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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바람소리/궁궐(宮闕) (86)
바람처럼 떠나다

흥례문(興禮門)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을 위해 1916년에 철거 되었던 흥례문 일곽이 복원 되었다.2001년 10월에 복건(復建)되었으니 85년 만에 제 모습을 찾은 것이다.그동안 흥례문 터에는 1926년에 일제가 완공한 서양식 건물이 조선총독부.미군정 청사.중앙청. 중앙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한 세기 가까이 동안 버티고 있었다.1990년대 중반,광복 50주년에 즈음하여 그 건물의 철거 문제를 놓고 찬반 격론이 벌어졌으나 민족 정기 되찾기라는 대의 명분이 또 다른 역사의 보존이라는 철거 반대 주장을 눌렀다.그리고 마침내 흥례문이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조선총독부 청사가 일제 식민 통치의 총본산이었다는 측면에서 흥례문 복원의 의미는 각별하다 흥례문 일곽이 복원되면서 비로소 광화문 - 근정문 ..

영제교(永濟橋)는 흥례문 일곽의 복원과 더불어 영제교도 제 자리를 찾았다.흥례문과 함께 조선총독부 청사 건립을 위해 일제가 철거한 이후한동안 엉뚱한 장소에 버려지다시피 방치되어 있었다.이 후 그나마 규모마저 축소하여 또다시 엉뚱한 장소에 복원되었다가 마침내 근정문 앞의 제 자리를 찾은 것이다 흥례문을 들어서면 어로(御路)를 따라 곧 돌다리가 놓여 있으니 바로 영제교이다 영제교 아래로는 어구(御溝)를 따라 명당수가 흐른다.서류동입(西流東入)하는 명당수의 물길 금천(禁川)은 태종 11년에 만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이 금천은 임금의 공간과 바깥 공간을 구분 짓는 상징성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금천 위에 놓이는 다리를 일반적으로 금천교(禁天橋)라고 하였는데 창덕궁에 금천교(錦川橋),창경궁에 옥천교(玉川橋)가 있..

*세종로에서 바라 본 광화문 *광화문 편액 *광화문 석축 바깥쪽 꼭대기. 여장 밖 좌우 귀퉁이에는 돌짐승을 앉혔다 자그마하지만 추녀 아래서 왕조의 정궁을 지키려는 기개만은 당당하다 *광화문 좌우에 있는 해태상 해태를 광화문에 앉힌 이유는 풍수에 따라 마주 바라보이는 관악산의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서였다 (해태의 이미지는 빌려왔음~ㅎ) *광화문의 문루로 오르는 돌계단 석축 위에 여장을 둘러쌓고 동서 양쪽에 문을 내 출입토록 하였다 광화문(光化門) 경복궁의 정문,광화문은 창건 당시 오문(午門) 또는 정문(正門)으로 불렸다 정도전은 오문의 의미를 "닫아서 이상한 말과 사특한 백성을 막고 열어서 사방의 현인들을 들어오게 하는 것은 모든 바른 것 중에서도 큰 것입니다" 라고 태조께 아뢰었다 창건되었을 당시 광..

*광화문(光化門) *흥례문(興禮門) * 근정문(勤政門) * 근정전(勤政殿) * 사정전(思政殿) *강녕전(康寧殿) * 교태전(交泰殿) * 자경전 (慈慶殿) *수정전(修政殿) * 경회루(慶會樓) * 향원정(香遠亭) *동십자각(東十字閣) 개경(開京)에서 새로운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李成桂)는 즉위한 이듬해 3월 국호(國號)를 '조선(朝鮮)'으로 정한 다음 우여곡절 끝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에 1394년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설치하여 새 나라 새 도읍의 궁궐을 창건하기 시작했으며 그 이듬해(1395년 9월)에 완공하였다 공사는 영삼사사(領三司事)심덕부(沈德浮)가 총감독을 맡았다.이때 창건된 새 궁궐의 규모는 390여 칸으로 그리 크지 않았다 이렇게 새 궁궐이 창건된 다음날인 10월..
운현궁(雲峴宮) 서울특별시 사적 제257호로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운니동에 위치한 운현궁은 조선조 제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潛邸)이며 흥선대원군의 사저이며,한국근대사의 유적 중에서 대원군의 정치활동의 근거지로서 유서 깊은 곳이다. 흥선군 이하응이 왕실집권을 실현시킨 산실이자 집권이후 대원군의 위치에서 왕도정치로의 개혁의지를 단행한 곳이다.대원군이 권력에서 하야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내외에 행사한 곳으로서 고종이 즉위하기 전까지 살았던 잠저(潛邸)였기 때문에 역사적 상징성이 더욱 크다. 흥선군의 사저가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은 1863년 12월 9일 흥선군을 흥선대원군으로,부인 민씨를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가 내려진 때부터 였다. 고종이 12살까지 살았던 운현궁은 철종 때 옛 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