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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바람소리/궁궐(宮闕) (86)
바람처럼 떠나다
수정전(修政殿). 사정전 일곽의 서남쪽 방향 경회루의 정면 남쪽에는 수정전(修政殿)이 위치해 있다 세종때는 집현전(集賢殿)으로,세조 때에는 예문관(藝文館)으로 쓰인던 전각인데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시 재건되면서 수정전이라 이름 붙였다 고종 초기에는 연거지..
자경전(慈慶殿) 동궁 일곽의 북쪽 방향,교태전의 동북 방향에는 자경전(慈慶殿)이 위치해 있다.고종 때 경복궁 중건의 제2단계 조영(造營)당시 대왕대비이던 조대비(趙大妃-神貞王后)를 위하여 옛 자미당(紫薇堂)동쪽 청연루 터에 건립하였다.옛 자미당에서는 예종이 승하하였다 『明宗實錄』에 따르면 청연루를 삼전(三殿-대왕대비.왕대비.왕)이 합어(合御)하던 곳이라 하였다.현재 경복궁에 있는 강녕전.교태전 일곽 등의 침전이 최근에 복원된 전각들인 데 비해 자경전은 중건 당시의 전각이다.연침(燕寢)중 훼철되지 않은 유일한 전각인 것이다.개국 당시 창건할 때는 없었다 '慈慶'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즉위하면서 생모(生母)혜경궁(惠慶宮)홍씨(洪氏)를 위해 창경궁에 자경전을 지은 데서 비롯되었다.그 의미는 자친(慈親),즉 임금..
경회루(慶會樓) 근정전의 서북쪽 방향,강녕전의 서쪽 네모꼴의 큰 연못에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건물이 경회루(慶會樓)이다 경복궁 창건 당초에는 작은 규모의 누각에 불과 하여였으나 태종 12년(1412) 공조판서 박자청(工曺判西 朴子靑)이 연못을 크게 확장하고 누각도 큰 규모로 새로 지었다.그후 성종 때와 연산군 때 수리를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창시 재건되었다 경회루는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나 외국에서 온 사신을 위해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하륜(河崙)은 '慶會'의 뜻을 '임금과 신하가 덕(德)으로써 만난다'는 것으로 풀이하였다 남향하고 있는 경회루는 정면 7칸 측면 5칸의 중층 건물이며 전후좌우에 툇간을 둔 11량 구조의 이익공 양식으로 기둥과 기둥사이에 ..
아미산(峨嵋山) 보물 제 811호 교태전 건물 뒤쪽으로 돌아서면 아담한 동산을 아기자기하게 꾸민 후원(後苑)이 있다.아미산(峨嵋山)이다 이 동산은 태종 때 조성되었는데,경회루(慶會樓)의 연못을 판 흙을 이곳에 쌓아서 만들었다.우리나라 전통 조경에서는 마당에 화원을 꾸미지 않아 후원이 발달하였다.아미산 위쪽으로는 큰 나무들을 심었고,아래 언덕으로는 화계(花階)를 조성하였다 원래의 아미산은 중국 산동성 박산현에 있다.그렇다면 작은 동산에 불과한 후원을 굳이 아미산이라고 이름 붙인 연유는 무엇일까.우리나라의 모든 산들은 백두산(白頭山)의 정기를 잇는다고 한다.따라서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따라 그 정기가 이곳 경복궁까지 뻗치기를 기원했음이 아닐까? 아미산에는 두벌대씩의 장대석으로 네 단의 석축을 쌓고,그 위에 ..
교태전(交泰殿) 강녕전 북행각에 솟을 삼문으로 세운 양의문을 들어서면 교태전(交泰殿)이다.왕비의 시어소(時御所) 즉,내명부(內命婦)의 일들을 살피던 전각이자 침전으로 중궁(中宮)또는 중전(中殿)이라고도 했다.이는 또한 왕비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단층 남향인 이 건물의 규모는 정면 9칸 측면 5칸이며 장대석 네벌대로 기단을 쌓고 네모 뿔대로 다듬은 초석을 놓아 네모기둥을 세웠다.기단 앞에는 가운데 세 칸에 맞추어 세 틀의 돌계단을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였는데 소맷돌은 없다.기둥머리에 창방을 결구한 다음 이익공으로 공포를 올렸으며 처마는 겹처마이다 교태전은 동쪽으로 원길헌(元吉軒)을,서쪽으로 건순각(健順閣)을 익각으로 거느리고 있다.건물 앞면은 교태전의 좌우로 원길헌과 함흥각이 이어지고 이는 다..
강녕전(康寧殿) 사정전의 북행각에 솟을 삼문으로 서 있는 향오문(嚮五門)을 들어서면 강녕전(康寧殿)일곽이 펼쳐진다.이곳은 임금의 침전(寢殿)이자 일상 생활을 영위하던 사적인 공간이다.교태전(交泰殿)과 더불어 연침(燕寢)또는 연거지소(燕居之所)로도 일컬어지는 이들 전각은 궁궐 내부 깊숙한 곳에 입지함으로써 그야말로 구중 궁궐(九重宮闕)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한다 임금의 정침(正寢)인 강녕전은 정면 11칸 측면 5칸의 남향 건물로 장대석 네벌대로 기단을 쌓고 네모뿔대 초석을 놓아 네모기둥을 세웠다.기둥머리에 창방을 결구한 다음 이익공으로 공포를 짰다.건물의 평면은 가운데 3칸이 대청이고 그 좌우로 각각 3면씩의 온돌방으로 구성되었다.온돌방은 '井'자 형태로 9개의 방을 구성하여 그 한가운데 방에서 임금이 주무..
사정전(思正殿) 근정전의 북행각에 솟을 삼문(三門)으로 서 있는 사정문(思正門)으로 들어서면 곧 평상시 임금이 거처하면서 정사를 살피던 편전(便殿)일곽이다.그 중심 전각이 사정전(思政殿)인데 창덕궁의 선정전(宣政殿)및 창경궁의 문정전(文政殿)과 같은 용도이다.경복궁의 시사지소(視事之所)로서 창건 당초에는 보평청(報平廳)이라 하였으나 곧 사정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천하의 이치란 생각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잃게 되는 것이므로 임금이 깊이 생각 할 것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사정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사정전의 동쪽에는 만춘전(萬春殿)이,서쪽으로는 천추전(千秋殿)이 자리를 잡아 편전 일곽을 형성하였다.만춘전과 천추전은 사정전을 보좌하는 이른바 소편전(小便殿)인데 세종 때 창건된 것으..
*근정전 상하월대의 난간 기둥에는 모두 36마리의 돌 짐승이 배치되어 있다 이들은 四神인 용.호랑이.주작.현무가 각각 한 쌍씩 그리고 개와 돼지를 제외한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과 이름 모를 돌짐승(瑞獸)들로 구성되었다
근정전(勤政殿) 광화문을 들어서면 흥례문이 복원되어 있고,영제교를 건너 근정문을 들어서면 경복궁의 정전 근정전(勤政殿)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조선 왕조의 위엄을 상징하는 ,모든 궁궐 전각 중이 으뜸이다.현재의 건물은 역시 고종 시절 중건한 것이며 개국 당시의 창건 건물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행각을 단랑에서 복랑으로 바꾸고 월대를 세로 만드는 등 변화를 주었다 월대는 건물 앞뒤와 좌우 모두 상하 이중으로 형성하였으며 그 위에 하엽동자(荷葉童子)와 팔각 돌난대로 구성한 돌난간을 세웠다.계단과 만나는 부분과 모서리 부분에 세운 각 엄지기둥에는 4신상(四神像)과 12지신상 등을 조각하여 방위에 맞게 배치함으로써 상징적으로 정전을 수호하게 하였다.건물 앞 뒤면에 하나씩,그리고 건물 좌우에 각각 두 개씩의 ..
근정문(勤政門) 북악을 주산으로 두고,인왕산을 우백호(右白虎)로,낙산을 좌청룡(左靑龍)으로 거느려 자리잡은 근정전의 정문은 근정문이다 근정전 바로 앞 남쪽에 위치하여 정전으로 드나드는 주 출입문 역할을 하며 문 좌우로 뻗은 행각(行閣)은 북쪽 방향 직각으로 꺾여 근정전을 장방형으로 둘러 싸고 있다 창건 당시부터 이 문의 남쪽에는 금천교 즉,영제교와 광화문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 이후 오랜 세월 동안 조선 총독부 건물이 버티고 있었다 고종 때 중건하면서 근정문 행각의 규모 및 부 출입구의 위치 등이 창건 당시와 달라지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근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중층 우진각 지붕의 다포식 건물이다.장대석 세벌대로 기단을 꾸미고 둥글게 다듬은 초석을 놓아 두리기둥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