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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시 남산동 1130
- # 경주시 남산동 227-3
- # 괴산군 괴산읍 능촌리
- # 괴산군 사리면 사담리
- # 금동반가사유상
- #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 # 영양군 입암면 신구리 240
- # 전북 익산시 모현동 1가
- # 중초사지 당간지주
- # 진주시 금산면 갈전리
- # 칠곡 송림사전탑
- #'기축'명 범종
- #17세기 불상
- #18세기 중반 불화
- #2017 박물관전시
- #2017국립민속박물관 전시
- #2017년 민속박물관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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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세기 중엽 석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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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풍경소리/경 북 (333)
바람처럼 떠나다
첨성대(瞻星臺) 첨성대의 전체적인 외형을 보면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2중 기단을 쌓고 지름이 일정하지 않은 원주형으로 돌려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꼭대기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돌을 엮어 놓았다 각 석단의 높이는 약 30cm이고 화강암 하나하나가 같은 형태지만 각 석단을 이루는 원..
경주 동궁과 월지 (慶州 東宮과 月池) 사적 경북 경주시 인왕동 517 번지 일대 안압지 서쪽에 위치한 신라 왕궁의 별궁터이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견훤의 침입을 받은 뒤, 931년에 왕건을 초청하여 위급한 상황을 호소하며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후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전해진다.『삼국사기』에는 임해전에 대한 기록만 나오고 안압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데, 조선시대 『동국여지승람』에..
대릉원(大陵苑) 세계문화유산 경북 경주시 황남동 53 일대 경주 시내를 멀리서 바라볼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집들 사이로 우뚝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고분들이다 지금부터 천년도 더 넘는 시절에 살았던 옛 사람들과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터전이 한데 어울려 있기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신비감이 ..
원원사터 삼층석탑(遠願寺址三層石塔) 동서 쌍탑인 두 삼층석탑은 도괴되었던 것을 1933년에 복원한 것이다 상하 기단 면석에 탱주 2개가 조각돼 있는 것으로 보아 통일신라 시대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상층 기단과 1층 몸돌에는 각기 십이지신상과 사천왕상을 강하게 조각하..
황룡사구층목탑터(皇龍寺九層木塔址) 황룡사 금당터를 지나면 황룡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구층목탑의 흔적지가 보인다 지금은 초석만 남아 과거의 영광을 쓸쓸히 말해주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각 초석은 지름이 약 1미터 내외로서 사방에 8개씩 질서정연하게 놓여있으며 그 중앙에 심초석(心초석..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 분황사의 우물은 신라 시대에 만든 것이다 우물의 겉모양은 팔각이고 내부는 원형이다 외부의 팔각모양은 부처가 가르친 팔정도를 상징하며 내부의 원형은 원불(圓佛)의 진리를 상징한다 전설에 따르면 이 우물에는 세 마리의 호국용이 살고 있었는데 원성왕 11년(795)에 당나..
분황사 석탑(芬皇寺石塔)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높이 9.3m의 모전석탑이다 분황사 창건 당시 만들어진 석탑이 임진왜란 때 반쯤 파괴되었는데 조선시대에 이 절의 중이 수리하려고 하다가 도리어 더욱 파손시켜 1915년 다시 수리를 하였다 현재는 3층으로 되어 있으나 원래..
골굴암마애여래좌상(骨窟庵磨崖如來坐像) 머리 위에는 육계가 큼직하게 솟아 있고 얼굴은 윤곽이 뚜렷하다 타원형의 두 눈썹 사이로 백호(白毫)를 상감했던 자리가 둥글게 파였다 두 눈은 멀리 동해를 내려다보고,귀는 어깨까지 내려오고,가는 눈엔 잔잔한 웃음이 머물고, 굳게 닫힌 입..
감은사터 동서 삼층석탑(感恩寺址東西三層石塔) 감은사터석탑은 통일신라시대,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세워진 모든 삼층석탑의 시원(始原)이 되는 석탑이다.석탑은 미륵사터석탑으로 백제에서 시작되었으나 그것은 단지 재료가 석재일 뿐 전체적으로 목탑의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한 목조 구조를 단순화시킨 석탑 양식은 감은사터석탑에서 시작되었다.그것이 성립된 시기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시점이라는 점은 또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지대석과 기단부에서 눈에 띄는 점이 있다.동탑의 경우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서탑의 경우 탑 주변으로 인도 스투파의 베티카에 해당하는 일정한 너비의 탑구(塔區)가 마련되어 있다.이를 따라 자연스럽게 탑을 돌 수 있으며 그 자체가 탑을 예배하는 탑돌이가 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