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처럼 떠나다

진주 성산리당간지주(晋州 省山里幢竿支柱).경남 진주 본문

☆~당간지주/고려

진주 성산리당간지주(晋州 省山里幢竿支柱).경남 진주

푸른새벽* 2018. 2. 9. 19:59




































































진주 성산리당간지주(晋州 省山里幢竿支柱)


지정사항없음
경남 진주시 금곡면 성산리 덕계마을 앞 들판


당간지주는 덕계마을 앞으로 넓게 형성된 논 가운데 세워져 있다.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1992년 농지정리 공사를 하였는데,두 지주가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에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당시까지 당간지주가 원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마을 안쪽으로 사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현재 당간지주를 중심한 일대에서는 사지와 관련되었을 만한 유적이나 유물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당간지주의 하부가 지표면보다 높게 돌출되어 있고,다량의 돌이 쌓여져 있는 점으로 보아 농지정리 공사를 하면서 사지와 관련된 유적은 완전히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당간지주는 하부에 커다란 자연석을 활용하여 견고하게 고정시켰으며,돌출된 전체 높이는 215cm가량으로 비교적 낮은 편이다.두 지주는 남북으로 마주 서 있으며, 치석 수법이 약간 차이가 나는데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파손내지는 마모의 결과로 보인다. 남쪽지주는 평면 사각형으로 치석되었으며,파손의 흔적이 많지 않아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남쪽지주는 안쪽면과 바깥면의 너비를 전후면보다 넓게 하여 안정되면서도 세장한 인상을 주도록 치석했다.바깥면 외곽 모서리는 약하게 각을 깎았으며,상단부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나가면서 약하게 경사지도록 치석했다.이는 그나마 당간지주의 단조로움이나 정적인 인상을 탈피하고자 하는 장인의 의도로 보인다.그리고 남쪽지주는 남면과 서면에1973년 마을사람들이 명문을 음각하였다.그 내용은 '石棹 여기는 新羅 一善縣이요 高麗 永善縣이다,地局이 舟形이라 짐대를 세운 것임' 이다.당간지주는 조선시대 이후 전국의 많은 사찰들이 폐사되면서 그것의 본래적인 의미와는 달리 풍수지리와 연관되어 설명되거나 민간신앙적인 요소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마을 사람들이 이와 같이 새긴 것은 당간지주의 용도와 기능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여 풍수지리적인 조형물로 인식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그리고 북쪽지주는 평면이 부등변 마름모형을 이루고 있어 지주부가 파손되었음을 짐작케 한다.안쪽면은 원래의 상태를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는데,지주부 표면을 정교하게 다듬었으며,상단부에 간구가 시공되었다.간구는 상하로 길쭉한 사각형으로 마련되었다.


이와 같이 진주 성산리 당간지주는 전체 규모가 비교적 작은 편이며,각부도 간략하게 치석되었음을 알 수 있다.또한 표면에 윤곽대나 세로띠와 같은 장식적인 기교도 가미되지 않았으며,간구도 좁고 길쭉한 형태로 시공되었다.이러한 형식과 양식의 당간지주는 고려 중후기 이후에 건립된 당간지주들과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
*엄기표 지음 '한국의 당간과 당간지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