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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례문(興禮門).서울 경복궁 본문

☆~ 바람소리/궁궐(宮闕)

흥례문(興禮門).서울 경복궁

푸른새벽* 2006. 11. 13. 23:29

 

 

 

 

 

 

 

 

 

 

 

 

 

 

 

 

흥례문(興禮門)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을 위해 1916년에 철거 되었던 흥례문 일곽이 복원 되었다.2001년 10월에 복건(復建)되었으니 85년 만에 제 모습을 찾은 것이다.그동안 흥례문 터에는 1926년에 일제가 완공한 서양식 건물이 조선총독부.미군정 청사.중앙청. 중앙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한 세기 가까이 동안 버티고 있었다.1990년대 중반,광복 50주년에 즈음하여 그 건물의 철거 문제를 놓고 찬반 격론이 벌어졌으나 민족 정기 되찾기라는 대의 명분이 또 다른 역사의 보존이라는 철거 반대 주장을 눌렀다.그리고 마침내 흥례문이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조선총독부 청사가 일제 식민 통치의 총본산이었다는 측면에서 흥례문 복원의 의미는 각별하다

 

흥례문 일곽이 복원되면서 비로소 광화문 - 근정문 - 근정전 - 사정전 - 향오문 - 강녕전 - 교태전으로 이어지는 경복궁의 중심축이 되살아났다

 

복원된 흥례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건물로 다포계 양식을 따르고 있다.근정문과 마찬가지로 좌우 행랑 및 좌우 행랑에서 북쪽 방향으로 직각으로 꺾이는 동서 행랑을 거느리고 있다

 

흥례문을 중심으로 오른쪽 즉,동쪽 행랑의 끝 부분에는 평문 형식의 덕양문(德陽門)을 내었고 왼쪽 행랑에는 유화문(維和門)과 기별청(奇別廳)을 두었다.행랑은 모두 복랑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인 유화문은 문 바깥 서쪽에 있던 빈청(賓廳)으로 통하던 문인데 궁 밖에 있던 관료들은 광화문,흥례문 을 거쳐 유화문으로 빈청을 드나들었다

*이덕수 지음 '新 궁궐기행'중에서*

 

 

 *유화문(維和門)

유화문은 궐외각사의 신료들이 빈 청을 드나들던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