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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마애삼존불(瑞山磨崖三尊佛).충남 서산 본문

☆~ 풍경소리/충 남

서산마애삼존불(瑞山磨崖三尊佛).충남 서산

푸른새벽* 2007. 4. 29. 23:40

 

 

 

 

 

 

 

 

 

 

 

 

 

 

 서산마애삼존불(瑞山磨崖三尊佛)


서산마애삼존불의 미소는 하도 꾸밈없고 건강하고 밝고 너그러워서 '백제의 미소'라는 애칭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국보 제 84호인 이름값고 전혀 부끄럽지 않다


가운데에 본존인 여래가 서 있고,
양쪽에 한 분은 서 있고 다른 한 분은 한 다리를 다른 쪽에 포개 앉은 반가상을 하고 있는
특이한 배치이다


가운데 부처님은 둥근 얼굴에 눈을 한껏 크게 뜨고 두툼한 입술로 벙글벙글 웃고 있다
전체 조각 가운데에서 본존의 얼굴이 가장 두드러져서 높은 돋을새김을 이루고 있다
양 어깨를 가린 법의 안쪽에 속옷 매듭자락이 매우 선명하여
이 부처님 조각의 섬세함과 두드러짐을 느끼게 한다
광배는 전체적으로 보주형(寶珠形)을 이루고 있는데 한쪽에 핀 연꽃 위에 불꽃 줄기가 은근하게 타오른다
잎이 두꺼운 연꽃대좌에 늠름히 서서,양 손  모두 약지와 새끼를 구부린 채
삼국 시대 불상들의 독특한 손 모양을 하고 있다
한 손은 올리고 한 손은 내려 두려움을 물리치고 소원을 받아 준다는
시무외 여원인(施無畏與願印)을 하고 있어 넉넉한 미소와 함께 부처의 넓은 품을 느끼게 한다
대좌로부터 광배에 이르기까지 2.8m이다


왼쪽 보살은 키가 자그마한데 마찬가지로 연꽃대좌에 서 있고 두 손을 가슴께 모아
약합 같은 것을 쥐고 있다
보관과 옷장식이 화려한 편이고 연꽃광배 바깥으로는 단순한 선으로 보주 모양을 나타내었다
볼이 도톰한 얼굴에는 작은 눈에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어서 천진한 웃음과 함께
전체적으로 4등신의 비례를 보여 어린아이상임을 느낄 수 있다
보살은 둘 다 대좌로부터 광배끝까지가 1.7m이다


오른쪽 보살은 고개를 약간 외로 틀어 귀엽게 웃는 모습,어딘지 짧은 듯한 4등신의 팔다리 비례와
통통하게 오른 볼 등이 네다섯 살 한창 귀여운 어린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한 다리는 내리고 한 다리만을 반대편 무릎에 올려 반가부좌를 하고
한 손은 팔꿈치를 구부려 뺨을 괴고 생각하는 자세로 앉아 있다
이런 미륵반가사유상은 7세기 초 무렵 삼국에 공통됐던 신앙경향을 보여 주는 상으로
이 마애불의 연대를 추정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세 부처는 법화경 교리에 따라 본존이 석가여래이고 왼쪽 입상은 제화갈라보살,
오른쪽은 미륵으로 보기도 하나,한편으로 당시 가장 성행했던 신앙형태로 미루어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과 미륵이 양 협시를 이루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옆쪽에서 바라보면 아래쪽이 깊이 파인 바위벽에 부처를 새겼고
가운데 부처님의 코높이가 가장 높은 듯 한데 두께가 20cm는 넘어 보이니
그 두께의 바위를 깎아 내려 가며 그 안에 숨은 부처를 드러내는 데에 얼마나 공력을 들였을까 싶다


이렇게 외진 산 바위벽에 왜 백제 사람들은 그토록 어렵게 부처를 모셔 놓았을까?
그것을 풀어 가자면 6세기 말엽의 백제시대를 이해해야 한다


백제는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고루려와 사이가 좋은 시절에는 육로를 통해 중국과 교역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장수왕의 남하에 따라 남쪽으로 천도를 하게 되고 신라가 강성해져
한강 유역을 빼앗아 가 버린뒤에는 중국으로 가는 길을 바다에서 찾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당진,태안지역은 중국의 산동반도와 가장 가까운 곳이어서 이곳이 교역항이 되었으니
여기에서부터 수도인 웅진(공주)이나 사비(부여)로 가는 길이 태안에서 서산을 거쳐
예산의 가야산길로 해서 이르는 길이다
이곳의 아애삼존불과 태안의 마애삼존불 그리고 예산 화전리의 사면석불은
모두 그러한 길목에 위치하고 있으니 교역로 길목에 안녕과 평안을 빌 수 있도록 큰 절을 세우고
부처를 모셨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부처들은 한결같이 온화하고 넉넉한 미소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 이 서산 마애삼존불의 미소를 신비한 미소라고 하는 것은
부처의 표정이 빛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동남쪽을 바라 보고 있는 이 불상들은 전각문을 닫은 채라면 근엄하기 짝이 없어
거의 위압감을 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자연광의 해가 뜨는 방향인 동남쪽 방향에서 빛이 비치면 어느새 환한 웃음으로
법당 안을 온통 환하게 밝혀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지금은 전각이 빛을 가려버렸기 때문에 그런 자연적인 빛의 조화는 볼 수가 없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


국보 제84호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2-10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계곡을 따라 들어가면 층암절벽에 거대한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보살입상, 왼쪽에는 반가사

유상이 조각되어 있다. 흔히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이 마애불은 암벽을 조금 파고 들어가 불상을 조각하고 그 앞쪽에 나무로

집을 달아 만든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연꽃잎을 새긴 대좌(臺座)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많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준다. 옷은 두꺼워 몸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으며, 앞면에 U자형 주름이 반복되어 있다. 둥근 머리광배 중심에는 연꽃을 새기고, 그 둘레에는 불꽃무늬를 새겼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는 오른쪽의 보살입상은 얼굴에 본존과 같이 살이 올라 있는데, 눈과 입을 통하여 만면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 천의를 걸치지 않은 상체는 목걸이만 장식하고 있고, 하체의 치마는 발등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의 반가상 역시 만면에 미소를 띤 둥글고 살찐 얼굴이다. 두 팔은 크게 손상을 입었으나 왼쪽 다리 위에 오른쪽 다리를 올리고,

왼손으로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 오른쪽 손가락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모습에서 세련된 조각 솜씨를 볼 수 있다.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와 미륵, 제화갈라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존불의 묵직하면

서 당당한 체구와 둥근 맛이 감도는 윤곽선, 보살상의 세련된 조형 감각, 그리고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는 쾌활한 인상 등에서 6세기

말이나 7세기 초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곳은 백제 때 중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중심지인 태안반도에서 부여로 가는 길목에 해당하므로, 이 마애불은 당시의 활발했

던 중국과의 문화교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