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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외사리 당간지주(槐山 外沙里 幢竿支柱).충북 괴산 본문

☆~당간지주/고려

괴산 외사리 당간지주(槐山 外沙里 幢竿支柱).충북 괴산

푸른새벽* 2017. 12. 22. 22:11









































































 괴산 외사리 당간지주(槐山 外沙里 幢竿支柱)                        


괴산 외사리 당간지주가 서있는 일대는 경작지로 변하였지만,탑비편.기와편.초석 등의 유물들로 보아 절터였음을 알 수 있다.한때 일본인들이 이곳에 남아있던 석조부도 1기를 반출하려고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이 절터는 탑비의 내용과 절터에서 출토되는 유물들로 보아 고려 초기에 세워진 사찰로 추정되고 있다.


당간지주는 논 가운데 낮은 축대 위에 세워져 있다.기단은 지주 하단부의 치석 수법으로 보아 정연하게는 마련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간대석(82x58cm)은 사각형 대석으로 상부에 이중의 원좌(지름 28cm)를 마련하였다.그리고 하단부 당간이 견고하게 고정되도록 높은 원형 돌기대를 돌출시켜 놓았다.이러한 간대석 마련 수법은 통일신라시대에도 많이 보이는 것으로 당간의 재료가 나무나 돌이 아닌 철일 경우에 주로 사용되었다.


두 지주는 동서로 마주 서있는데,지주 내면이 일부 파손되었다.지주부는 평면 사각 석주형으로 상부로 올라가면서 좁아지고 있으며 정상부만 내면에서 외면으로 나가면서 직선에 가까운 완만한 호선을 그리고 있다.그리고 그 중간 부분에 1단 굴곡을 주어 장식적인 치석 수법을 보인다.지주 정상부에 1단 굴곡을 둔 장식 수법은 통일신라시대 당간지주와 상통하고 있다.그런데 그 지주부는 각 면을 고르게 다듬기는 하였지만 전체적으로 간략화의 경향과세장한 인상을 보이고 있는 점은 고려시대 당간지주의 일반적인 양식이다.간구는 지주 내면 꼭대기에 '凹'형의 홈을 파서 마련하였으며,간공은 시공하지 않았다.이러한 지주부와 간구만을 시공한 수법은 고려시대의 법천사지.아산 읍내리.봉업사지.춘천 근화동.홍천 희망리 당간지주 등과 친연성을 보인다.


이와 같이 당간지주의 치석 수법과 그에 따른 양식은 고려 전기에 건립된 당간지주들과 일맥상통하고 있다.특히 이 당간지주는 절터에 남아 있었던 유물들과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보인다.이중에서 이곳에서 반출된 괴산 외사리 석조부도가 주목된다.괴산 외사리 석조부도는 주인공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양식과 절터에서 발견된 비편 등으로 보아고려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당간지주는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석조부도보다는 먼저 건립되었을 것이다.왜냐하면 석조부도는 고승이 하산한 사찰에 세워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하산소로 지정된 사찰은 하산을 전후하여 가람을 일신하기 때문이다.따라서 괴산 외사리 사지(寺址)도 석조부도의 주인공이 하산하기 전에 대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을 것이다.당간지주는 이때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괴산 외사리 당간지주는 고려 전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또한 사지(寺址)에서 출토되는 각종 연화문 수막새,통일신라시대의 암막새 문양과 강한 친연성을 보이는 화려한 암막새가 그러한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다.괴산 외사리 당간지주는 시도유형문화재 제139호이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



괴산 외사리 당간지주(槐山 外沙里 幢竿支柱)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9호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390-1


이 당간지주는 화강암의 두 기둥사이에 원형의 간대(竿臺)를 놓아 당간을 받게 한 것으로 고려 초기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간대는 2단의 원좌형(圓座形)으로 그 중앙에 높은 돌기(突起)를 마련하여 당간을 고정시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지주의 안쪽면 꼭대기 가운데에는 장방형 홈을 파서 당간을 고정시키는 간을 꽂아 끼웠던 것 같은데 이 유구는 윗부분에만 있고 지주의 중간쯤에는 아무런 간공(竿孔)도 마련되지 않았다.

 
각 부분이 비교적 완전하며 전체높이는 3.24m, 너비는 1.6m이며, 지주의 너비는 39m, 두께는 60cm, 지주의 간격은 83cm로 별다른 장식은 없으나 웅건견실(雄建堅實)한 인상을 주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