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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바람소리/궁궐(宮闕) (86)
바람처럼 떠나다
문정전(文政殿) 명정전 남쪽 방향으로 바로 옆에 창경궁의 편전(便殿)인 문정전(文政殿)이 남향으로 위치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이 규모로 다포계 팔작 지붕 건물이다 창경궁 창건 당시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1616)에 중건되었다 이후 순종 연간 까지도 남아 있었으나 그..
명정전(明政殿) 창경궁의 정전(正殿)인 명정전(明政殿)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 지붕의 다포계 건물이다.창경궁 창건 당시인 성종 15년(1484)에 건립되었으며,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이후 인조와 순조 때에 큰 화재를 겪으면서도 무사히 보존되었고,1980년대 들어 주변 행각 및 빈양문(賓陽문)일곽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명정전은 현존하는 조선 왕조의 궁궐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홍화문.명정문 및 그 좌우 행각.창덕궁 돈화문 등과 함께 17세기 전기의 목조 건축을 연구하는 데 소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경복궁의 근정전이나 창덕궁의 인정전 등의 궁궐 정전이 중층인 데 비해 명정전은 단층이며 그 규모 또한 상대적으로 작다.이는 창경궁이..
명정문(明政門) 창경궁의 중문 겸 전문이자 명정전의 정문이 곧 명정문(明政門)이다.정면 3칸,측면 2칸의 단층 팔작 지붕 다포집으로 경복궁의 근정문(勤政門),창경궁의 인정문(仁政門),덕수궁의 중화문(中和門)과 같은 성격의 문이며 그 형태도 비슷하.다만,공포와 합각머리 아래 쪽 천장의 짜임새가 특이하다.공포는 내삼출목 외이출목인데 밖의 짜임새에서 출목을 하나 생략하고 제공(諸工)을 하나만 두었다.다포계 형식에서 이처럼 안쪽은 그대로 두고 바깥쪽만을 생략한 경우는 보기가 힘들다.처마는 겹처마이며,각 지붕 마루는 양성을 하여 용두와 취두,잡상을 배열하였다.천장은 연등천장인데 합각머리 밑의 복잡한 가구는 쪽천장으로 가렸다.이러한 수법도 특이하다 또한,경복궁과 창덕궁에는 중문으로 흥례문(興禮門)과 진선문(進善門)..
옥천교(玉川橋) 홍화문을 들어서면 명정문과의 사이에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화강석으로 호안을 쌓고 바닥을 딴 어구(御溝)를 따라 명당수(明堂水)가 흐른다.어구 위에 설치하여 홍화문과 명정문을 일직선으로 잇는 돌다리가 곧 옥천교이다.경복궁의 영제교(永濟橋),창경궁의 금천교(錦川橋)와 같은 성격의 다리이다.조선시대 전기 즉,성종 시절의 창경궁 창건시 다른 전각들에 앞서 성종 14년(1843)에 놓인 것을 기록되었다 옥천교른 길이 9.9m 너비 6.6m의 규모이다.어구 가운데 큰 돌로 기석을 놓고 반원형의 홍예(虹霓)두 틀을 받쳤다.두 홍예 사이에는 귀면(鬼面)을 조각한 돌을 끼워 벽사를 도모하였다.홍예의 바깥쪽에는 장대석을 세벌대로 쌓아 하부 구조(下部構造)를 형성하였으며 그 위에 다시 장대석과 판석으로 바..
홍화문(弘化門) 창경궁의 정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 우진각 지붕 건물로 동향이다.창경궁 창건 당시인 성종 15년(1484)에 처음 지어졌고,1592년에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뒤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되었다.현재의 홍화문은 이때 지어진 것이며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쳤다.『東闕圖(동궐도)』에 의하면,문의 좌우로 남북 십자각(十字閣)까지 행각이 연결 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궁장(宮墻)이 이어져 있다.홍화문을 들어서면 남북 양쪽 행각이 십자각에서 꺾여 서쪽으로 명정문 좌우 행각까지 이어짐으로써 사각형 모양의 뜰을 형성 하였다.옥천교 좌우의 이 남북 행각 가운데쯤에는 수각(水閣)을 설치하여 명당수 물길을 터 놓았다.일제 강점기 때 훼멸되었던 남북 행각은 1986년에 복원되었다.「동궐도」에 의하면,..
창경궁(昌慶宮) 창경궁(昌慶宮)은 성종 14년(1483),옛 수강궁(壽康宮)자리에 창건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에 준공되었다.별궁으로 건립되었는데,당시의 3대비 즉,세조의 비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와 추존 왕 덕종의 비 소혜왕후(昭惠王后) 한씨 그리고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를 모시기 위함이었다.이들은 성종의 할머니,어머니,작은어머니였다.창경궁을 짓기 전의 수강궁은 태종이 1418년에 양위를 하고 세종이 등극하면서 그 해 11월 지금의 명정전 일대로 추정되는 곳에 태종이 거처할 궁으로 건립했었다.태종의 비 원경왕후(元敬王后)가 이곳에서 승하하였으며 이후 단종이 즉위하여 잠시 수강궁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세조는 수강궁에서 승하하였으며,세조가 승하하기 하루 전에는 예종이 수강궁에서 즉위하였다..
대조전(大造殿) 대조전(大造殿)은 창덕궁 내전의 으뜸 전각으로 곧 중궁전(中宮殿).창경궁의 통명전(通明殿)과 같은 격이다 『宮闕志(궁궐지)』에서는 대조전을 '大內坤殿正堂(대내곤전정당)'이라 하여 내전의 정당임을 설명하였다 왕업을 계승할 큰그릇으로 왕자가 탄생해야 국리민복(國利民福)을 ..
희정당(熙政堂) 원래는 임금의 침전이었으나,후기 들어 순조 때부터는 정사를 살피는 편전으로 사용되었다 『宮闕志(궁궐지)』에는 희정당(熙政堂)을 '便殿視事之所也(편전시사지소야)'하고 설명하고 있다 '희정'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정사를 밝혀 백성을 구제한다는 뜻이다 이 건물을 처음 지은 시..
인정전(仁政殿) 인정문을 들어서면 창덕궁의 정전(政殿),인정전(仁政殿)이 품격을 갖추어 자리잡고 있다.인정전은 17세기 중건된 이후 오랫동안 조선 왕조의 법전(法殿)역할을 해왔다.행각으로 둘러싸인 인정전의 앞마당,즉 전정(殿庭)에는 품계석(品階石)이 배열되어 있으며 남행각 가운데는 인정문이 위치했다.태종 5년에 창건 되었으며,이때는 정면 3칸 규모의 작은 전각이었다.세종 즉위년에 고쳐지었으며,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광해군 즉위년에 재건되었다.이후,순조 3년(1803)에 선정전 서행각에서 일어난 불로 다시 소실되었다가 그 이듬해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철종 8년(1857)에 개축하였다는 기록이 있다.앞마당의 품계석은 정조 원년(1777)에 설치하였다.일제 강점기에는 앞마당의 박석(薄石)을 모두 걷어내..