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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碑).충남 서산 본문

☆~ 풍경소리/충 남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碑).충남 서산

푸른새벽* 2007. 4. 19. 00:09

 

 

 

 

 

 

 

 

 

 

 

 

 

 

보원사터 법인국사 부도비(普願寺址 法印國師浮屠碑)


비신과 귀부가 온전히 남아 있고 법인국사의 행적에 관한 기록이 소상히 적혀 있어
사료로서도 귀중한 부도비로서 보물 제106호이다
4.25m로 부도보다는 좀 작지만 비로서는 큰 편이다
비머리에는
'가야산 보원사 고국사 제증시 법인삼중대사지비'(伽耶山普願寺故國師制贈諡法引三重大師之碑)라고
제액이 새겨져 있다
글을 지은 사람은 김정언(金廷彦)이며 글씨는 한윤(韓允)이 썼다
비문은 법인국사 탄문의 생애와,화엄종이 강력한 전제왕권을 수립하는 사상적 배경으로서 그가
고려 왕실에 정신적 지주가 되었음이 서술되어 있다


비문에 새겨진 바에 따라 고려 경종 3년인 978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부도도 함께 세워진 것이니, 연대가 분명하여 부도와 부도비의 기준작이 된다
*한국문화유산답사회 지음 '답사여행의 길잡이'중에서*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碑)


보물 제106호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19-2 


보원사는 고란사라고도 하며, 이 절에 관한 역사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주변에 담아있는 유물들을 볼 때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비받침인 귀부(龜趺)는 거북모양이나, 머리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의 모습으로, 목은 앞으로 빼고 콧수염은 뒤로 돌아 있으며 눈은

크게 튀어 나와 있다. 등 위에는 3단받침을 하고 비를 얹었으며, 비머리는 네 귀퉁이에서 안쪽을 바라보는 용을 새기고, 앞·뒷면에는

구름무늬를 조각하였다.


비문에 의하면, 법인국사(法印國師)는 광종 25년(974)에 국사(國師)가 되었고, 이듬해에 입적하였으며, 비는 경종 3년(978)에 세웠음

을 알 수 있다. 거대하고 웅장하나 조각기법이 형식에 치우친 감이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