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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충남 서산 본문

☆~ 풍경소리/충 남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충남 서산

푸른새벽* 2007. 4. 17. 23:33

 

 

 

 

 

 

 

 

 

 

 

 

 

 

 

 

 

 

 

 

 보원사터 법인국사 부도(普願寺址 法印國師浮屠)


절터 맨 뒤쪽 정리된 공간에 부도비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뒤쪽을 축대를 쌓아 공간을 말끔히 정리했는데,부도는 대개 절에서 가장 한갖진 뒤쪽이거나
좀 거리를 두고 떨어진 산등성이에 두는 일반적인 예와는 달리
절의 중심에서 그리 멀지 않을 뿐더러 동서로 긴 절터의 구조로 보아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자리가 좀 어색하기는 하다


부도는 팔각원당형으로 4.7m로서 부도치고는 규모가 큰 편이다
법인국사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이 부도는
조각이 매우 화려하여 특징적이며 조성 내력과 연대도 분명해 보물 제 105호로 지정되었다


아래로부터 모습을 살펴보면
4매의 판석으로 된 지대석 위에 팔각 기단부가 탑신부와 상륜부를 받치고 있다
기단부 하대석에는 안상을 조각하고 그 안에 사자상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으며
중대석 고임에는 눈이 부리부리하고 코,입,비늘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용이 구름을 휘감고 있다
중대석은 아무 장식 없이 곧게 팔각으로 기둥처럼 올라갔지만
상대석에는 피어나는 연꽃이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몸돌 8면에는 4면에 불꽃 모양 광배가 화려한 사천왕상이,
그 사이사이에 문비형과 높은 관을 쓴 인물 입상이 조각되어 있어 남다른 구성을 보인다
지붕돌은 귀꽃이 솟아 화려하며 고려 시대 부도의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몸돌에 비해 지붕돌이 커서 무거운 느낌을 주지만 귀꽃의 반전이 경쾌하여 무거움을 좀 덜어 준다
전체적인 비례로는 키가 큰 편으로 늘씬한 인상이다


부도비에 새겨지기를 978년에 이루어졌다고 하니 이 부도를 조성한 것도 그 무렵으로 본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


보물 제105호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19-2 


이 탑은 보원사(普願寺)터에 세워져있는 사리탑으로, 법인국사 탄문(坦文)의 사리를 모셔놓고 있다. 법인국사는 신라 말과 고려 초에

활약한 유명한 승려로, 광종 19년(968)에 왕사(王師), 974년에 국사(國師)가 되었고, 그 이듬해 이 곳 보원사에서 입적하였다. 978년

에 왕이 ‘법인(法印)’이라 시호를 내리고, ‘보승(寶乘)’이라는 사리탑의 이름을 내렸다.


기단부는 아래받침돌을 8각으로 된 2개의 돌로 쌓았다. 밑돌에는 각 면마다 움푹하게 새긴 안상(眼象)안에 사자 한 마리씩을 도드라지

게 조각하였고, 윗돌에는 구름속을 거니는 용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며 모서리마다 꽃이 새겨져 있다. 중간받침돌은 아무런

조각이 없는 8각의 배흘림기둥을 세웠으며, 윗받침돌은 윗면에 수직으로 새긴 난간조각이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탑신의 몸돌은 8각이

며 각 모서리를 기둥처럼 새기고, 앞·뒷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짝모양을 새겨두었다. 그 양쪽에는 불교의 법을 지켜주는 사천왕(四

天王)을 두었으며, 나머지 2면에는 높은 관을 쓴 인물상이 서있다. 지붕돌은 넓고 두꺼운데, 밑으로는 목조건축에서와 같은 서까래가

표현되어 있고, 윗면은 가파른 경사를 표현하였다. 각 모서리 선은 뚜렷하며, 끝에는 꽃조각을 하였으나 거의 남아있지 않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큼직한 연꽃이 조각된 복발(覆鉢)위로, 굽이 달려있는 3개의 보륜(寶輪)이 차례로 놓여 있다.


이 탑은 법인이 입적한 해인 975년과 탑비(보물 제106호)를 세운 978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여겨진다.


전체적으로 8각의 기본양식을 잘 갖추고 있으며, 몸돌에서 보이는 여러 무늬와 지붕돌의 귀꽃조각 등은 고려 전기의 시대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