원 입구 소나무 숲에 남아 있는 것으로,서원내에 아직도 당시 숙수사의 여러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의 위치가 원위치로 보인다. 숙수사는 통일신라 전기에 창건된 사찰로,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다 소수서원의 건립으로 폐사된 듯하다.


당간은 마주보는 면의 바깥면 중앙에 세로띠를 새기고, 꼭대기에서 1.17m 밑에서 부터 2.34m 까지 사이가 면이 쑥 들어가 있어서 마치 넓은 홈을 마련한 것처럼 보인다.
네모난 기둥 끝으로 올라가면 약간 가늘어지고, 맨끝은 둥글게 경사지도록 하였다. 꼭대기 끝 안쪽 면에는 홈을 파서 당간을 고정시키도록 하였다. 원래는 지주와 당간을 받치던 바닥돌이 있었을 듯하나, 현재는 지주 양쪽으로 길고 큰 돌 1장씩이 놓여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소박하며 돌을 다듬은 솜씨도 세련되어 보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